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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체’에서 주인공 ‘권세정’을 연기한 배우 전지현 [쇼박스 제공]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11년의 세월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등장과 함께 스크린은 그의 무대가 됐다. 감염자들이 들끓는 지옥 속에서도 ‘불의’와 ‘포기’라는 단어 앞에 절대 굽히지 않는 생물학과 교수 ‘권세정’. 진화형 감염자라는 설정을 통해 새로운 좀비물을 완성한 연상호 감독의 접근은 시작부터 끝까지 극의 중심을 단단히 지킨 전지현의 연기가 있어 빛났다.
전지현이 주인공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영화 ‘군체’를 향한 기대는 남달랐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버린 줄 몰랐어요.” 영화 ‘암살’(2015)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 복귀다. ‘도둑들’(2012), ‘암살’ 등 두 편의 천만 영화를 일군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톱배우의 귀환에 설레지 않을 방법이 없다.
“‘군체’를 하면서 자주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영화를 하지 않았던 시간이 아깝기도 하더라고요.”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전지현을 만났다. 지난 21일 ‘군체’ 개봉과 동시에 누구보다 바쁘게 홍보 활동에 나서고 있는 그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차림으로 등장한 전지현은 그의 모습처럼 솔직하고 소탈하며, 꾸밈없는 답변들로 인터뷰를 채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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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체’ 보도스틸 [쇼박스 제공] |
전지현이 복귀작으로 ‘군체’를 택한 데에는 연상호 감독의 존재가 컸다. 그는 평소 연상호 감독이 여성 캐릭터의 서사를 무게감 있게 다루는 점을 눈여겨봐 왔다. “배우로서 욕심이 나더라고요.” ‘군체’ 시나리오를 받은 순간 그는 곧바로 출연을 결심했다.
“여배우로서 ‘연상호 감독이 다루는 여성 캐릭터를 저 역시 잘 소화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감독님과 작업한다는 것 자체가 배우로서 가진 어떤 지향점 중 하나였죠.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빨리 감독님부터 뵙고 싶었어요.”
촬영 현장은 밝고 즐거웠다. 오랫동안 연 감독의 작품을 봐온 전지현은 “정말 의외였다”고 했다.
“연 감독님은 불편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데 능숙한 분이라 촬영 현장도 편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편안하고 재밌더라고요. ‘아, 이래서 배우들이 연 감독님과 계속 작업하고 싶어 하는구나’ 싶었죠.”
‘군체’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칸 현지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다. 전지현도 감독, 배우진과 함께 칸의 레드카펫을 밟았다. 그간 글로벌 브랜드 앰배서더 자격으로 레드카펫에 오른 적은 있지만 공식 초청작과 함께 칸을 찾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지금까지 갔던 칸은 칸이 아니었다”며 현장에서 느꼈던 감동을 되새겼다.
“보통 레드카펫에 오르면 뒤에서 빨리 이동하라고 재촉하거든요. 그런데 칸에는 정말 우리만을 위한 레드카펫이 펼쳐져 있는 거예요. 너무 큰 감동을 받았고, 감독님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커졌어요. 연 감독님 작품은 무조건 하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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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군체’ 보도스틸 [쇼박스 제공] |
‘군체’에서 권세정은 감염자들의 행동 특성을 읽고,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찾아 생존자 집단을 이끈다. 생물학과 교수로서 가진 전문성, 그리고 물러섬을 모르는 추진력과 책임감은 극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핵심 동력이다. “서사의 중심을 잘 잡았다는 반응이 가장 듣기 좋더라고요.” 그럼에도 시원시원한 전지현표 ‘액션’을 많이 볼 수 없다는 점은 다소 아쉽다.
“권세정은 교수니까요. 너무 액션을 잘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죠. 그래서 감독님과 상의 끝에 액션을 조금 덜어냈어요. 대신 관객들이 함께 고민하고, 그들을 이해시켜야 하는 중심 캐릭터의 역할에 충실했던 것 같아요.”
액션이라는 주제가 대화 위에 오르자 대한민국 대표 ‘액션 퀸’의 답변도 한결 거침없고 유쾌해졌다. ‘한국의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연 감독의 극찬을 전하자 전지현은 망설임 없이 “너무 자신 있다. 더 자신 있다”고 답했다. 액션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던 오랜 경력이 만들어낸 단단함, 그리고 K-콘텐츠에 대한 자부심이 모두 녹아 있는 자신감이다.
“예전에는 할리우드 영화의 벽이 굉장히 높았는데 이제는 K-콘텐츠도 세계 시장에서 전혀 아쉬울 게 없잖아요. 배우들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저도 열심히 운동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 자신 있어요. 몸은 쓰면 쓸수록 발전하고, 그만큼 연기에 도움이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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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전지현 [쇼박스 제공] |
스크린을 떠나 있었던 시간은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 전지현은 “팬데믹 이후 제작 편수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시나리오를 검토할 기회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그에게 영화는 책임의 영역에 가깝다. 관객들의 돈과 시간에 보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관객들이 보고 싶은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관객분들이 써주는 시간과 돈에 책임을 져야죠. 보고 싶은 영화를 하려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린 것 같아요. ‘군체’는 그런 생각과 느낌이 맞아떨어진 작품이었죠.”
‘현실’의 전지현은 스크린 속 모습보다 더 영화 같다. “처음 보는 순간 영화가 시작되는 것 같았다”는 연 감독의 극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매번 깊어지는 연기와 함께 여전히 ‘엽기적인 그녀’(2001)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한 그의 외모도 감탄을 자아낸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데는 왕도는 없다. 전지현에게 그것은 ‘꾸준함’이다.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요. 꾸준함 속에 발전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걸 제 삶에도 똑같이 적용하는 거죠. 다 잘하려고 하다 보면 대충 산 사람보다는 나은, ‘열심히 산 사람’이 되는 거니까요. 그런 마음가짐이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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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전지현 [포토그래퍼 김신애] |
그는 ‘지금의 전지현이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들을 차근차근 연기해 나가며 배우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의 말을 빌리면 지난해 공개된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북극성’ 속 유엔대사 서문주도, 영화 ‘군체’의 권세정도 모두 오늘의 전지현이기에 연기할 수 있었던 인물들이다.
“더 어렸다면 서문주나 권세정 같은 작품 중심의 캐릭터들을 연기해 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런 캐릭터들을 해나가면서 그 안에서 제가 성장해 왔다고 생각해요. 이번 ‘세정’을 통해서는 의로움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요. 어차피 평생 배우 하면서 살 거니까 제가 담아낼 수 있는 감정들, 이해할 수 있는 것들과 계속 만나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