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없이 겉돌던 아이가 달라졌다…‘폭탄 돌리기’ 체험학습 지키는 교사들 [세상&]

현장체험 기피… “그래도 간다”는 교사들
“교우관계 형성, 체험 소중한 가치 많아”
책임 줄이겠단 교육부, 효과 있을지 주목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버스에 올라타는 아이들의 모습. [챗GPT로 제작]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선생님 저도 조장 한번 해보고 싶어요.”

경기도의 한 수련시설. 교사들의 걱정거리였던 5학년 찬영이가 꺼낸 예상 밖의 말이었다. 평소 말수가 적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던 학생이었다. 담임교사 A씨는 망설이다가 조장을 맡겼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찬영이는 친구들을 챙기고 이동 동선을 확인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체험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교실에서 찬영은 친구들과의 대화가 늘었고 수업 참여도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A교사는 “교실 안에서는 볼 수 없던 모습을 현장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경험 때문에 힘들어도 체험학습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현행 제도 아래에서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것은 ‘폭탄 돌리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행정책임부터 민원·안전사고 발생 시 형사 책임까지 져야 하는 구조 속에서 교사들의 부담이 극도로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2022년 강원 속초의 한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 과정에서 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진 사고와 관련해 인솔 교사에게 유죄가 선고된 것이 교사들의 부담을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초중고 수련회 및 수학여행 실시율은 2023년 63.2%에서 2024년 65.7%로 증가했다가 2025년 62.2%로 감소했다. 초등학교의 경우 지난해 실시율은 48.1%에 그친다. 교원단체 설문조사에서 응답 교사의 96%가 현재 체계로는 안전 확보가 어렵다고 답했고, 80% 이상은 현장체험학습 전면 중단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5일 대전 중구 대전 오월드 입구가 체험학습 나온 학생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


폭탄 돌리기? “그럼에도 아이들에겐 필요”


그럼에도 여전히 학생들과 함께 버스에 오르는 교사들이 있다. 매년 학년 단위 체험학습을 담당하는 A교사는 “사고가 나면 어떡하나 하는 부담이 없는 교사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맡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체험학습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한 추억 만들기 때문이 아니다. 중학교 교사 B씨는 체험학습이 학생 관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언급했다. B씨는 “평소 교실에서는 서먹하던 학생들이 숙소 생활을 하며 가까워지는 경우가 많다”며 “갈등 관계에 있던 학생들이 함께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회복하는 모습도 자주 본다”고 했다.

실제 교사들은 체험학습이 학생들의 사회성 발달과 공동체 의식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학생들의 강점도 현장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 교사 C씨는 학업에 흥미를 잃었던 학생의 사례를 전하며 “수업 시간에 발견하지 못하는 모습을 체험학습 현장에서 발견할 때가 많다”며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는 생각에 행정업무와 안전사고 위험을 무릅쓰고도 체험학습을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교육격차 해소 측면에서도 체험학습은 의미가 있다. 가정 형편에 따라 여행이나 문화 체험 기회가 크게 달라지는 현실에서 학교 체험학습은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경험을 제공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A교사는 “처음 KTX를 타보는 학생, 처음 박물관을 방문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며 “경제적 이유로 경험의 폭이 제한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공교육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5월 28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현장체험학습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


교사 헌신 만으론 ‘지속 가능성’ 부족


다만 교사들은 현재처럼 개인의 헌신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모든 책임이 인솔 교사 개인에게 집중되는 구조에서는 누구도 적극적으로 체험학습을 운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체험학습을 준비하려면 챙길 게 한둘이 아니다. 학부모 동의서 취합부터 장소 선정, 사전 답사, 안전계획 수립, 참가 학생 건강 상태 파악, 차량 점검, 보험 가입, 결과 보고까지 수십 가지 업무가 뒤따른다.

교사들은 체험학습 운영 전문인력 확충과 법적 보호장치 마련·안전관리 지원 체계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C교사는 “교사가 교육활동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가 안전판 역할을 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배움을 위해 필요한 활동이 위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전국 모든 교육지원청에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고의·중과실’이 아닌 경우 책임을 면제해 주는 방안을 담은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아울러 학교 현장체험학습 운영 지원과 교사의 업무 부담 경감을 위해 교육지원청 중심 지원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전국 모든 교육지원청에 현장체험학습 전담 인력을 배치해 기존에 교사가 해오던 계약, 보조인력 배치, 안전점검 등의 업무를 지원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올 하반기에 법 개정 절차를 마치면 내년부터는 현장체험학습 활동이 활성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법적 체계가 준비되고 교육청 지원 체계가 안착하는 것은 물론 선생님들의 불안 심리가 해소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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