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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베토벤’ 연출가 길 메머트 [연합] |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모차르트는 사랑받고 싶어 했던 사람이었어요. 일종의 팝스타였죠. 하지만 베토벤은 달랐어요. 그는 당장의 박수보다 미래를 생각했던 예술가였습니다.”
뮤지컬 ‘베토벤’으로 돌아온 독일 출신 연출가 길 메머트는 두 작곡가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바라본 모차르트는 ‘현재를 즐긴 천재’였고, 베토벤은 자신의 음악을 미래 세대에 남기고자 한 ‘혁명가’였다. 3년 만에 돌아온 ‘베토벤’이 도달하고자 하는 서사의 방향이다.
EMK뮤지컬컴퍼니의 ‘베토벤’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길 메머트 연출가는 이번 시즌을 ‘재연’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리론칭 이상의 변화”라며 이번 프로덕션을 “베토벤 2.0”이라고 강조했다. 초연 당시 제기됐던 아쉬움과 한국 관객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이야기 구조부터 음악, 캐릭터, 무대 언어까지 대대적인 수정을 거쳤다.
가장 큰 변화는 ‘서사의 중심축’이다. 초연에서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 편지를 둘러싼 미스터리에 집중했다면, 이번 시즌은 ‘인간 베토벤의 내면’과 ‘예술가로서의 투쟁’에 다가선다.
특히 토니(김지우·김지현·윤공주)의 역할 변화가 눈에 띈다. 길 메머트는 토니를 “로맨스의 상대가 아닌, 베토벤을 다음 단계로 이끄는 존재로 재정립했다”고 설명했다. 청력을 잃어가는 공포 속에서 무너지는 베토벤이 다시 음악으로 향할 수 있도록 돕는 정서적 동반자다.
“지난 시즌에는 ‘불멸의 연인’ 편지에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베토벤의 내면적 갈등과 청력 상실에 대한 공포,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변화의 중심에는 9번 교향곡 ‘합창’이 있다. 메머트는 평생 분노와 불신 속에 살았던 베토벤이 생의 끝에서 ‘합창’을 통해 인류 전체를 향한 화합을 노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베토벤은 굉장히 분노가 많고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했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는 전 세계를 포용하는 음악을 만들었죠. 지금 시대에도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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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재연에 합류한 배우 홍광호 [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이번 시즌에서 중요한 변화가 된 것은 ‘한국 관객의 정서’ 수용에 있다. 메머트는 “초연은 유럽적 감수성과 19세기 문학의 문법 위에서 만들어졌다”며 “그 정서가 한국 관객에게는 낯설고 때로는 불편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지난 3년간 체감했다”고 말했다.
초연은 베토벤과 토니, 즉 유부녀와의 관계 서사다. 유럽 문학에선 결혼제도에서 벗어나려는 여성의 이야기가 자연스러운 서사로 받아들여지지만, 한국 관객에게는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 매머트의 분석이다.
“우리는 그것을 여성의 자유와 해방의 문제로 접근했지만, 한국에서는 굉장히 민감한 요소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 과정에서 초연의 핵심 장치였던 ‘불멸의 연인’ 미스터리를 과감히 덜어냈다. 프라하, 테플리츠, 카를스바트 등 편지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는 유럽식 추리 구조가 한국 관객에겐 충분한 몰입을 주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그는 “유럽에선 굉장히 유명한 이야기지만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도시 간 거리나 맥락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과감히 정리했다”고 강조했다.
유럽식 상징주의 연출도 상당 부분 수정됐다. 초연 당시 등장했던 ‘돈이 가득 찬 욕조’ 장면이 대표적인 사례다. 메머트 연출가는 유럽 공연 문법에선 가능한 메타포였지만 한국 관객에겐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으로 받아들였다고 봤다.
“프로듀서에게 ‘한국 관객은 비엔나 카페에 왜 욕조가 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문화적 차이를 많이 배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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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베토벤’ 연출가 길 메머트 [연합] |
음악 역시 대대적으로 달라졌다. 초연이 베토벤 원곡의 변주와 편곡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실베스터 르베이 특유의 창작 넘버 비중이 크게 늘었다. 메머트는 “베토벤의 음악 세계와 르베이의 음악 세계를 하나로 섞으려 했다”면서 “관객들이 ‘이건 베토벤 음악’, ‘이건 르베이 음악’이라고 구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나의 음악 언어처럼 들리기를 바랐다”고 했다.
실제로 새 시즌에는 상당수 넘버가 새롭게 추가됐다. 그는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50대50, 혹은 60대40 정도의 비율”이라고 귀띔했다.
초연 당시 일부 관객들이 편곡 방향성을 지적했던 ‘엘리제를 위하여’도 이번엔 사라졌다. 그는 한국 공항의 짐 카트 안내음으로 사용되는 멜로디를 처음 듣고 놀랐다고 털어놨다. 매머트는 “문화마다 음악이 가진 기억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며 “어떤 멜로디는 이미 너무 강한 일상적 이미지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재연 ‘베토벤’엔 박효신과 홍광호가 더블 캐스팅됐다. 홍광호는 이 작품을 위해 반년 가까이 하루 4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다. 메머트는 “로버트 드니로가 ‘성난 황소’와 ‘택시 드라이버’ 역할을 위해 몸을 바꾸듯, 스스로를 밀어붙이는 배우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연출가가 보는 두 배우는 완전히 다른 결을 가졌다. 박효신이 섬세함 속에서 내면의 강인함을 끌어올린다면, 홍광호는 강인한 인상 속에 감춰진 유약함을 드러내는 배우라고 했다. 그는 “두 배우 모두 전혀 다른 방향으로 베토벤에 도달한다. 그것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했다.
뮤지컬 ‘베토벤’은 위대한 예술가를 통해 예술이 인류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들여다본다. ‘베토벤 2.0’이 ‘불멸의 작곡가’가 미래 세대에게 남기고 싶었던 음악에 초점을 맞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메머트는 “전쟁과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는 시대일수록 예술은 삶의 ‘디저트’가 아니라 ‘메인 코스’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몇 년 뒤 트럼프와 푸틴처럼 현재의 미국을 뒤흔드는 정치인, 전쟁을 일으키는 독재자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베토벤의 음악은 남을 겁니다. 저는 집에 가서 트럼프의 연설이 아니라 베토벤 음악을 듣습니다. 음악은 모든 사람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만국 공통어로 번역도 필요 없는 언어입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서울에 와 있는 것이겠죠.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