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도 늦다”…‘서울국제도서전’, 첫날부터 장사진

‘인간선언’ 주제…18개국 538개사 참여
러닝과 결합한 독서 등 체험 프로그램 강화
김혜경 여사 축사·문체부 장관 3년 만에 참석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출판사 부스를 방문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이상섭 기자]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집에서 8시에 출발해서 9시 좀 넘어왔는데도 벌써 이렇게 (대기)줄이 길 줄 몰랐어요. ”

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김모 씨(26)는 2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막을 올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에 입장하기 위해 이른 아침 행사장을 찾았다. 제68회를 맞은 국내 최대 책 축제 ‘서울국제도서전’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첫날부터 ‘오픈런’이 연출됐다.

AI 시대 ‘인간’ 질문…538개사 참여


대한출판문화협회와 서울국제도서전이 24~28일 공동 개최하는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총 18개국 538개사(국내 361개사, 해외 177개사)가 참여해 전시, 부대 행사, 강연 및 세미나, 현장 이벤트 등 416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도서전을 방문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작가와 연사는 326명(국내 281명, 해외 45명)에 달한다.

올해 도서전은 ‘인간선언 Homo duduri(호모 두두리)’를 주제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호모 두두리는 한국 신화 속 대장장이 신이자 헤파이스토스를 연상시키는 존재 ‘두두리’에서 따온 명칭으로, 인공지능(AI) 시대에 확률이 정해주는 답 너머로 질문을 던지는 인간을 의미한다. 도서전은 “안전한 대답을 거부하고 미지의 삶 속으로 뛰어드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인간”을 호명하며, 전문가와 독자가 함께 인간의 길을 묻고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마련한다.

영부인 김혜경 여사는 이날 도서전 개막식 축사에서 “올해 도서전 주제는 ‘인간선언’이다. AI와의 공존을 질문하는 인간은 참 시의적절한 주제”라며 “인류는 오랜 세월 책을 통해 끊임없이 배워 왔다.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책이 여전히 특별한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적으로 책은 삶의 중요한 안내자다. 어려운 시기에 위로해 주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삶의 방향을 안내했다”면서 “이번 도서전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과 사유하는 인간에 대한 각자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올해 도서전 주빈국은 한국과 수교 140주년을 맞은 프랑스다. ‘프랑스를 읽다 Lire la France’라는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베르나르 베르베르, 마리오드 뮈라이유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12명의 작가가 독자와 만난다.

프랑스를 비롯해 독일, 캐나다, 타이완, 싱가포르, 미국, 칠레, 태국 등 해외 17개국이 국제관 부스를 꾸렸다.

국내관에는 출판사와 출판 관련 단체가 참여해 북마켓 운영, 도서 전시, 강연, 사인회 등의 이벤트를 진행한다. 특히 ‘책마을’에선 110여 개의 독립출판사를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다.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2026 서울국제도서전’이 막을 올렸다. [이상섭 기자]


사전 예매 실패 후 현장 구매 도전…2030 흥행 주도


올해 도서전도 일찌감치 흥행을 예고했다. 출협에 따르면, 지난 8~12일 판매된 얼리버드 티켓은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매일 오전 당일 수량 예매가 시작되면 대기자가 3만명가량 몰렸다. 콘서트 티켓팅을 방불케 하는 ‘피켓팅’ 분위기 속에 며칠 동안 예매 창에 들어가도 사전 예매에 성공하기가 쉽지 않았다. 구매 첫날 접속 아이디(ID)당 49장까지 구매할 수 있게 했다가 불만이 제기되자 10장으로 줄이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15만명 규모의 입장권 모두를 얼리버드 단계에서 판매했지만, 올해는 얼리버드 외에 일반 예매와 당일 티켓도 일부 배정했다. 이날 현장에는 당일 티켓을 구매하기 위한 인파도 길게 늘어섰다. 도서전 기간 내내 관람할 수 있는 5일권 ‘두두리 패키지’ 역시 6만6000원이란 다소 비싼 가격에도 일찌감치 모두 팔렸다.

베르베르, 천쓰홍 등 해외 작가들의 강연과 정세랑·박상영 소설가, 김윤신 조각가의 북토크 등 프로그램도 지난 11~12일 사전 예약에서 거의 마감됐다.

실제로 이날 행사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부스에 들어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고, 일부 관람객들은 대기줄이 짧은 곳을 먼저 찾아 들어가기도 했다.

도서전 방문객은 2030세대가 주를 이뤘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젊은 층 사이에 독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텍스트힙’ 현상도 나타나면서 도서전 인기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도서전을 한 번 방문한 이후 지속적으로 찾는 관람객도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도서전에 왔다는 박모 씨(21)는 “평소 책에 관심이 있는데, 도서전은 한 번에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며 “수강신청처럼 시간 맞춰서 사전예매를 해서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체험 이벤트에 참여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보는 책 넘어 ‘체험’하는 책으로


이번 도서전에서는 단순히 책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다채로운 굿즈(상품)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창비와 안전가옥에선 독자들이 생각을 메모에 적어 벽에 붙이는 공간을 마련했고, 민음사는 가챠(Gacha, 캡슐토이) 이벤트를 선보인다. 아모레퍼시픽재단은 ‘마음수선소: 공감’ 부스를 통해 방문객이 각자 마음 책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예스24는 독서와 러닝을 결합한 참여형 독서 캠페인 ‘리딩런 베이스 캠프’를 운영해 관람객을 끌어당겼다. 도서전 입장 시작 후 한 시간 반 만에 약 300명이 체험을 신청할 정도로 뜨거운 호응을 보였다. 교보문고에선 김연수 작가의 사인회를 열었고, 더클래스(최재천의 아마존)는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와 함께하는 식사권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도서전에서 처음 공개되는 책과 한정판 표지로 장식된 도서는 독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책을 모티브로 한 엽서, 노트, 연필, 티셔츠, 에코백 등 굿즈들은 책 못지않은 인기를 끌었다.

민지형 라우더북스 대표 겸 작가는 “현장에서 책이나 굿즈를 사는 분들이 많다”며 “주로 젊은 세대”라고 말했다.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출판사 부스를 방문해 책을 살펴보고 있다. [이상섭 기자]


문체부 장관, 3년만 참석…출협과 실마리 풀릴까


지난 몇 년간 국고보조금을 둘러싼 출협과 문화체육관광부의 갈등으로 얼룩졌던 도서전은 올해 다소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됐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2023년 박보균 전 장관 이후 3년 만에 도서전 개막식에 참석한 것이다. 갈등이 고조됐던 2024년과 2025년엔 유인촌 전 장관이 불참해 출판계에서 불만을 제기한 바 있다.

문체부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과 함께 이번 도서전에 참가하는 국내 출판사 131곳에 프로그램 운영과 홍보 활동을 지원했다. 특히 작가 강연, 북토크, 사인회 등 독자 참여 프로그램 운영 지원을 확대해 출판사별 대표 저자가 참여하는 현장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최 장관은 “‘서울국제도서전’은 출판, 서점, 독서, 도서관계 등 다양한 출판 생태계 구성원과 독자들이 한자리에서 만나 소통하는 책 잔치인 만큼 작가 행사와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 앞으로도 도서전은 물론, 다양한 계기로 작가와 출판사, 독자가 만나며 책 문화를 활성화하고, 이를 통해 AI 시대에서 생각하고 질문하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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