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중동 악재에 늘어난 달러 수요…은행 외화 유동성 ‘뚝’

4대 은행 중 3곳 외화 LCR 감소
일부 은행 3개월 만 40%P 하락
미국채 금리 급등에 차환 리스크도
건전성 규제 설계 신현송 청문회 주목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환율이 표시되고 있다.[연합]

[헤럴드경제=서상혁 기자] 달러 수급 불균형에 중동 사태까지 터지면서 은행권의 달러 곳간도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원/달러 환율 치솟자 기업의 달러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유동성을 넘어 자본 건전성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고환율 기조가 계속되면서 은행권 달러 유동성 지표도 떨어지고 있다. 이번 달 9일 기준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외화 LCR 비율(잠정)은 150.26~204.93%으로 집계됐다. 이중 3곳이 전년 말 대비 하락했다.

특히 4대 은행 중 A 은행의 경우 전년 말 대비 무려 44%포인트(p)가량 내려간 것으로 나타났다. 개전 직후인 2월 말과 대비하면 약 30%p 내렸다.

LCR이란 고유동성자산을 향후 30일간 순현금유출액으로 나눈 비율로, 은행이 위기 상황에서도 한달 동안 적정한 수준의 현금을 보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유동성 지표’다.

최근 LCR 하락의 주원인으로는 기업들의 달러 수요가 꼽힌다. 고환율 상태가 지속되면서 각종 대금 결제 비용 등 기업의 운전 자금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4대 은행의 외화 대출 잔액은 올 1월 말 63억5200만달러에서 3월말 68억4100만달러로 증가했다. 투자 차익 실현 차원에서 예금자들이 달러 예금을 인출한 것도 한 몫했다.

은행들이 외화채권 차환(롤오버) 규모를 축소한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국채 금리가 급등하자, 높은 조달 비용을 감수하며 채권을 새로 발행하는 대신 보유한 달러로 만기 채권을 상환하는 ‘디레버리징’을 택했다는 추측이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미국채 3년물 금리는 개전 직전인 2월 22일 연 3.381%에서 3월 22일 3.940%으로 뛰었다.

금융당국이 정한 외화 LCR 비율은 80%로 은행권의 유동성 지표는 아직까지 ‘매우 안정적’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대형 은행도 결코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환율이 상승하면 은행이 보유한 외화자산의 위험가중자산(RWA)도 늘어나 건전성 리스크가 심화할 수 있다.

당장 은행권은 외화예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등 외화 LCR 방어에 공을 들일 전망이다. 그러나 이 역시 자칫 수급 불균형을 심화시킬 수 있는 만큼,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평가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동 사태가 더 지속된다면 외환 리크스에 대해서도 심층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근본적으로는 물밑으로 미국과 통화 스와프 협상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8.1원 내린 1481.2원에 마감했다. 중동 사태 낙관론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수급 불균형에 중동 리스크라는 악재까지 겹친 만큼, 원/달러 환율은 상승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원/달러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7일까지 9영업일 연속 1500원을 넘겼다.

중동 사태로 은행권 유동성 리스크가 대두되면서 15일 예정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도 관련 질의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신 후보자는 국제결제은행(BIS)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 시절 외환건전성 부담금 등 거시 건전성 규제를 설계한 인물이다. 특히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때마다 달러가 국내 시장에서 유출되는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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