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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본 라이프스타일 임철호 사장은 헐리트론 실패 이후 1년의 자성기를 거친 뒤 재기에 성공하고 있다. “확장지향의 부작용을 경험한 만큼 인재와 리더 육성으로 포커스를 바꿨다”라고 말한다. 사진 / 김윤수기자
ⓒ2006 Koreaherald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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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비즈니스 환경에서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바둑판 용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실패와 패망은 더 이상 기업의 덩치만으로 막아낼 수 없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대형업체의 도산은 규모의 크기만큼 그 파편도 많아 파장 또한 크게 마련이다.
지난 2001년 말 LA 한인사회 최대규모의 전자제품 양판업체 ‘헐리트론’이 챕터 11 신청과 함께 허물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오너 임철호 회장의 재기불능을 단언했다. 한두해 운영했다면 몰라도 무려 20여년 동안 8개에 이르는 대형 매장들을 통해 연간 5천만달러씩 판매고를 올리던 업체의 파산이었으니 회복은 커녕 후유증을 수습하는 데에만 성장해온 만큼의 세월이 필요하리라 봤던 것이다.
1년쯤 지나 ‘헐리트론의 임철호 회장’은 ‘리본(Reborne)의 임철호 사장’으로 다시 시장에 나섰다. ‘리본’이라는 새로운 상호가 임씨의 재기선언 의지를 담고 있음은 누구나 묻지 않아도 알 만했다. 리본으로 다시 태어난 지 4년여-.
“매출이 첫해보다 두배 많아졌지요. 올해부터 수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신도들을 중심으로 초기 투자액 130만달러로 리본을 출범시켜 첫해보다 두배 늘어난 매출액을 기록하면서 바야흐로 수익까지 내기 시작했으니 임철호씨의 재기 불능을 예견했던 사람들은 새롭게 그를 주목해야할 일이다.
■ 무리한 확장의 결과
성공한 사업가의 경영철학은 말하는 이나, 듣는 쪽이나 힘들 일이 별로 없다. 어지간한 실패도 아니고 강산이 두번 바뀌는 세월 동안 수성해온 사업체의 파산이었다. 그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겪은 사업가의 재생과 재기의 과정을 살피는 일, 게다가 그것이 또 다른 성공으로 관측되는 상황이라면 묻는 쪽이나 대답하는 이나 적지 않게 부담스럽다. 빙빙 돌려가면서 상대의 아픈 과거를 건드리지 않아야하는 질문자도 그렇지만 지난 날 보다 현재와 미래가 한결 중요해진 답변자의 심리는 여간한 초월적 관조의 상태가 아니면 안될 것이라 짐작했다. 뜻밖에도 임철호 사장은 그냥 있는 그대로였다. 감출 것도 숨길 것도, 꾸밀 것도 없다는 편안함이 고스란히 전달돼왔다.
“괜찮아요. 헐리트론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은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어요. 나로부터 헐리트론 얘기를 빼면 리본을 설명할 수 없잖습니까.”
뻔한 궁금증이었지만 헐리트론의 실패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를 직접 듣고 싶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임사장은 거리낌없이 자기반성의 내용들을 요약해줬다.
“지나치게 확장 일변도였고, 그러다보니 자금이 말렸지요. 게다가 목표 시장이 모호했어요. 한인도 아니고, 타인종도 아니고….한마디로 사업전략이란 게 없었기 때문에 실패한 거지요.”
무조건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확신하고 주변의 얘기에 귀를 막은 채 드라이브 일변도로 나아갔던 것이 20년 헐리트론의 몰락 원인 가운데 첫번째라고 했다.
”겉으론 잘 되는 것 같았지만 속으로 곪고 있었던 걸 몰랐지요. 요즘도 과거에 나처럼 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 데 내가 갔던 (실패의) 길을 가는 게 보입니다.”
덧붙이는 한마디가 귀를 바싹 당기게 한다.
■ 창의적인 리더 키우기
헐리트론 실패의 원인을 되풀이하지 않으면 리본을 성공적으로 키울 수 있다는 논리는 객관적으로야 당연하지만 상처를 꿰매고 뛰고 있는 임사장으로서는 뼈아픈 아이러니일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LA코리아타운 서쪽 윌셔길에 있는 리본 본점 매장과 오픈한 지 1년을 갓 넘긴 가든그로브의 리본 라이프스타일 매장, 그리고 앞으로 한 곳 정도 더 개설하는 것 외에는 매장 확장을 하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가이드라인을 설정하고 있다.
매장 확장에 힘들이기 보다는 40대 매니저들을 창의적인 리더로 키우는 교육환경을 마련하는 데 더 집중하고, 구호와 슬로건에 그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직한 고객 서비스를 실천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단지 매장에 찾아오은 고객들에게 물건을 파는 수동적인 행태에서 벗어나 신규분양 콘도 건축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납품하는 주문화된 판매방식을 채택하는 등 영업의 그림 자체를 헐리트론 시절과는 다르게 그려나가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확장, 리더가 앞장서서 독선적으로 끌고 나가는 성장의 부작용을 단단히 경험한 처지인만큼 임사장은 리본을 경영하면서 사람에게 포커스를 두게 됐다는 점을 가장 큰 변화로 꼽는다.
“예전에 헐리트론은 곧 임철호였지요. 이젠 그런 것이 얼마나 가치없는 개념인지 깨달았습니다.그게 독이 되었거든요. 그저 나만 따라오라고 했으니 조직원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젠 사람(직원)들에 조직의 경쟁력을 두고 창의적이고 창조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합니다. 시간이 걸리고 문제도 많겠지만 통제하느니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을 갖출 수 있도록 격려하고 등을 두들겨 주는 게 제 일이지요.”
그래서 임사장은 CEO의 여러가지 응용개념 가운데서 Chief Encouraging Officer(최고 독려자)쪽을 선호한다.
“통제를 할 때와 안할 때의 결과를 보면 그래도 통제를 안했을 때 직원들이 고객 서비스 방안을 내놓거나 실행하는 자세에서 동기 부여가 더 강하더군요. 임직원들이 자율성을 바탕으로 고객에게 해줄 수 있는 서비스는 다 해주자는 리본의 분위기는 베스트바이(Best Buy)보다 더 낫다고 감히 장담합니다. “
그의 명함에 Charlie Lim이라는 영어 이름 옆에 CEO라는 직함 대신 Chief Servant(고객섬김 경영인)라고 새겨져 있는 까닭을 알 수 있는 말이다.
■ 실패 이후 바뀐 가치관
헐리트론의 실패를 딛고 일어선 리본 라이프스타일의 임철호 사장은 파산 이후 가치관과 인생관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돈에 대한 그의 생각이 매우 소박해졌다.
“돈 때문에 결코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돈이 많으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할 수 있다는 건 헛된 생각이지요. 돈이란 것은 마음 먹기에 따라 벌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 것이거든요.”
그럼에도 임사장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을 오랜만에 갖게 된 계기를 들려준다.
지난 1월 중국 오지의 묘족이란 부족이 모여사는 곳을 선교사업차 다녀왔다. 문명사회와 거리가 멀게 살아가는 그곳 주민들은 최극빈 수준의 생활에 시달리고 있었다.
“우리에게 얼마 안되는 몇달러가 그들의 생계에서 엄청난 편리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돈을 벌어서 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하지만 돈이란 게 맘 먹는다고 벌어지는 게 아니지요.남을 위하는 배려의 정신을 갖고 있다보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고 믿습니다.”
한때 한인사회에서 백만장자로 손꼽히던 사업가 임철호씨는 이제 선교사업과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을 위해 재기에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 교훈 세가지
*과거의 성공에 집착해서 자만하지 말라. *카리스마적인 독단에 빠지지 말고 주변의 반대의견을 들어라. *사람을 키워라. 극심한 경쟁사회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리더를 키워라.
임철호 사장이 실패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설정한 세가지 신조이다. 그는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고 들려준다. 줄게 있고 받을 게 있으면 절로 형성되는 게 인맥이요, 인적 네트워크이지만 꼭 그러한 관계 보다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 가치있다고 여길 수 있으면 좋다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철호식 ‘인간경영’의 핵심이다. 요즘 그가 즐겨 읽은 책은 존 커터의 ‘변화하는 리더’이다. 리본과 함께 다시 태어났을 뿐 아니라 다르게 살아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 임철호 사장은
75년 미국으로 건너와 건물 청소,세일즈맨 등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했다. 함경도 상인출신이 선친이 할리우드길에서 시계점포를 인수한지 1년만인 79년 작고하자 가게를 물려받아 Lim’s Watch Center라는 간판으로 운영했다. 시계 뿐 아니라 워크맨 카메라 등 각종 생활전자용품 판매를 겸하면서 사업을 키워 81년 할리우드 블루바드와 바인 스트릿 코너에 헐리트론 1호점을 열고 본격적으로 전자제품 양판업을 펼쳤다. 20년 동안 8개의 직영 매장을 거느리고 연간 매출 규모 5천만 달러를 기록할 만큼 대형화했으나 오디오전문매장 Bang & Olufson을 주력화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확장으로 2001년 파산신청과 함께 헐리트론을 접어야 했다. 강원도 춘천 출신. 서울 대광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나왔다. | 황덕준 / 미주판 대표 겸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