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MBC 금토드라마 ‘원더풀 월드’가 지난 13일 14화로 막을 내렸다.
‘원더풀 월드’는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직접 처단한 은수현(김남주)이 그날에 얽힌 미스터리한 비밀을 파헤쳐 가는 휴먼 미스터리 드라마로, 김지은 작가가 종영을 맞아 서면 인터뷰에 응했다.
▶작가님은 이 드라마를 통해 선과 악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는지. 김준에게 악을 몰아주고, 수호와 유리가 이 구조에서 못된 짓을 하는데요. 악이 미치는 영향은 어떤 걸까요? 김준은 우리 사회에 실제로 존재할 것 같은지요?
원더풀 월드에서는 무조건 착한 인물도 무조건 나쁜 인물도 없어요. 대부분이 선과 악이 공존하는 입체적인 인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안에서도 선과 악이 공존하고 끊임없이 싸우는 인물들이죠.
물론 극적 설정을 위해 절대악이 필요하긴 했지만 김준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그런 면에서 절대악을 잘 표현해 주시며 마지막 순간까지 빛내주신 박혁권 배우님에게 미안한 마음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율이 수현에게 복수하다 연대하게 되는 시점에 대한 질문인데요. 선율 아빠가 죽기 전 엄마와 통화하는 걸 녹음으로 듣고, 이 여자는 복수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을까요? 아버지를 죽인 사람과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 무엇일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수현이 곧 선율이었고 선율이 곧 수현이었습니다. 복수해야 할 상대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고 연민을 봤고 궁극적으로 타인을 통해 자신 스스로와 화해하고 용서했기에 그게 두 사람의 연대가 가능했던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회차전개방식에 대한 질문입니다. 항상 마지막에 새로운 상황을 노출시키는데요. 수호와 어떤 여성과의 불륜 사진이 나오고, 다음 회에는 수현이 남편을 추적하다 호텔에서 옆집 여자와 만나는 게 나오고, 또 그 다음에는 수호의 불륜 상대가 옆집 여자가 아닌 처제나 다름없는 유리라는 점이 밝혀지고…또 차은우가 김준 밑에서 일하면서 사건들이 하나하나 베일을 벗는 구조, 이런 식의 회차 전개 방식이 가진 특징과 장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드라마는 거시적인 계획과 미시적인 구성으로 한 회 한 회를 이루어 마지막 회로 달려가는 빌드업의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회마다 시청자분들의 몰입과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요소가 엔딩이라 생각해서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긴 합니다. 일주일을 참고 기다려 주셨던 시청자분들께 답답함을 드려 송구하고, 엔딩 맛집이라는 칭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작가님이 바라는 바람직한 사회상은?
은수현의 입을 통해 말씀드렸듯이 ‘부디 상실의 슬픔을 가진 모든 사람들이 편안해지기를, 세상이 그들에게 조금은 더 다정하기를, 아픔을 이겨내고 있는 당신에게도 아름다운 세상이 오기를, 그래서 언젠가는 아픔이 덜한 시간에 가 있기를’ 이것이 이 드라마 제목이 원더풀 월드인 이유이자 이 드라마를 통해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과거에 고통받은 분들이 조금은 아픔이 덜한 시간에 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으로, 이 세상이 상처 입은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요.
▶’원더풀 월드’를 구상하신 계기는 무엇이며, 집필하실 때 주안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우리 인생길의 한 가운데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을 헤매고 있었다’
당시, 손에 쥐고 있던 단테의 신곡 첫 구절이 계속 마음에 쓰였습니다. 나는 계속 걸어가는데, 지금 어디에 있는지. 날은 계속 어두워지는데, 여기서 멈출 수도 없는데. 마치 꼭 제 자신을 보는 거 같아서.
그러다 또 다른 인생길에서 숲속을 헤매고 있을 누군가와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사람 얘기를 들어주고 싶었고, 저 역시 위로 받고 싶었습니다. 그 사람이 ‘은수현’이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은수현이라는 인물을 처음 그려내기 시작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작가는 작품을 쓸 때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드라마는 예술 문학이 아니라 대중문화이니까요. 그런데 처음으로 시청률이라는 숫자보다 오롯이 사람의 마음에 더 집중해보자 생각하고 썼던 작품이 ‘원더풀 월드’입니다.
현실이 답답하고 어쩔 수 없이 작가는 작품을 쓸 때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드라마는 예술 문학이 아니라 대중문화이니까요. 그런데 처음으로 시청률이라는 숫자보다 오롯이 사람의 마음에 더 집중해보자 생각하고 썼던 작품이 ‘원더풀 월드’입니다.
현실이 답답하고 어둡고 희망이 없어 보일 때 사람들은 현실을 닮거나 현실보다 힘든 드라마를 회피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원더풀 월드’가 그런 드라마죠. 담장이 없는 밝은 드라마와는 달리 우리 드라마는 ‘담장’이 있었던 것 같아요.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11%가 넘는 두 자리 시청률이 나온 게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어쩌면, 어둡고 힘들어도 결국 연대하고 상처받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같이 들여다 봐주신 게 아닐까요. 담장이 있는 드라마에 발끝을 들고 안을 들여다 봐주신 분들의 용기와 애정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이 쉽지 않은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같이 끄집어 내보자고 손 잡아주신 배우들과 요즘 트렌드가 아님에도 편성을 결정해주신 방송사. 그리고 제작사 식구들과 감독님. 스탭분들에게 감사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배우들만큼 그 감정선을 따라 보시느라 감정 소모가 크셨을 시청자님들께 이 자리를 통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이 말은 정말 꼭 꼭 하고 싶었습니다)
▶김남주, 차은우, 김강우, 임세미, 원미경 등 배우들 각각의 연기는 어떻게 보셨는지?
김남주=쫑파티 때 누군가 ‘작가님’하고 불러서 뒤돌아보는데 김남주 배우였습니다. 그리고는 둘이 아무 말도 못하고 한참을 부둥켜안고 그냥 울었습니다. 어디선가 은수현이 우리랑 같이 잘 살아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을까요. 언젠가 김남주 배우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드라마에서 한 번도 모성을 보여준 적이 없다고. 그래서 김남주가 연기하는 모성을 꼭 제대로 보여드리고 싶다고. 이번 작품에서 은수현이라는 인물은 김남주 배우라는 옷을 입고 제가 만들어낸 캐릭터보다 훨씬 더 입체적인 인물로 살아났습니다. 대한민국 원톱 여배우로서 지문 한 줄 한 줄도 허투루 보지 않고 손짓 하나, 걸음 하나 옮기는 것조차 작품의 전체적 구도와 심리를 생각해서 너무나도 디테일하게 신중하게 표현해내는 김남주라는 배우 덕분에 ‘원더풀 월드’ 속,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김남주 표 모성을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차은우=이 작품을 하면서 저를 가장 놀라게 한 배우가 차은우 배우였습니다. ‘이렇게까지?’ 할 정도로 권선율이라는 캐릭터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진심으로 선율이를 사랑해주며 성장시켰고, 얼마나 처절하게 고민했는지 옆에서 지켜보면서 감탄했습니다.
덕분에 차은우 배우는 전혀 밑바닥 인생을 그려낼 수 없을 거 같은 외모로 거친 권선율이라는 캐릭터를 너무나도 섬세하게 때로는 신비롭게 때로는 비련하고 처연하게 그려냈습니다. 죽어가는 것들 속에만 있었던 권선율이라는 캐릭터는 차은우라는 배우를 만나서 더 깊어졌고 아름다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자체가 차은우 배우가 가진 무궁무진한 잠재력이자 노력덕분입니다.
김강우 & 임세미=신기하게도 이 두 배우는 제가 예전에 한 번씩 다른 드라마에서 러브콜을 보낸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스케줄 때문에 아쉽게도 같이 하진 못했지만, 두 배우를 어떻게 이번에 한꺼번에 만나게 됐는지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만큼 믿고 같이 가보고 싶었던 배우들이라 내심 너무 기대했는데, 정말로 그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김강우 배우가 맡은 강수호라는 인물은 어쩌면 가장 표현하기 어려운 인물이었을 겁니다. 최종회를 봐야 이 인물의 진심이 나오는 터라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진 후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꾹꾹 눌러가며 감정을 연기하는 걸 보면서 김강우니까 해냈구나 감탄했습니다.
우리 주인공들이 무조건 나쁜 사람도 없고 무조건 좋은 사람도 없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임세미 배우가 연기하는 한유리도 참 나쁘지만 또 애처로운 인물이에요. 다른 배우가 했으면 굉장히 미워 보였을 캐릭터를 임세미 배우는 입체적으로 표현했어요. 미움을 받아가면서도 은수현 곁을 단 한번도 떠난 적이 없는.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그래서 결국엔 수현으로 하여금 다시 손을 내밀도록 한 건 한유리를 연기한 임세미 배우의 힘입니다.
원미경=이번에 참 신기한 경험을 한 게, 제가 쓴 대사가 원미경 배우님의 입을 통해서 나오면 그 울림이 커지고 뜨거워지는 거예요. 도대체 어떠한 힘을 가지고 계시길래 얼마나 큰 내공이 있으시길래 그러는 건지 저로서는 그저 경이로웠습니다. 대사 한 줄 한 줄에 달라지는 표정을 보며 저도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공부 중입니다. 작가를 끊임없이 공부하게 만드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