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주 없는 천만영화 ‘왕사남’…콘텐츠 투자 척도는 ‘매출’[머니 인사이트]

관객 1400만 ‘흥행’에도 증권시장 잠잠
배급·투자사 등 매출분산 ‘상승 제한적’
투자·배급 집중하는 넷플릭스와 차이
박스오피스 평가도 한국 ‘관객수’, 미국 ‘매출’
예술 아닌 산업 접근하는 미국 방식 주목

 

14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서 단종 역을 소화한 배우 박지훈. [쇼박스 제공]

배우 박지훈이 단종으로 열연한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이하 왕사남)’. 최근 14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숫자만 보면 전형적인 ‘대박 흥행’이다. 한국 영화 시장에서 흥행 기준이 되는 ‘1000만’에 400만을 더한 숫자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영화 한 편에 관객이 쓴 티켓 값만 2100억원인데 관련 수혜주 기사는 ‘0건’이다. 리포트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이유일까.

한국이 영화 흥행을 설명하는 방식은 글로벌 시장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관객 수로 설명하는 나라는 사실 한국 외엔 찾아보기 어렵다. 당장 미국은 박스오피스를 관객 수가 아닌 매출로 평가한다. 보통 북미 1억달러(약 1500억원)를 흥행 기준선으로, 글로벌 10억달러(약 1조5000억원)를 메가 히트 기준으로 본다. 글로벌 박스오피스 기준으로 매출 10억~20억달러 구간엔 마블을 비롯한 대형 IP(지식재산권) 기반 작품들이 대부분을 형성하고 있다. 20억달러 이상 기록을 세운 영화는 ‘아바타’와 ‘어벤져스’, ‘스타워즈’ 정도에 그친다.

다른 아시아 국가를 봐도 미국과 비슷하다. 일본은 100억엔(약 900억원대), 중국은 10억위안(약 2000억원 내외)이 하나의 흥행 기준점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1000만 관객’은 매출 기준으로 어느 정도 규모에 해당할까. 극장 티켓 가격을 약 1만5000원으로 단순 계산해보면, ‘왕사남’이 달성한 1300만 관객은 약 2100억원 규모 매출이다. 매점 매출 등을 포함하면 2000억원대 중후반까지 확대된다. 북미 기준으로도 흥행을 가늠하는 매출 기준점은 뛰어넘게 된다. 1000만이라는 숫자가 매출 규모로도 유의미한 기준점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이 정도의 규모에도 증시로 보면 뚜렷한 수혜주가 없을까. 이는 관객 수 너머의 구조를 따져봐야 알 수 있다.

국내 영화 콘텐츠 사업은 수익이 특정 기업의 이익으로 집중되는 구조가 아니다. 수익이 여러 주체로 나뉘면서 개별 상장사의 실적 개선으로 곧바로 연결되지는 않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

‘왕사남’을 사례로 보면, 앞서 계산한 티켓 매출(약 2100억원)에 업계 관행을 적용할 때 절반가량은 극장이 가져간다. 나머지에서 배급사와 제작사로, 이 과정에서 수익은 투자사, 공동제작사, 유통사 등으로 다시 나뉜다.

제작비와 마케팅 비용도 몇백억씩 반영된다. 이 영화는 약 105억원이 투입돼 평균보다 낮은 편이다. 통상 한국 상업영화 제작비는 200억~300억원에 다수 포진해 있다. 통상 마케팅 비용으로도 50억~100억이 빠져나간다.

1400만 관객 기준으로도 제작사에 귀속되는 이익은 수백억원 수준에 그치는 구조다. 이익이 특정 기업에 집중되지 않고 극장과 배급사, 제작사 등으로 분산되기 때문에 주가 반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수상 직후 제작사인 바른손이앤에이 주가가 급등한 전례가 있었다. 하지만 이후 주가가 상승분을 반납하기까진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파묘’ 흥행 때도 쇼박스, 덱스터, 위지윅스튜디오 등이 단기 상승 후 제한적인 흐름을 보이는 상황이 반복됐다.

글로벌 자본은 IP와 플랫폼으로 이동하고 있다. 콘텐츠를 여러 번 판매할 수 있는 권리다. 후속작, 리메이크,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판권, 상품화로 수익이 이어진다. 플랫폼은 이 IP를 반복 소비로 연결한다. 가입자와 체류 시간을 기반으로 매출을 만든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의 OTT 대어들은 IP와 플랫폼을 모두 장악한다. 그래야 돈이 된다.

스트리밍 엔터테인먼트 1위 기업인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4000억달러(약 600조원) 이상이다. 글로벌 시총 14위(19일 기준) 삼성전자나 22위 SK하이닉스를 제외하면 국내 기업 중 넷플릭스와 비교할 만한 체급의 상장사는 없다.

이처럼 수익이 소수 플랫폼 기업으로 집중되는 이유는 구조에 있다. 콘텐츠는 한 번 제작되면 추가 비용 없이 여러 이용자에게 반복 판매가 가능하다. 이때 가입자를 직접 보유한 플랫폼이 유통과 가격을 통제하면서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가는 구조가 형성된다. 여기에 규모 효과가 더해진다. 가입자가 많을수록 콘텐츠 투자 여력이 커지고, 이는 다시 이용자 유입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OTT 시장은 콘텐츠 경쟁을 넘어 수백조원짜리 인수 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가 진행 중이다. 최근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 인수를 둘러싸고 넷플릭스와 경쟁한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가 대표적 사례다. 파라마운트는 파라마운트 픽처스(영화 스튜디오)와 파라마운트+(OTT 플랫폼)를 보유하고 있지만 콘텐츠 규모와 IP 경쟁력에서 넷플릭스와 디즈니 대비 열위에 있다. 이번 인수전은 이를 보완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국 종합 미디어·콘텐츠 기업 WBD는 대형 IP를 한 번에 확보할 수 있는 매물이었다. 워너브라더스(영화 제작 스튜디오), HBO(미국 프리미엄 케이블 채널·콘텐츠 제작사), CNN(글로벌 뉴스 채널), 디스커버리(다큐·라이프스타일 채널)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IP 경쟁 속에서도 ‘재무 안정’과 ‘확장 투자’라는 전략은 갈렸다. 파라마운트 스카이댄스는 1100억달러(약 159조원) 규모의 인수금액을 제안해 워너브라더스 디스커버리(WBD) 인수를 사실상 눈앞에 두고 있다. 파라마운트는 넷플릭스(가입자 3억명 이상), 디즈니+, 아마존 등에 이어 5위권에 머물러 있어 자체 IP 경쟁력만으로는 격차 축소에 한계가 있었다.

인수합병을 통해 부족한 IP를 단숨에 보강하고 시장 내 입지 확장하겠다는 전략이다. 넷플릭스는 이번 인수전에 파라마운트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하지 않겠다며 이탈했다. 이후 주가는 장중 약 14% 상승하며 대규모 인수에 따른 재무 부담을 피한 선택이 긍정적으로 반영됐다. 1위 사업자인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기존 IP를 기반으로 한 안정적 수익 구조를 유지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한국 영화 시장은 오랫동안 관객 수로 흥행을 설명해왔다. 영화를 산업이기 이전에 문화 예술로 소비해 온 관점이 녹아든 계산법이다. 하지만 숏폼과 OTT 확산으로 콘텐츠 소비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유통 구조도 달라졌다. 극장 개봉 이후 OTT 공개가 일반화하면서, 콘텐츠의 수익 경로 역시 다층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극장 성적만으로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결국 시장은 점점 더 명확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봤는지가 아니라, 그 소비가 어떤 방식으로 수익으로 전환되는지를 따지는 흐름이다.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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