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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식 동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
“담보가 있습니까?” 콘텐츠 기업이 금융권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전 세계를 뒤흔든 오징어 게임도 기획 단계에서 10년 가까이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글로벌 흥행작을 잇달아 만든 K-드라마 제작사들조차 다음 작품의 제작비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기존 금융 체계는 제조업 중심의 담보 평가 구조에 기반해 있어 무형자산인 지식재산권(IP)의 미래 가치 반영이 어렵다. 콘텐츠 제작비는 글로벌 경쟁 속에서 이미 수백억원대로 상승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완성보증이나 IP 담보금융은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제도권 금융 문턱을 넘지 못한 중소 제작사들은 고금리 자금에 의존하고, 일부는 제작비 확보 과정에서 핵심 IP와 판권을 글로벌 플랫폼에 넘기는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콘텐츠 금융을 산업 인프라로 재정의하는 관점의 전환이다. 미국은 콘텐츠 IP를 투자자산으로 금융시장에 편입했고, 일본은 회수시장을 활성화해 민간 자본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했으며, 싱가포르는 정책금융과 글로벌 플랫폼 연계를 통해 콘텐츠 산업을 국가 전략수출산업으로 육성하고 있다. 공통적으로 콘텐츠를 금융시장과 연결된 산업으로 본다.
물론 우리 정부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완성보증제도를 도입하고 모태펀드를 통해 세컨더리 투자구조를 시도해 왔다. 하지만 아직 초기 테스트베드 단계에 머물러 있고 정부 보증과 재정 지원에 크게 의존하는 구조다. 시장 스스로 작동하는 민간 중심의 자본 유입 체계는 아직 미완성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지원의 규모가 아니라 자본이 흐르는 시장의 설계다. 그러기 위해선 첫째, 금융권의 콘텐츠 가치평가는 흥행 예측이 아니라 사전 판매 계약과 제작역량, 프로젝트 구조를 반영하는 리스크 평가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완성보증도 민간 금융기관 참여를 전제로 신용 보강 장치로 기능해야 한다.
둘째, 대규모 민간 자본이 유입될 수 있는 구조화 금융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모태펀드는 초기 위험을 분담하는 마중물 역할에 집중하고 IP를 금융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자산으로 제도화해 자본시장과 직접 연결해야 한다.
셋째, 투자만큼 중요한 것은 회수 시장이다. 지분과 IP를 거래할 세컨더리 마켓을 활성화하고, 토큰증권(STO) 등 새로운 권리 거래 제도의 법적 기반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자본이 장기간 묶이지 않고 순환된다.
K-콘텐츠의 다음 단계는 더 많은 콘텐츠가 아니라 금융 생태계의 완성이다. 정책금융은 초기 위험을 분담하고, 가치평가 체계는 투자 불확실성을 낮추며, 회수 시장은 자본의 선순환을 완성해야 한다. 이 세 가지 축이 작동할 때 비로소 콘텐츠는 일회성 성과를 넘어 금융자산으로 전환된다. 한국에서 창작된 콘텐츠의 가치가 해외 플랫폼이 아니라 국내 산업과 자본시장 안에서 순환하는 구조, 그것이 K-콘텐츠 산업의 새로운 경쟁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