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밖 비공개 시장서 쉽게 대출
사모대출 3250조원…10년간 4배 ↑
‘40% 환매요청’ 블루아울 사태 충격
환매제한 위기에 ‘느린 금융위기’ 우려
은행 넘어 보험·연금 전이 가능성 촉각
버핏·다이먼 “신뢰 무너지면 연쇄 이탈”
“시작일 뿐…3~6개월후 리스크 본격화”
![]() |
“사모대출 부실문제, 예상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
“극장에서 불났다 외치면 모두 문으로 달려간다”(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이사회 의장)
미국 월가의 대표적 두 거물이 잇따라 ‘사모신용’을 경고하고 나섰다. 은행권 밖에서 급성장해 온 고금리 대출, 이른바 ‘사모대출(Private Credit)’ 리스크가 다른 금융산업으로 빠르게 전이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때 풍부한 유동성과 저금리를 발판으로 급팽창했던 사모대출 시장이 이제는 금융 시스템 전반의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투자자들에 보내는 연례서한에서 “불투명한 구조의 사모 대출 시장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경우 투자자들이 대거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이사회 의장 역시 “은행시스템 모두가 서로 영향을 미치고, 한곳에서 발생한 문제는 다른 곳으로 번질 수 있다”며 금융기관 스트레스가 빠르게 전이될 수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붐비는 극장에서 누군가 ‘불이 났다’ 외치면 모두가 달려 나갈 것이고, 여전히 남들보다 먼저 문에 도착하는 게 이득이다”고 현 상황을 빗대어 표현했다.
실제 이상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5일(현지시간) 지난해 중반부터 사모대출 시장에서 균열 조짐이 본격화됐다고 전했다. 은행 대출이 닿지 않는 기업들에 자금을 공급하며 ‘그림자 금융’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던 이 시장은, 최근 환매 제한 확대와 대출 부실 우려,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소프트웨어 업종 충격이 겹치며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그림자 금융’ 사모신용이 뭐길래
사모신용, 또는 사모대출은 말 그대로 은행이나 공모 채권시장이 아니라 비공개 시장에서 이뤄지는 대출이다. 통상 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렵거나, 회사채를 발행할 만큼 신용도가 높지 않거나, 이미 차입 한도가 찬 기업들이 주요 차주다. 전통 금융권 바깥에서 자금이 공급된다는 점에서 흔히 ‘사채’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대형 운용사와 연기금, 보험사, 사모펀드 등이 얽힌 거대한 제도권 외곽 시장에 가깝다.
이 시장이 급성장한 배경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권 규제가 강화되면서 은행들은 위험한 기업대출을 예전처럼 공격적으로 늘리기 어려워졌다. 그 빈자리를 사모신용 운용사들이 파고들었다. 사모펀드가 중견기업을 인수할 때 필요한 자금을 대주는 ‘직접대출’이 대표적이었다. 복잡한 공모 절차 없이 비교적 빠르고 유연하게 자금을 공급할 수 있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공모채보다 더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시장은 폭발적으로 커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사모대출 규모가 지난 10년간 4배 가까이 늘어 약 2조1500억달러(약 3250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한다. 반면 대체투자관리협회(AIMA)는 보다 넓은 범주의 사모신용 시장 규모를 3조5000억달러 수준으로 본다. 집계 범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공통된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모신용은 더 이상 틈새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신용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덩치를 가진 영역이 됐다는 점이다.
취약한 자금 회수 구조…“먼저 나가야 산다” 공포
문제는 이 거대한 시장이 겉보기보다 덜 투명하고, 스트레스가 생겼을 때 자금 회수 구조가 취약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사모신용 펀드는 투자자들에게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지만, 동시에 자금 회수는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기업개발회사(BDC·Business Development Company)로 불리는 일부 상장 사모신용 펀드는 개인투자자 접근성이 높으면서도 보유 자산은 유동성이 낮은 비상장 대출로 채워져 있다. 평상시에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지만, 투자자들이 불안해져 한꺼번에 환매를 요구하면 구조적 약점이 노출되는 이유다.
문제는 ‘선착순 심리’다. 사모대출 펀드는 통상 분기별 또는 일정 기간마다 환매 한도를 설정해 둔다. 이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나중에 빼려다 못 뺄 수 있다”는 불안이 커질수록 오히려 먼저 돈을 회수하려는 유인이 생긴다. 남보다 먼저 환매를 신청해야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인식이 퍼지면, 환매 요청이 다시 추가 환매를 부르는 자기강화적 구조가 형성된다. 겉으로는 전통적인 뱅크런과 다르지만, 자금 회수 경쟁이라는 본질에서는 닮은 구석이 있다.
이상 신호는 이미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일부 펀드에서는 차입 기업들이 이자 지급을 미루는 사례가 늘고 있다. 관련 비중은 2019년 4%에서 최근 8% 수준으로 올라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단순한 숫자 변화라기보다, 대출기업의 현금흐름이 악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로 읽힌다. 자동차 부품업체 퍼스트브랜즈(First Brands),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업체 트리컬러홀딩스(Tricolor Holdings) 등의 파산 사례도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특히 올해 들어선 AI 충격이 이 시장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사모대출을 많이 쓴 대표 업종 가운데 하나가 소프트웨어 기업들인데, 이들 중 상당수는 기존 인력 중심 서비스나 반복 업무를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 그런데 생성형 AI와 자동화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일부 기업의 서비스 모델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막대한 인프라 투자와 경쟁 심화, 가격 압박까지 겹치면 실적 둔화가 현실화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 기업들에 돈을 빌려준 사모신용 펀드의 건전성도 동시에 흔들릴 수 있다.
![]() |
블루아울 40% 환매 요청…‘고수익·안정성’ 원칙 흔들
이 대목에서 최근 가장 주목받는 사례가 블루아울캐피탈(Blue Owl Capital)이다. 블루아울은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대형 대체자산 운용사로, 직접대출과 GP(General Partner) 전략, 부동산 등에서 빠르게 몸집을 키워온 회사다. 특히 기술·소프트웨어 기업 대상 대출에 강점을 보여 왔고, 개인자산가와 기관 자금을 폭넓게 끌어모으며 사모신용 호황기의 대표 수혜자로 평가받아왔다.
그런 블루아울이 지난 2일 자사 대표 테크 분야 사모대출 펀드 2개에서 펀드 규모의 약 40%에 달하는 환매 요청이 몰렸다고 밝힌 것은 시장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회사는 결국 환매를 5% 수준으로 제한했다. 단순히 한 운용사의 기술적 조치라기보다, “투자자들이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를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다시 말해 블루아울 사태는 단순한 개별 운용사 문제가 아니라, 사모신용 시장이 그간 약속해온 ‘고수익·안정성·비상장 유동성 관리’의 조합이 흔들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블루아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레스 매니지먼트,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 블랙스톤, KKR, 모건스탠리, JP모건, 골드만삭스 등 대형 운용사와 투자은행의 사모신용 부문도 환매 제한 조치를 시행했거나 유사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대부분은 이를 ‘위기’가 아니라 투자자들의 일시적 재조정 국면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시장이 이를 그대로 낙관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다.
사모신용 시장을 둘러싼 스트레스는 수익률 측면에서도 드러난다. BDC들은 조달금리 상승 압박을 받는 반면, 사모대출에서 얻던 두 자릿수 수익률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결국 돈을 빌려 오는 비용은 오르는데, 빌려줘서 얻는 수익은 떨어지는 압박을 동시에 받고 있는 셈이다. 뉴욕 시포트 글로벌 홀딩스의 존 지오르다노 전무가 “신용 사이클에서는 손실과 평가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이들이 금리를 5%가 아닌 더 높게 책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다만 시장 전체가 곧바로 2008년식 시스템 위기로 직결된다고 단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지오르다노는 BDC들이 상대적으로 낮은 레버리지 구조를 유지하고 있고, 선순위 채권을 보유하거나 차입 기업에 지분 형태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으며, 은행권 자본도 과거보다 두텁다는 점을 들어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즉, 문제는 분명하지만 곧바로 ‘리먼브러더스 순간’으로 직행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2008년 금융위기와 달라…“보험·연금으로 번진다”
다른 전문가들은 이번 위기의 전염 경로가 은행이 아니라 보험과 연금 쪽일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까다롭다고 본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하비에르 코로미나스 글로벌 거시전략 이사는 보고서에서 사모신용 시장이 이미 ‘순차적 위기’ 초기 단계에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전체 포트폴리오의 25~35%가 AI 충격에 노출돼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코로미나스는 은행의 BDC 대출은 관리 가능한 수준일 수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미국 생명보험사와 연금보험사들의 사모신용 투자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관련 투자 규모는 지난 10년간 두 배 이상 늘었다. 현재 사모신용은 미국 보험사 전체 투자자산의 약 35%, 영국 보험사 자산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사모펀드와 연계된 보험사들이 보유한 자산만 약 1조달러 규모에 달한다.
이 말은 사모신용 시장의 손실이 현실화될 경우 충격이 은행 창구에서 한꺼번에 폭발하는 방식이 아니라, 보험사의 지급여력 악화나 연금자산의 가치 훼손 같은 형태로 천천히, 그리고 깊게 번질 수 있다는 뜻이다. 코로미나스는 “2008년과 같은 뱅크런이 아니라 은퇴 자산이 서서히 잠식되는 방식으로 확산될 것”이라며 “실시간으로 감지하기 어렵고 회복도 더 어렵다”고 지적했다.
안드로메다 캐피털의 알베르토 갈로 최고투자책임자(CIO)도 이번 위험을 2008년 서브프라임 위기와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번 위기는 전혀 다른 형태이며 전염 경로도 다르다”고 말했다. 서브프라임 위기는 은행을 통해 빠르게 확산됐고 자산가치 평가도 상대적으로 명확했지만, 이번에는 보험사를 통해 위험이 전이될 수 있고 시가평가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느리고 불투명한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규제당국은 늘 지난 위기를 기준으로 대응하지만, 이번에는 오히려 그 정반대, 즉 ‘거울상’ 같은 위기일 수 있다”고 했다.
AI발 ‘눈덩이 효과’…‘느린 위기’ 부를 수도
공개시장에서는 이미 경계 심리가 반영되고 있다. 올해 들어 일부 상장 BDC 주가는 순자산가치(NAV) 대비 약 20% 할인된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고, 사모신용과 밀접한 미국 소프트웨어 서비스 업종 주가도 약 20% 하락했다.
런던 말버러의 로리 도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일부 자산운용사에 대한 투자 비중을 줄였고, 스위스 사모펀드 운용사 파트너스그룹 지분도 매도했다고 밝혔다. 파트너스그룹의 슈테펜 마이스터 회장 역시 AI로 인한 산업 구조 변화로 향후 몇 년간 사모신용 부도율이 두 배로 뛸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도위는 공공시장과 사모시장에서의 AI 투자 연계 구조가 ‘눈덩이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쪽 시장의 밸류에이션 충격이 다른 쪽 시장의 자금 회수 압박으로 번지고, 그 압박이 다시 실물 기업의 자금 사정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이 먼저 무너질지 알기 어렵고, 결국 자기실현적 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파장을 두고는 시차에 주목하는 시각이 많다. 갈로 CIO는 “문제는 이제 막 드러나기 시작한 단계이며, 내일이 아니라 3~6개월 뒤 본격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00개 기업 중 이미 10개는 사실상 죽어 있는 상태”라고까지 표현했다. 이는 지금 보이는 환매 제한이나 주가 할인, 이자 연체 증가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경고다.
결국 사모신용 시장을 둘러싼 우려의 핵심은 단순히 ‘부실 대출이 좀 늘었다’는 수준이 아니다. 은행이 빠진 자리를 메우며 비대해진 비공개 신용시장이, AI 충격과 금리 부담, 유동성 불안 속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가 문제의 본질이다.
정목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