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고환율에 수입물가 직격…한국 경제 ‘스태그플레이션’ 기로 [수입물가 16% 급등]

수입물가 외환위기 이후 최대폭 상승
두바이유 87.9%, 환율 2.6% 동반 상승
성장둔화 우려도…1% 초반 전망도 나와
한은 고민 깊어져…금리동결 지속 전망

 

중동전쟁 장기화로 인해 유가가 크게 오른 가운데 유류비 부담이 심해진 화물차주들의 자발적 운행 중단이 점차 늘고 있다. 14일 오후 인천의 한 주차장에 화물 트레일러들이 가득 주차돼 있다. 인천=임세준 기자

 

지난달 수입물가가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면서 한국 경제가 물가 상승과 경제성장 둔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위기의 기로에 놓였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 급등의 진원지는 ‘이란전쟁’이었다. 중동에 대한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경제구조상 유가와 환율의 동반 상승은 전방위적 비용 인상으로 이어진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과 두바이(Dubai)유 가격은 각각 전월 대비 2.6%, 87.9%씩 올랐다.

3월 수입물가는 모든 품목에서 일제히 올랐다. 원유(88.5%) 등 광산품을 중심으로 원재료가 전월 대비 40.2% 올랐고, 중간재는 나프타(46.1%), 제트유(67.1%) 등 석탄 및 석유제품과 부타디엔(70.6%) 등 화학제품 등이 오르며 전월 대비 8.8% 올랐다. 자본재와 소비재도 1.5%, 1.9%씩 올랐다.

수입물가 상승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석유류 가격 상승에도 석유 최고가격제 등에 전년 대비 2.2% 오르며 목표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앞으로다. 통상 수입물가와 소비자물가의 시차는 1~3개월이다.

이문희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국제유가의 급격한 상승으로 3월 수입 물가가 석유류 휘발유 등 석유류 중심으로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중동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의 효과 등 요인들에 따라 (소비자물가가)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전쟁이 장기화하면 고유가, 원재료 공급 차질 등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해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한은에서는 환율과 유가가 각각 10% 오를 경우 물가상승률이 최고 0.6%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추산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IB(투자은행) 8곳이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2월 말(2.0%)에서 3월(2.4%)로 0.4%포인트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도 15일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을 지난해 11월(1.8%)보다 0.7%포인트 높인 2.5%로 제시했다.

외부 충격이 끌어올린 물가는 성장 둔화로 이어진다.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임금이 제자리걸음인 상황에서 체감물가가 뛰면 가계의 실질 구매력은 쪼그라든다. 3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전월보다 5.1포인트 하락하며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아울러 수입업체와 달러 차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원가와 금융 비용이 동시에 치솟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고환율·고유가가 장기화할 경우 수출기업도 비용만 늘고 수익은 정체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해외 IB 중에서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 초반대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본 곳도 나왔다. 앞서 한국은행이 제시한 전망치(2%)의 절반 수준이다.

이란전쟁 국면이 장기화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이란 사태가 종결되면 그럴(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작다고 얘기할 것”이라면서도 “최악의 시나리오로 간다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가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신현송 한은 총재 후보자도 국회 서면질의 답변을 통해 “중동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및 공급 차질로 물가의 상방 압력과 성장의 하방 압력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반도체 경기 호조 등이 충격을 일정 부분 완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은의 고민도 더 깊어질 전망이다.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 둔화를 부채질할 우려가 있고, 낮추자니 물가를 자극할 수 있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이란전쟁의 충격이 물가에 본격 반영되기 전까지는 동결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5월 말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부터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주재할 가능성이 큰 될 신현송 후보자는 국회 서면답변을 통해 “현재의 기준금리 연 2.50%는 중립금리 추정 범위의 중간 정도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중립금리란 물가 상승이나 하락 압력 없이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만드는 이론적인 금리 수준을 말한다.

앞으로 관건은 미국과 이란의 협상 결과와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효과 등이 될 전망이다.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은 여전히 이란 전쟁 전개 상황에 따라 요동치고 있다.

신현송 후보자는 국회 답변서에서 “최근 중동전쟁으로 물가의 상방 압력과 성장의 하방 압력이 동시에 확대되고 취약부문의 어려움도 가중된 상황에서 추경이 이런 충격의 영향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추경이 올해 성장률을 0.2%포인트 정도 상승시킬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 IMF도 “수출 호조에도 중동 전쟁 영향을 받았으나 추경 효과가 보완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김벼리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