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다툼이 어른들 법정싸움으로…대입 절박함에 일상이 된 ‘맞학폭’ [생존게임이 된 학폭]

‘학폭 가해자’ 생활기록부 낙인 찍히면
억울함 뒷전…기록 막아야하는 절박함
반성·회복보다 신고·방어에만 매달려


“아이가 평소 사이가 안 좋던 친구에게 학폭 신고를 당했습니다. 매번 약속을 어기고 30분씩 기다리게 한 뒤 조롱했고 화가 난 제 아이가 욕설 문자를 보낸 게 증거가 됐습니다. 상대 부모는 합의 의사가 없고 상대 아이는 ‘너 대학 못 간다’며 기세등등하게 말합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서울 강남권에서 아이를 키우다 소송에 휘말렸던 경험이 있는 학부모 A씨(45)의 말이다. A씨가 주변 학부모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자 다수의 학부모는 “맞학폭부터 거세요”, “증거부터 모으세요”, “상대가 신고했으면 우리도 신고해야 합니다”라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학교폭력 사안에서 피해 회복과 학생 선도를 논의하던 풍경이 사라진지 오래다. 대신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맞학폭’이 사실상 표준 대응 전략처럼 자리 잡았다. 맞학폭은 더이상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 학교폭력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4학년도 학폭위 전체 심의 건수(3만667건) 가운데 가해 측의 역신고로 얽힌 쌍방 심의 건수는 5464건에 달했다. 학교폭력 분쟁 5건 중 1건가량이 맞신고로 이어진 셈이다. 일단 맞신고가 접수되면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가리는 과정에서 벗어나 쌍방 책임을 따지는 공방으로 번진다.

학폭 사안으로 행정소송까지 경험했다는 송파구 학부모 B씨는 “처음에는 아이들 다툼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증거를 모으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법률 싸움이 됐다”며 “학폭위가 열리기도 전에 학교 밖에서 소송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학부모들이 이처럼 역신고와 법률 대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배경에는 입시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대학들이 학교폭력 조치사항을 대입 전형에 적극 반영하면서 학폭 기록 자체를 치명적인 입시 리스크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개입하는 순간 일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며 자식의 입시리스크 방어를 위해 양측 모두 변호사를 쓸 수밖에 없다.

실제 학부모 커뮤니티에는 “일단 신고가 접수되면 사실관계보다 생활기록부 기재 여부가 더 걱정된다”, “억울한 부분이 있더라도 기록부터 막아야 한다”, “상대가 변호사를 선임했다면 우리도 변호사를 써야 한다”, “한번 법률대리인이 개입하면 물러설 수 없다”는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는 학교폭력 문제가 학생 간 갈등 해결의 영역을 넘어 학부모와 법률대리인이 참여하는 분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피해학생 보호를 위해 강화된 제도가 역설적으로 신고와 역신고·증거 수집과 법률 대응이 반복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학폭 제도가 강력해질수록 억울한 학생을 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그 과정에서 신고와 역신고가 반복되고 모든 사안이 법률 분쟁으로 번지면서 정작 보호받아야 할 피해학생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용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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