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구호 활동가 현행범 취급한 이스라엘에 분노한 국가 정상들

활동가들 손에 수갑, 무릎 끓려 구금한 영상 파문
극우파 장관이 활동가들 조롱, SNS 게시까지
각국 정상, 외교 수장들 “경악할 일” 규탄
네타냐후 “이스라엘 규범에 맞지 않아” 사태 수습 진땀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가운데)이 20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전달하려다 이스라엘 경비대에 억류된 활동가들을 조롱하고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이스라엘 당국이 가자지구에 구호물품을 전달하려던 활동가들을 현행범 취급하며 구금한 사실이 공개되자 여러 국가의 정상들이 일제히 비난을 쏟아냈다. 이스라엘은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내각 관료가 나서 활동가들을 조롱하고, 이 모습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공개하기까지 했다. 국제 사회의 분노가 거세지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례적으로 해당 장관을 비판했다. 그럼에도 국제 사회의 비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이타마르 벤그비르 이스라엘 국가안보장관은 20일(현지시간) 가자지구 해상 봉쇄를 뚫고 구호품을 전달하려다 억류된 국제 활동가들을 찾아가 조롱하는 영상을 자신의 SNS에 직접 공개했다.

해당 영상에는 이스라엘 경비 대원들이 활동가들의 손을 묶은 채 아스돗 항구의 구금 시설 바닥에 무릎꿇린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왔다. 한 활동가가 강압적인 조치에 항의하며 “팔레스타인에 자유를(Free Palestine)”이라고 외치자 경비 대원들은 이 활동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끌어 내리고, 거칠게 끌고 나갔다.

벤그비르 장관은 수갑을 찬 채 무릎을 꿇고 있는 활동가들 앞에서 대형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히브리어로 “이스라엘에 온 것을 환영한다, 우리가 바로 이 땅의 주인이다”라며 이들을 조롱했다. 벤그비르 장관이 한 남성과 격렬한 언쟁을 벌이기도 했고, 다른 활동가가 강제로 제압당하는 모습을 보고는 “원래 이래야 마땅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벤그비르 장관은 이스라엘 극우 정당인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인의 힘) 당대표로, 연정 구성으로 네타냐후 총리의 집권을 지원하고 있다.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장관이 나서 활동가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조롱하고 정당화하는 모습에 국제사회는 규탄 성명을 쏟아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운데)가 이삭 헤르조그 대통령(앞줄)과 함께 지난 1월 하마스와 교전하다 숨진 경찰관을 기리는 추모식에 참석했다. [로이터]

카야 칼라스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성명을 통해 “EU 시민들도 포함된 활동가들에 대한 처우는 굴욕적이었고 잘못된 것이었다”며 “벤그비르 장관의 행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직을 맡은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처신”이라고 지적했다.

EU 집행위원회 역시 “구금된 모든 사람은 안전과 존엄을 보장받고 국제법에 따라 대우받아야 한다”며 “이들 활동가에 대한 처우는 전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SNS를 통해 “구호선에 탑승한 민간인들에 대한 끔찍한(abominable) 처우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캐나다는 폭력 선동을 반복해온 벤그비르 장관에 대해 이미 자산 동결과 여행 금지를 포함한 강력한 제재를 부과했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에 대한 폭력을 선동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벤그비르 장관에 대해 제재를 결정한 뉴질랜드는 이날 이스라엘 대사를 초치했다.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도 성명을 내고 “벤그비르 장관이 게시한 영상은 충격적이며 용납할 수 없다”며 “그의 행동과 구금된 이들에 대한 이스라엘 당국의 굴욕적인 처우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이날 이스라엘이 구금한 400여명의 국제 활동가 중에는 캐서린 코널리 아일랜드 대통령의 자매인 마거릿 코널리 박사를 비롯한 아일랜드인 12명이 포함됐다. 코널리 대통령은 전날 영국 방문 중 기자들에게 활동가 구금 사태에 대해 “아주 속상한 일”이라며 “마거릿이 자랑스럽지만, 걱정도 많이 된다”고 말했다.

이베트 쿠퍼 영국 외무장관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벤그비르 장관의 영상을 보고 “완전히 경악했다”며 “우리는 이스라엘 당국에 설명을 요구했으며 그들에게 우리 국민 및 모든 이들의 권리를 지킬 의무가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고 강조했다.

장노엘 바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엑스에 “우리의 분노를 표현하고 설명을 듣기 위해 주프랑스 이스라엘 대사 소환을 요구했다”고 게시했다. 호세 마누엘 알바레스 스페인 외무장관 역시 “끔찍하고 수치스러우며 비인도적인 처사”라며 이번 사태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자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대리를 초치했다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네타냐후 총리는 이례적으로 벤그비르 장관을 비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공식 성명을 통해 “벤그비르 장관이 구호선 활동가들을 대하고 다룬 방식은 이스라엘의 가치와 규범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며 외교적 파장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구호선 활동가들을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강제 추방할 것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는 세계 40여국의 친(親)팔레스타인 활동가 430여명이 가자지구에 구호품을 전달하기 위해 50척 이상의 선박에 나눠 타고 출항했다가 이스라엘 해군에 나포된 것에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 국적 활동가 2명과 한국계 미국인 1명도 억류됐고, 이에 이재명 대통령도 전날 국무회의에서 이스라엘이 국제법적인 근거 없이 한국인을 체포·감금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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