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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지난 7년간 사실상 사문화했던 주주대표소송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는 최근 언론보도가 있다. 수익률 18.82%를 기록하며 기금 1500조원 시대에 진입한 국민연금이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주대표소송은 이사가 위법행위나 임무해태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음에도 회사가 책임을 묻지 않을 때,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다. 승소해도 손해배상금은 주주가 아닌 회사에 귀속된다. 누가 봐도 소송제기 유인이 낮은 구조다. 경제개혁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1997년 이래 2017년까지 21년간 판결이 난 사건은 겨우 137건, 연평균 6.5건에 불과했다. 그나마 상장사는 44개에 그쳤다. 미국에서 매년 200건 이상의 대표소송이 제기되는 것과 대비된다. 제도는 있었지만 실질은 미미했다.
역설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 저조한 소송들에서도 원고 승소율은 45%를 웃돌았다. 상장회사 소송 중 본안 판결까지 간 사건의 승소율은 48.8%에 달한다. 승소한 44건의 손해 인정 총액은 1조2186억원이었고, 실제 배상 명령은 4508억원이었다. 재계의 오랜 우려와 달리, 소송의 질은 높았다. 문제는 소송의 양이 너무 적었다는 것이다. 경영진의 기업가치 훼손 행위에 비해 주주들의 견제 수단은 형식에 머물렀다.
국민연금은 이 구조를 바꾸려 한다. 3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대표소송 관련 검토 체계를 개선하는 안을 논의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대표소송 검토·실행의 실무 주체를 기금운용본부로 명확히 하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자문·심의 중심으로 재정비했다. 기존에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와 역할이 중첩되며 번번이 결정이 지연됐다. 둘째, 소송 대상을 비공개 대화 및 중점 모니터링 과정에서 개선 요구를 거부한 기업으로 한다.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되 응하지 않으면 소송이라는 최후 수단을 쓰겠다는 메시지다. 임원 보수·법령 위반·산업안전 등 중점관리 사안 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와 관련한 중대한 사안의 개선을 거부한 기업이 표적이 된다.
2월 말 기준 395조원의 국내 주식을 보유한 국민연금이 직접 소송에 나선다는 신호는 단순한 법적 위협을 넘어선다. 지분 5% 이상 보유 기업만 약 300개다. 기업들의 경영진은 이제 단순히 주주총회 의결권을 의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이사회 결정이 소송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2대 주주가 대표소송을 제기한 현대엘리베이터 사건에서 법원은 계열사 경영권 방어를 위한 파생상품 계약 체결로 발생한 손해 1700억원에 대해 이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경제개혁연대 등이 제기한 현대자동차 사건에서는 두 건의 대표소송에서 826억원과 700억원이 각각 인용됐다. 이사회의 방어 가능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그 공백이 소송의 빌미가 된다.
기업이 갖춰야 할 것은 명확하다. 이사회는 거래의 목적·절차·필요성을 문서화해야 한다. 계열사 지원·자사주 처분·임원보수 결정 등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안건은 사외이사로 구성된 위원회의 독립적 검토를 거쳐야 한다. 국민연금과의 비공개 대화 채널을 실질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주총 의결로 끝났다고 안심할 수 없다. 주총 전 절차와 이사회 판단 근거가 사후 소송에서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된다.
주주대표소송은 시끄럽다. 기업 평판에 타격을 준다. 그러나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억제력으로서, 그리고 이미 발생한 손해를 회사에 환원하는 사후 구제 수단으로서 가장 핵심적인 도구다. 국민연금이 방아쇠에 손을 얹었다. 이사회가 스스로를 설명하지 못하면 법정에서 설명하게 될 것이다.
문성 율촌 기업지배구조센터 부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