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미·중 패권, 코로나19, 러우 전쟁으로 설비투자에 ‘안보 비중’ 40% 넘겨”

설비투자 안보 기여 비중 14.3%P↑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베이징 텐단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김벼리 기자] 우리나라의 설비투자 결정 구조가 갈수록 경기 상황보다는 안보와 동조화되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미·중 패권경쟁과 공급망 재편 등 안보 논리가 기업의 투자 판단에서 점점 더 중요한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는 진단이다.

31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경제안보 패러다임의 부상과 우리나라 투자의 구조적 전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한국 경제에는 ▷설비투자의 경기 동조성 약화 ▷해외직접투자(FDI) 확대 ▷군비지출(방산투자) 증가 등 세 가지 구조적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이런 변화의 핵심 동력으로 ‘경제안보 패러다임의 부상’을 제시했다. 경제안보 패러다임은 경제적 수단이 안보를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동시에, 안보 논리가 기업·정부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 질서를 의미한다.

2017년 이후 미·중 패권경쟁,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수출통제·보조금·산업정책 등 경제적 수단이 안보 도구로 활용되는 현상이 가속화됐다는 주장이다.

한은이 구조적 벡터자기회귀(SVAR) 모형으로 설비투자 변동 요인을 분해한 결과 안보·글로벌 요인의 기여 비중이 2001~2019년 평균 29.6%에서 2020년 이후 평균 43.9%로 14.3%포인트 커졌다. 그중에서도 무역정책 불확실성 기여도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각각 8.7%포인트, 4%포인트씩 올랐다.

주력 산업들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 반도체 제조업의 경우 안보·글로벌 요인이 투자 변동에 기여 비중이 2016~2019년 33.1%에서 2020년 이후 48.7%로 15.7%포인트 뛰었다. 자동차 산업도 2015~2019년 25.9%에서 2020~2024년 50.9%로 24.9%포인트 확대됐다.

해외직접투자에도 경제안보 요인이 핵심 동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지정학적 리스크 충격 시 국내 설비투자는 위축되는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확대되는 ‘자본의 대외 전환’ 패턴이 관찰됐다. 글로벌 공급망 압력 충격에는 국내외 투자가 동반 확대하는 양상도 나타났다.

보고서는 해외직접투자 확대가 국내 제조 기반 공동화나 고용 유발효과 둔화 등 부담 요인이 있지만, 보조금 수혜·비관세 장벽 우회·글로벌 기술표준 경쟁 참여를 위한 ‘이너서클(Inner Circle)’ 진입과 대외순자산 축적 등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패러다임 전환은 거시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글로벌 차원에서는 진영 간 중복투자와 군비 지출 증가가 설비투자 수요를 확대하는 한편, ‘예방적 재고 확보’ 방식 전환과 우회 수출에 따른 공급망 다층화가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글로벌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경상수지 구조가 상품수지 중심에서 본원소득수지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는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본원소득의 원천이 결국 우리 기업의 제조 경쟁력에 토대를 둔다는 점에서 이런 전환이 상품수지의 바탕을 이루는 국내 제조·수출 기반의 약화로 귀결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한은은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 방향으로 ▷글로벌 가치사슬(GVC) 상단 협상력 활용과 기술동맹 네트워크 강화 ▷규제개혁·첨단산업 클러스터 조성을 통한 핵심 제조공정 ▷연구·개발(R&D) 국내 잔류 유인 제고 ▷고숙련 인재 양성을 통한 무형자산 역량 강화 등을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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