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멀리 했던 영재, 의사 대신 수학자의 길 택하더니…18년 뒤 호암상 영예

2026 호암상 수상자 오성진 UC버클리 교수
중·고교·KAIST 일찍 마쳐…31세에 美 교수
수학 싫어했지만 과학영재학교 때 흠뻑 빠져
삼성장학생으로 유학 “돈 걱정 없이 연구 몰입”
수학으로 블랙홀 비밀 규명, ‘필즈상’ 후보 주목
7월 美 펜실베이니아 ‘수학 올림픽’ 초청 강연


오성진 UC버클리 교수는 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가진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훗날 어려운 문제들을 쉽게 해결한 수학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2003년 만 14세였던 소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재학교인 한국과학영재학교에 합격하며 중학교를 조기에 마쳤다. 전국의 이공계 인재들이 모였다는 한국과학영재학교도 남들보다 6개월 일찍 졸업하며 17세에 KAIST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KAIST 학사 과정마저 2년 만에 마치고 19세에 삼성장학생으로 미국 땅을 밟았다.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지난 2019년 10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문 UC버클리의 수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당시 나이 31세였다.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각 교육과정을 월반하며 ‘최연소’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았던 오성진 UC버클리 교수는 2026년 제36회 삼성호암상 과학상 물리·수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되며 다시 한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시상식 다음날인 지난 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올해 호암상 과학상의 영예를 안은 오성진 교수를 만났다.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앳된 외모의 오 교수는 현재 UC버클리에서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며 연구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방학을 맞아 지난달 29일 한국을 찾은 그는 호암상 시상식을 끝낸 직후 숨 돌릴 틈도 없이 이달 말 대한수학회 창립 80주년 국제학술대회와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열리는 2026 세계수학자대회 발표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멀리 했던 수학, 영재학교 친구 만나 바뀌어…의사 父도 수학자의 길 응원


오성진 UC버클리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오 교수는 학창시절 수학을 싫어하고 생물 과목에 흠뻑 빠져 지냈다. 원래 꿈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국과학영재학교 2학년 때 수학을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오 교수는 “고등학교 때 밤을 새며 친구와 수학 이야기를 했다. 원래 의대를 가려고 했는데 그 친구의 영향을 받아 수학자가 됐다. 그 친구는 저의 영향을 받아 의사가 됐다. 지금도 연락하면 서로 덕분에 적성을 찾았다고 얘기한다”며 웃음을 지었다.

명제가 어떻게 명쾌하게 성립하는지 증명의 과정을 거치는 수학의 세계를 두고 그는 ‘아름답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수학의 언어에 매료된 오 교수는 KAIST 수리과학과 시절 본격적으로 수학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결심을 존중해줬다. 오 교수는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으셨지만 걱정과 함께 묵묵히 지원해주셨던 것 같다. 지금은 염려하시지 않는다. 이번 저의 수상으로 부모님도 주변에서 축하를 많이 받으셨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시상식 당일에도 수상소감에서 고등학교 시절 수학의 즐거움을 처음 일깨워준 기숙사 친구들, 수학의 길을 열어준 은사님들, 그리고 수학자라는 길로의 전향을 지지해준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같은 한국과학영재학교 출신이자 KAIST 물리학 학사, 프린스턴대학교 물리학 박사인 아내 박지현 씨는 오 교수에 대해 “학생 때 호기심이 가득 했던 남편의 모습을 지금도 기억한다. 여전히 똑같다”고 했다.

삼성도 일찍이 알아봐…“덕분에 돈 걱정 없이 연구에만 집중”


‘2026년도 제36회 삼성호암상 시상식’이 지난 1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오성진 UC버클리 교수 부부(과학상 물리·수학부문), 오동찬 국립소록도병원 의료부장 부부(사회봉사상), 윤태식 위스콘신대 매디슨 교수 부부(과학상 화학·생명과학부문), 김황식 호암재단 이사장, 유홍림 서울대 총장, 김범만 포스텍 명예교수 부부(공학상), 조수미 성악가(예술상), 에바 호프만 코펜하겐대 교수 부부(의학상),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호암재단 제공]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정신을 기려 1990년 제정된 호암상은 매년 ▷과학상(물리·수학부문, 화학·생명과학부문) ▷공학상 ▷ 의학상 ▷예술상 ▷사회봉사상 수상자를 선정해 메달과 상금 3억원을 수여한다.

호암재단은 작년 12월부터 국내외 전문가 46명으로 심사위원회를 꾸려 총 3차에 걸쳐 심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다시 노벨상 수상자 등 해외 석학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의 평가를 받는 등 4개월의 장고 끝에 수상자를 선정했다.

오 교수는 “존경하는 학계 동료와 석학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감동적”이라며 “2020년부터 ‘물리·수학’과 ‘화학·생명과학’으로 나눠 과학상을 시상하는 점에 특별히 감사드린다. 수학·물리 같은 기초 학문의 중요성을 믿어준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 교수와 삼성의 인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린스턴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삼성장학금 지원을 받으며 연구에 집중해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2017년에는 연구과제가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지원과제로 선정돼 더 심화된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오 교수는 “굉장히 긴 호흡의 연구였다. 5년 동안 지원을 받은 덕에 연구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최근 연구성과들도 거기서 시작됐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이번 호암상 시상식에 아내와 부모님 외에 한국에 있는 공동 연구자들도 초대해 수상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7월 美 ‘수학 올림픽’ 초청강연…미래 ‘필즈상’ 후보 주목


오성진 UC버클리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오 교수는 수년간 우주의 블랙홀 안팎 파동 변화를 계산한 끝에 블랙홀 밖에서 잦아들던 파동이 블랙홀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 오히려 폭발적으로 증폭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통해 다른 우주로 가는 통로라 믿었던 문이 존재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을 최초로 증명했다.

오 교수는 “뉴턴도 밤하늘 행성의 움직임을 계산하고 기술하고 싶어서 미적분학을 발명했다”며 “(뉴턴의 운동법칙인) ‘F=MA’라는 간단한 한 줄짜리 공식 안에는 삼라만상이 다 들어가 있다. 그런 깊이에서 오는 수학적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물리학에 특별히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순수 수학의 기준에 부합하는 좋은 문제들이 물리학에서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글로벌 학계는 블랙홀 내부의 불안정성을 수학의 비선형 쌍곡 편미분방정식으로 규명해 현대 수학의 난제를 해결할 돌파구를 제시한 오 교수의 업적에 주목하며 그를 2026 세계수학자대회 강연자로 초청했다.

세계수학자대회는 4년에 한 번 열려 ‘수학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2021년 호암상 과학상(물리·수학부문)을 받았던 허준이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이듬해 세계수학자대회에서 수학계 노벨상인 ‘필즈상’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만큼 오 교수 역시 미래의 필즈상 후보로 기대를 받고 있다.

수학만 생각하는 ‘외골수’…“난제 해결한 수학자로 기억되고파”


오성진 UC버클리 교수가 2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기피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수학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지 물었다. 오 교수는 “주변에 누가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의외의 답을 내놨다.

그는 “고등학교 때 수학에 재미를 느끼는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그 재미를 더 증폭시켰다. 그런 경험들이 없었으면 이 정도로 (수학에) 빠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수학자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도 주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공동 연구하는 과정에서도 항상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아이디어를 얻게 된다. 설령 수학을 모르는 사람이어도 대화를 통해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학만큼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 있느냐고 묻자 잠시 고민하더니 “없는 것 같다. 되게 외골수 같다”면서 “농구를 좋아했지만 책상에 오래 앉아서 연구하다보니 허리가 안 좋아져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훗날 어떤 수학자로 남고 싶은지 묻는 질문엔 이렇게 답했다. “예전에는 너무 어려웠던 문제들이 ‘오성진의 업적’을 통해 정말 쉬운 문제가 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기억되고 싶다”

오 교수는 한국에 머무는 기간에도 고등과학원 연구실에서 연구활동을 이어가다가 다음달 초 아내, 아들과 함께 다시 미국으로 출국한다.

오성진 UC버클리 수학과 교수가 걸어온 길
▶1989년 출생
▶2004년 서울 신목중학교 조기졸업
▶2006년 한국과학영재학교 조기졸업
▶2008년 KAIST 수리과학과 조기졸업
▶2013년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 박사
▶2016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젊은과학자상 수상
▶2019년~ UC버클리 수학과 교수
▶2026년 제36회 삼성호암상 과학상(물리·수학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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