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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개막전을 앞두고 열린 응원 행사에 방글라데시 팬들이 참여하고 있다. [EPA]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는 아르헨티나 국기로 뒤덮인다. 거리 곳곳에 하늘색과 흰색 깃발이 걸리고, 시민들은 리오넬 메시 유니폼을 입고 새벽까지 경기를 시청한다. 남미 국가 아르헨티나와 방글라데시의 거리는 약 2만㎞.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방글라데시인들은 아르헨티나를 마치 자국 대표팀처럼 응원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방글라데시가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독특한 현상을 조명했다.
방글라데시는 크리켓 강국이지만 축구에 대한 열기도 뜨겁다. 다만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하면서 팬들은 자연스럽게 응원할 다른 팀을 찾게 됐다. 그 결과 대다수는 아르헨티나를, 일부는 브라질을 응원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현지 스포츠 해설가 라지브 하산은 FT에 “방글라데시에는 아르헨티나보다 더 많은 아르헨티나 팬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인구는 약 4600만명이다. 반면 방글라데시 인구는 약 1억7000만명에 달한다. 현지에서는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월드컵을 시청하고 그중 절반 이상이 아르헨티나를 응원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단순 계산으로도 방글라데시 내 아르헨티나 팬 수가 7000만명을 넘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열광은 단순한 축구 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방글라데시와 아르헨티나는 모두 정치적 격변과 사회적 갈등을 겪어온 국가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FT는 축구가 양국 모두에서 정치와 현실의 갈등을 넘어 국민을 하나로 묶는 상징적 역할을 해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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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월드컵 당시 아르헨티나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의 모습. [게티이미지] |
특히 방글라데시 팬덤의 출발점으로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이 자주 언급된다.
당시 디에고 마라도나는 잉글랜드를 상대로 이른바 ‘신의 손’ 골을 넣으며 세계적 화제를 모았다. 포클랜드 전쟁 패배 직후였던 아르헨티나에서 마라도나는 영웅이 됐고, 방글라데시에서도 강대국에 맞서는 약자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방글라데시 학생 아예샤 후마이라 와레사는 현지 언론 기고문에서 “마라도나는 단순한 선수가 아니라 식민지배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저항의 상징이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방글라데시는 1971년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독립운동 당시에는 ‘자유 벵골 축구팀’이 인도를 돌며 독립운동 기금을 모으고 국제사회에 독립 필요성을 알리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축구가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정치적 상징성을 갖게 된 배경이다.
최근에는 메시가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22세 대학생 하산 카비르는 FT에 “어릴 때는 마라도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이후에는 메시의 경기를 보며 매료됐다”며 “2022년 아르헨티나 우승 때는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방글라데시 곳곳에는 마라도나와 메시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젊은 세대는 현재를 ‘메시 시대’라고 부르며 그를 성공과 도전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FT는 “방글라데시에서 아르헨티나는 단순히 응원하는 외국 팀이 아니라 자신의 역사와 정체성을 투영하는 대상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월드컵 기간 다카 거리에서는 아르헨티나 국기가 방글라데시 국기만큼 흔하게 보인다는 말까지 나온다. 축구가 만들어낸 가장 독특한 국제적 팬덤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