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6일 오후 의료정책 심의 기구를 열고 2025학년도에 적용할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규모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열린 의대 정원 증원 관련 긴급 기자회견에서 이필수 의협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정부가 6일 오는 2025학년도 입시에서 의과대학 정원을 2000명 확대한다고 발표하면서 의사단체가 총파업 등 집단행동에 돌입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의사단체가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불법 행위를 할 경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는 대한의사협회 집행부를 대상으로 집단행동 금지 명령을 내리고, 보건의료 위기 단계를 '경계'로 상향했다.
의협은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의료계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강행할 경우 총파업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이필수 의협 회장 등 집행부는 총사퇴하고, 임시 대의원 총회 소집 등을 통해 집단행동의 계획을 세우고 향후 절차를 밟기로 했다. 우선 7일 이사회를 열어 향후 계획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회장은 이날 의협 회원들에 "작금의 모든 사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그동안 제게 맡겨주신 의협 회장으로서의 모든 권한과 역할을 이제는 내려 놓고자 한다"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구체적인 집단행동 시기는 설 연휴 이후에야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당장 연휴 기간에 파업에 돌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설이 끝나면 바로 비대위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협은 이날 오전 보건복지부와 마주 앉은 의료현안협의체에서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려 한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곧바로 퇴장했다.
의협 측 양동호 협상단장은 기자들과 만나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를 앞두고 갑자기 의료현안협의체를 열려고 한 건 우리를 그냥 들러리로 생각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들러리를 설 순 없다"고 말했다.
의협의 집단행동은 2020년과 마찬가지로 집단 휴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의협은 '총파업'이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의료법에 저촉되는 '진료 거부'여서 정부는 의료법 59조에 따라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다.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의료인은 1년 이하의 자격정지,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2020년 의료계가 단체행동을 벌였을 때 정부는 수도권 전공의 일부에 업무개시 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현재는 의협이 의사들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전면에 나선 상태지만, 2020년 사례를 보면 의협보다는 대학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전공의의 움직임이 단체행동의 파급력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
의협은 동네의원 등 개원의 중심 단체로, 2020년 당시 집단휴진 참여율이 한 자릿수에 그쳤다.
반면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주도한 전공의의 참여율은 80%에 육박하면서 의료 현장에 혼란을 빚었다. 여기에 의대생마저 국가고시를 거부하자 결국 정부는 증원 추진을 중단했었다.
대전협은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전날 대전협은 수련병원 140여곳, 전공의 1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88.2%가 의대 증원 시 단체행동에 참여할 의사를 보였다고 밝혔다. 전체 전공의는 1만5000여명 정도다.
대전협은 오는 12일 온라인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어 의대 증원 등 의료현안 대응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양동호 대한의사협회 협상단장이 6일 오전 서울 모처에서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대책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의료현안협의체에 참석, 의사협회의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의료개혁'으로 명명하며 강한 추진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의료계에서 불법 행위를 벌인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복지부는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들이 파업할 경우 의료 현장에 미치는 혼란이 클 것으로 보고, 파업 돌입 시 즉시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이를 따르지 않을 때는 징계하겠다는 강경 대응 방침을 정했다
실무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전공의 개개인에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까지 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이날 보정심 후 의대 증원 규모를 발표한 브리핑에서도 의료계의 불법 단체행동에 단호히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료인들이 환자 곁을 지켜주시길 바란다"면서도 "만에 하나 불법적인 행동이 있다면 저희는 법에 부여된 의무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 당시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가 의료계의 총파업으로 정부가 물러났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고도 했다.
조 장관은 "(2020년) 그때는 코로나19 감염이 심각해 국민의 건강과 생명 확보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해 타협한 것으로 안다"며 "지금은 의료계가 협조해주실 것으로 우선 믿고 있고, 만약에 불법적 행동이 있다면 관련법에 따라 단호히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의협이 총파업을 언급한 데 대해 "국민 생명과 건강에 위해를 줄 우려가 상당하다"고 판단하고 보건의료 위기 단계를 '경계'로 상향했다. 복지부 내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설치해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응하는 한편 국민들의 의료 이용에 불편이 없도록 '비상진료대책상황실'도 운영한다.
이와 함께 복지부는 의협 집행부에 의료법 제59조에 근거해 '집단행동 및 집단행동 교사 금지'를 명했다.
명령 위반 시 의료법에 따른 면허정지 처분을 받거나,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업무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의료인은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 선고 시 최대 10년까지 면허 취소 처분을 받을 수 있다. 집단으로 진료를 거부해 업무개시 명령을 받았다가 불응했을 때도 징역이 나올 수 있으므로 의사 면허 취소가 가능하다.
조 장관은 "국민 생명과 건강에 위해를 주는 집단행동과 집단행동을 부추기는 일체의 행동을 즉시 중지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하겠다"라고 밝혔다.
정부가 강경 대응 방침을 세운 가운데, 의대 증원에 대한 지지 여론도 의료계로서는 파업을 강행하는 데 부담으로 작용한다.
보건의료노조가 작년 12월 발표한 국민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 89.3%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85.6%는 '의협이 진료 거부 또는 집단 휴업에 나서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