이란, 3가지 환율제 내놨지만 고위층 ‘환치기’로 이득
분노한 상인들부터 시위 시작…환치기 세력 처벌 요구에 정부 불응
다시 번진 시위에 정부 유혈진압으로 대응
정국 불안 커지며 리알화 환율 계속 급등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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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한 상점에서 한 남성이 금화를 구매하며 리알화를 세고 있다.[AFP] |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이란의 리알화 환율이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28일(현지시간) 기준 달러당 리알화의 환율은 처음으로 160만리알을 넘어섰다. 전날 150만리알을 넘기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더니, 하루만에 160만리알이란 선까지 깨며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리알화는 이번 이란 유혈사태의 도화선 역할을 했다. 더이상 경제난을 못 버티겠다며 테헤란의 상인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지금의 반(反) 정부 시위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상인들이 정부에 반기를 든 배경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극심한 경제난에 대한 불만이다. 또 다른 축은 사회정의 실현에 대한 요구다.
이란은 2018년 미국이 핵 합의를 탈퇴하고 경제 제재를 시작하면서 제대로 교역을 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유엔도 이란에 제재를 결의하면서, 경제난은 가중됐다. 외환보유고가 줄기 시작했고, 공기업·준국영기업의 구조적인 부패와 경영실패까지 국민들의 고충을 더했다. 이란은 혁명 이후 대부분의 사업체를 국유화했고, 경영은 정권의 핵심 계층이 도맡았다. 신정체제에서 최고 종교지도자 직속 기관인 혁명수비대(IRGC)가 에너지·건설·통신 등 핵심 부문을 장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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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테헤란 시내 외화 환전 중심지인 페르도우시 광장에서 한 환전소 직원이 미국 달러를 세고 있다. 이란 리알화의 달러당 환율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28일(현지시간)에는 160만리알을 넘어섰다.[EPA] |
자연히 비효율과 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중앙은행을 통해 통화를 마구 찍어내면서 인플레이션은 더 고착화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024년 이란의 물가상승률을 30%대 중반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이란의 물가상승률은 40% 상당일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모든 패착은 리알화 환율 급등으로 나타났다. 이란 정부는 3가지로 나눠 환율을 관리하고 있다. 공식 저율(보조 환율)과 수입·수출용 NIMA(외국환 통합거래제도) 환율, 자유시장(암시장 포함) 환율 등 세 가지다. 보통 공식환율보다 수입·수출용 NIMA 환율이 더 높고, 자유시장 환율이 가장 높다. 3가지 환율제를 운영하면서 이란 정부는 수출업자는 벌어들인 외화를 NIMA 등 정부가 통제하는 시장에 낮은 환율로 팔도록 의무화했다. 사실상 수출입업자를 중심으로 한 외환 배급제인 셈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일부 특권층이 ‘환치기’를 통해 이익을 보는 일이 속출했다는 것이다. 자유시장 환율보다 낮은 NIMA환율로 달러를 배정받고, 실제로는 물건을 신고한 것보다 적게 들여와 남은 달러는 자유시장 환율로 되파는 환치기가 횡행했다. 일부는 싸게 배정받은 달러로 수입한 필수품을 국내 시장에 자유시장 환율을 반영한 높은 가격으로 팔아 이중 이익을 챙기기도 했다.
환치기는 아무나 할 수 없었다. NIMA환율을 적용 받으려면 정부 승인이 필요했다. 자연히 혁명수비대 등 정부 고위 관료와 연줄이 있는 이들이 환치기로 이득을 봤고, 그 과정에서 정부 고위층도 리베이트를 받아 챙겼다.
심지어 중앙은행과 국영은행도 외화를 배분하는 과정에서 환율 차익을 통해 이득을 봤다는 의혹이 여러 차례 나왔다. 오죽하면 중앙은행장 운전기사였던 바박 잔자니가 혁명수비대에 연줄을 대, 수백억 달러로 자산을 불린 사업가가 되기도 했다. 잔자니는 2016년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중앙은행에서 달러를 낮은 환율로 받아 시장에 비싸게 파는 구조로 거액을 챙겼다고 증언한 바 있다.
살인적인 물가, 환율에 국민들이 체감하는 경제난은 심각한데, 고위층은 이 와중에도 이익을 보는 불평등에 상인들부터 폭발하기 시작했다. 상인들은 이란 사회의 핵심 허리 계층으로, 1979년 팔레비 왕조 축출 당시에도 상인들의 시위로 혁명이 시작됐다.
상인들이 점포 문을 닫고 거리로 나서자 놀란 이란 당국은 지난 5일(현지시간) 국민 1인당 7달러씩 4개월간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며 유화책을 내놨다. 이란 정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거래 사이트에서 생필품을 살 수 있는 바우처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7달러는 현지에서 계란 약 100개나 적색육 1kg 상당을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이다. NYT는 이란의 최소 생계비가 월 200달러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7달러 바우처가 이란 국민의 경제적 고통을 완화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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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5일(현지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반(反) 정부 시위를 벌이는 이란 국민을 지지하는 이들이 평화 행진에 나섰다.[EPA] |
정부의 유화책이 통하지 않았던 배경에는 보조금 액수보다 사회정의 구현에 대한 갈망이 더 컸다. 상인들은 환치기로 이득을 본 이들을 처벌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 요구했지만, 이란 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시위가 더 많은 곳으로 번져나갔고, 당국은 유혈진압으로 돌아섰다.
이란 당국이 지난 8일부터 전국적으로 인터넷 등 외부와의 통신을 전면 차단하고, 저격수를 동원한 실탄 사격까지 감행하며 강도 높은 진압에 나서자, 시위는 차츰 잦아들었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이 커지면서 리알화 환율이 다시 폭등하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지난달 28일 상인들이 상점을 닫고, 거리에서 시위를 시작했을 때의 환율은 달러당 142만리알 수준이었다. 수천명이 피를 흘린 유혈사태를 겪고 나니, 한 달여만에 12% 넘게 폭등했다.
정국은 한동안 불안정한 상태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28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에 대규모 공습을 검토중이다. 트럼프가 고려 중인 군사 옵션에는 이란의 지도부 및 시위대 사망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이란 안보 당국자들에 대한 공습, 이란 핵시설과 정부기관 등에 대한 타격 등이 있다고 전해졌다.
로이터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군경과 지도부를 겨냥해 여러 옵션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선택지에는 중동의 미국 동맹국들을 사정권에 둔 이란의 탄도미사일이나 핵 프로그램을 표적으로 한 공습 방안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