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소각’보다 ‘파쇄’, 농업 부산물의 아름다운 순환


매년 봄이면 들녘에 연기가 피어오른다. 수확 뒤 남겨진 고춧대, 콩대, 과수 잔가지를 태우는 관행 탓이다. “불에 태워야 해충이 없어진다”라는 말이 수십 년을 이어왔다. 그러나 이 오래된 믿음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논두렁의 작은 불씨 하나가 마을이나 산 전체를 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의 뼈아픈 경험으로 알고 있다.

산림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산불 459건 가운데 32건이 영농 부산물과 논·밭두렁 태우기에서 시작됐다. 비극을 부르는 소각은 올해도 소리 없이 진행 중이다. 농촌진흥청 연구에 따르면, 논·밭두렁에 사는 미생물의 89%는 거미·딱정벌레 같은 익충이다. 정작 해충은 땅속 깊이 숨어 불길을 피한다. 결국 소각은 천적인 익충만 없애는 역효과를 낳는다. 산불 위험과 생태계 파괴, 두 가지 피해를 함께 부르는 셈이다.

여기서 시작된 문제의식이 새로운 정책의 출발점이 됐다. 2024년, 현장의 위험을 방치하지 않겠다는 농진청 직원들의 적극 행정은 ‘영농 부산물 파쇄지원단’ 발족으로 이어졌다.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찾은 결과였다. 이는 그 해 ‘적극 행정 우수사례’로 선정될 만큼 현장에서도 그 필요성도 인정받았다. 오랜 관행을 바꾸고자 하는 공직자들의 노력이 농촌 현장을 바꿔 놓았다.

‘영농 부산물 파쇄지원단’은 올해 전국 139개 시군으로 운영 범위를 대폭 확대했다. 예산만 총 146억 원이 투입됐다. 행정안전부의 지원과 농식품부의 장비 임대, 산림청의 인력 협조까지 범정부적 협력의 결과다. 지난 5일, 진주시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현장 실천 결의대회’는 정책 확산의 중요한 촉진제가 됐다. 봄철 산불 조심 기간인 1월부터 5월까지는 현장 지원이 집중 이루어지며, 이후에도 지속해서 지원이 이루어질 계획이다.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문 공조로 농촌의 실질적 어려움이 해결되고 있다.

지원 방식은 간단하다. 파쇄지원단이 직접 농가를 찾아간다. 영농 부산물을 무상으로 수거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파쇄한다. 산림 인접지(100m 이내)나 고령, 장애, 여성 등 취약 농가가 우선 지원 대상이다. 거동이 불편한 농업인도 전화 한 통이면 지원받을 수 있다. 작업 전, 영농 부산물을 차량이 진입할 수 있는 곳에 두면 더 원활하게 진행된다. 파쇄가 필요한 농가는 시군 농업기술센터로 신청하면 된다.

영농 부산물을 ‘소각’이 아닌 ‘파쇄’로 처리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자원순환’을 실현하는 길이다. 고춧대나 잔가지는 잘게 부수어 토양으로 돌려보내면 천연 퇴비가 된다. 산불을 막고, 미세먼지를 줄이며, 탄소 배출량도 적은 핵심적인 저탄소 모델이다. 결국, 영농 부산물은 쓰레기가 아니라 다음 농사를 준비하고 건강한 농토를 가꾸는 소중한 자산임을 기억해야 한다.

농사는 자연에서 얻은 선물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주는 순환의 과정이다. 정성스레 돌려준 부산물은 곧 풍년의 밑거름이 된다. 이제 영농 부산물 파쇄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도움이 필요할 땐 주저 말고 파쇄지원단의 문을 두드리자. 농촌의 안전과 환경도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지킬 수 있으니 말이다.

농촌진흥청도 올봄 매캐한 연기 대신 건강한 흙내음으로 가득한 들녘 가꾸기에 앞장서겠다. 파쇄의 소리가 농촌의 새로운 희망을 알리는 교향곡으로 울려 퍼지길 기대해 본다.

김상경 농촌진흥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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