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쪽 넘는 분량에 전문용어 빼곡…답 있어도 못찾아
작년 보험 민원 57% 보험금 지급 관련…분쟁 불씨
당국, 약관·상품설명 개선 TF “용어 순화·시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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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 소비자들이 약관에 이미 담긴 기초적인 정보까지 인공지능(AI) 상담을 통해 묻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십 쪽에 달하는 보험 약관이지만, 내용도 의학·법률 전문용어가 빼곡해 일반 소비자가 필요한 정보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제미나이를 이용해 제작함] |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보험 상담을 찾는 소비자 3명 중 1명은 자신이 가입한 보험의 보장 범위를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약관이나 상품설명서에 답이 나와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60쪽이 넘는 보험 약관이 소비자에게 사실상 ‘읽을 수 없는 문서’가 되면서, 기초적인 질문까지 상담 창구로 몰리고 있다.
4일 인슈어테크 플랫폼 시그널플래너를 운영하는 해빗팩토리에 따르면 회사의 AI 어시스턴트에 올해 2분기 접수된 보험 관련 질문 5000건(무작위 추출)을 분석한 결과, ‘가입한 보험의 보장 범위와 청구 가능 여부’ 질문이 36.59%로 가장 많았다. 자동차보험 관련 질문이 25.07%로 뒤를 이었고, 보험 용어와 기초 지식에 관한 물음도 12.63%에 달했다. 세 유형을 합치면 전체의 75%에 육박한다. 이어 ▷신규 가입 상담(9.86%) ▷상품 간 보장 비교(6.11%) ▷보험금 청구 절차(4.79%) 등이 뒤를 이었다.
질문 내용은 단순하다. “실손보험으로 도수치료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 “타인이 운전을 해도 보장받을 수 있나”, “90세 만기와 100세 만기 중 뭐가 더 좋은가”와 같은 질문이었다. 실손보험의 급여·비급여 차이나 질병·상해 구분처럼 보험의 기본 개념에 대한 문의도 꾸준히 올라온다.
문제는 답이 없어서가 아니라, 있는 답을 소비자가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장 범위와 지급 조건은 약관에 이미 담겨 있다. 그러나 약관은 분량이 60쪽도 넘는 데다 의학·법률 전문용어로 채워진 텍스트 위주여서, 일반 소비자가 원하는 정보 한 줄을 골라내기가 쉽지 않다. 중복되고 불필요한 내용까지 뒤섞여 편제가 산만하다는 점은 업계와 정부 모두 인정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청구 방법 같은 실무 정보는 약관이 아닌 상품설명서·청약서 등 다른 서류에 흩어져 있다. 무엇을 어디서 확인해야 하는지부터 막히는 구조다.
약관을 읽지 못하는 대가는 소비자에게 돌아온다.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을 몰라서 놓치거나, 보장되는 줄 알았다가 거절당해 분쟁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실제 지난해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보험 민원 5만3450건 가운데 보험금 지급 관련 민원이 57.4%(3만674건)로 절반을 넘었다.
약관이 어려워진 데에는 구조적인 배경이 있다. 2015년 보험상품 자율화 이후 현재 상품의 99%가 보험사 자율로 설계돼 판매된다. 상품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약관도 함께 어려워졌고, 이는 분쟁을 지속해서 유발하는 요인이 됐다. 금융당국은 2017년 상품 특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아이콘을 도입하고, 2020년 시각화 약관요약서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개편 작업이 보험 전문가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어려운 용어와 과도한 정보량이라는 근본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이에 금감원은 지난 4월 보험약관·상품설명서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실무 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TF에는 소비자·시민단체와 의료·법조·연구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 금감원·보험개발원·보험협회 실무진이 참여하며, 오는 21일까지 실무 회의를 이어간다.
개선 방향은 소비자가 겪는 불편에 초점을 맞췄다. 우선 상품설명서 항목을 ‘상품 안내’와 ‘제도 안내’로 나눠 소비자가 상품 내용 자체에 집중하도록 재구성한다. 소비자가 무엇을 어디서 봐야 하는지부터 막히는 ‘흩어진 안내’ 문제를 겨냥해, 여러 서류에 중복된 안내 자료를 통합하는 방안도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 복잡한 내용은 인포그래픽과 AI챗봇으로 시각화하고, 분쟁이 잦은 약관 용어를 쉬운 말로 바꾸는 작업도 추진 과제다.
회의는 사안에 따라 매주 또는 격주로 열리고 있다. 다만 속도보다 완성도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개선안을 잡은 것은 아니며, 현재 논의를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실효성이다. 앞선 두 차례 개편에도 소비자 체감이 낮았던 만큼, 이번에는 항목 재배치 수준을 넘어 소비자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약관 개편이 결국 항목 순서를 바꾸는 수준에 그친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달라지는 건 없다”며 “소비자가 궁금한 것을 스스로 찾아 답을 얻을 수 있는 구조까지 가야 이번 개편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