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하는 젊은이들 소굴 만드는 최백호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가수 최백호(64)는 요즘 지하에 본부를 차리고 소굴에 산다. 이름은 뮤지스땅스. 음악하는 사람들의 독립저항운동이다. 도발적인 이름을 달고 있지만, 독립음악 창작을 지원하는 음악창작시설로 보면 된다. 그는 지하철 5호선인 마포 애오개역 주변 옛 마포문화원 자리인 아현지하보도에 있는 이 곳을 음악하는 사람들의 소굴로 만들려고 한다. 지하 1층과 지하 2층으로 구성된 뮤지스땅스는 35억원의 예산이 투입돼 녹음실, 작업실, 공연장 등 음악시설을 두루 갖춘 공간이 됐다. 

가수 최백호.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인디밴드를 포함해 젊고 가난한데, 실력있는 음악인이면 누구든지 오면 된다. TV에서도 콘서트가 열리지만, 방송국이나 기획사 입맛에 맞춰져 있고, 순수 음악적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는 매력이 없다. 우리는 재능있는 사람을 도와준다. 재능이 있으면 뮤지션에 맞는 기획사까지 연결시켜준다.”

발상도 특이하고 실력있는 음악인들이 생활이 안돼 음악활동을 계속할 수 없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 최백호는 이런 음악인에게 행사와 공연으로 수익도 올려 지속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런 일은 2011년부터 (사)한국음악발전소를 이끌며 원로 가수와 인디밴드들을 도와 왔던 게 계기가 됐다. 그는 10명의 원로음악인들을 돕고, 아코디언 연주자인 심성락과 가수 최양숙 등 원로음악인의 콘서트를 열어주었다. 음반을 내기 어려운 원로가수는 젊은 음악인과 함께 신곡앨범을 내게 하는 식의 기획력을 발휘했다. 정부에서는 2013년 그에게 아예 인디밴드를 위한 음악창작시설 ‘뮤지스땅스’ 운영을 맡겨 지난해 말 정식 오픈했다.

가수 최백호.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우리는 가난하지만 재능있는 음악인을 도와준다

“사실 팔자에 없는 일인데, 한국음악발전소라는 기부 단체를 운영하다 보니 뮤지스땅스도 맡게 됐다. 이런 것 하면 잘못하면 돈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돈 쓴 것을 기록한 장부는 홈페이지에 올려놨고 악기도 모두 공개입찰로 구매했다. 앞으로 뮤지스땅스를 자리잡게 해 인디들이 놀 수 있는 소굴이 되도록 하고, 이들에게 파티도 열어줄 것이다.”

음악하는 사람을 돕는 최백호는 40년째 쉼없이 가수생활을 해오고 있다. “반은 운이고 반은 노력이다. 그래서 꾸준히 가수를 할 수 있었다.”

가수로서는 운이 좋았다. 첫 앨범을 확실하게 알렸고 45살에 ‘낭만에 대하여’라는 노래를 다시 히트시켰다.

1950년 부산에서 태어난 최백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아버지 최원봉 씨는 부산 영도에서 29살의 나이로 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5개월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최백호가 만 1살이 되기 전이었다. 그는 “아버님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시고 영도의 산에 아버지의 이름 한글자씩 적어놓은 간판이 설치됐다고 한다”고 전해주었다. 부산에서 교사를 하다 잡화점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췌장암을 얻어 그가 21살인 1970년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최백호는 바로 입대했다. 하지만 마산국군통합병원에서 폐결핵 판정을 받고 의가사제대했다. 고향인 일광해수욕장 주변에서 싼 방을 구해 요양하면서 통기타가 유일한 벗이 됐다. 2년간 독학으로 기타를 익히고 노래를 불렀다.

가수 최백호.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불후한 어린 시절에 만난 통기타가 그를 가수로 만들었다

원래 최백호는 음치였다. 동래중학교 시절 노래를 부르면 음악교사가 노래를 부르지 말고 미술실에서 그림이나 그리라고 했단다. 중학교때부터 걸걸한 허스키 목소리였다. 하지만 결핵을 앓고 혼자가 된 최백호는 끊임없이 기타와 노래 연습을 하면서 드문 음색을 보유한 가수가 된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20개의 음반과 120곡이 넘는 노래를 내놨다.

최백호는 1973년 부산 서면의 라이브 클럽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이미 유명해져 있었다. 말하듯이 편안하게 노래하는 그가 나오면 손님이 늘어날 정도였다. 서울 명동에도 진출했다. 1976년에는 데뷔곡인 1집 타이틀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가을엔 가을엔 떠나지 말아요. 낙엽지면 서러움이 더해요.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최백호가 노랫말을 썼고 작곡은 최종혁이 맡았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외로움이 그대로 담겨있다. 최백호는 이후 ‘그쟈’ ‘입영전야’ ‘영일만 친구’로 승승장구했지만 한동안 히트곡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다 45살인 1994년 발표한 16집 수록곡 ‘낭만에 대하여’가 크게 히트하는 바람에 롱런가수가 됐다.

“‘낭만에 대하여’는 내가 직접 작사했다. 노래가 괜찮다고 생각해 만들어놓고 던져놨다. 하지만 1년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96년 KBS 주말 연속극 ‘목욕탕집 남자들’에 삽입곡으로 사용되면서 인기를 얻었다. 김수현 작가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드라마의 힘이다. 제 노래는 제가 히트시킨 게 아니다. ‘낭만에 대하여’는 장용 씨가, ‘길위에서’는 ‘가족끼리 왜 이래’의 유동근 씨가 히트시켰다. 유동근 씨가 노래를 잘 하더라. 술 한잔 사주고 싶다.”

가수 최백호.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낭만에 대하여’의 지속적인 힘은?

최백호는 ‘낭만에 대하여’로 가수생활이 20년 정도는 연장됐다고 했다. 아직도 새 노래 같은 이 노래의 위력에 놀랐다. 이 노래가 크게 히트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을 그어주는 노래다. 지금부터 당신은 중년이다. 이 노래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늙었다는 증거다. 그런 사람에게 위로하고 공감해준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40대 중년들로 인해 이 노래는 생명력이 있다. 외로움을 느낄때 ‘야, 첫사랑이 말이야’ 하면서 대화의 상대가 돼주는 노래다.”

최백호는 ‘낭만에 대하여’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20대에는 못만들고 40대 중반에서야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을 노랫말로 풀었다고 한다. 60세가 되면 60세의 노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노래가 나올 것이라고도 했다.

최백호는 중년들에겐 ‘낭만가객’ ‘낭만의 아이콘’으로 통한다. 하지만 자신은 낭만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단조로운 생활을 하며, 커피도 못 먹고 사이다나 콜라를 마신다. ‘낭만에 대하여’가 많이 팔렸지만 자신이 제작을 하지 않아 돈도 못 벌었단다.

하지만 그는 개인전을 열 정도로 그림을 잘 그리고, 영화제작, 영화감독의 꿈을 꾸며 시나리오를 2개나 써놨다. 결코 낭만과 무관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잘 나가던 톱스타가 몰락한다는 내용의 영화에는 ‘그 아픔까지 사랑한거야’를 부른 가수 조정현을 주인공으로 하려고 하는 등 구체적인 계획도 잡고 있다.

“‘낭만’ 이후 제 음악의 방향을 잃었다. 그럴만한 노래를 못만들었다. 딜레마에 빠져 헤매다가 박주원, 조윤성, 말로, 에코브릿지, 아이유 같은 젊은 음악인을 만나 공부를 많이 했다. 앞으로 다시 변화하는 가수가 될 것이다.”

최백호는 2013년 11월 아이유의 새 앨범 ‘모던 타임즈’에 실린 ‘아이야 나랑 걷자’를 함께 부르며 어린 후배들과도 음악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는 요즘 K팝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단조로운 음악현실을 지적했다.

“너무 똑같다, 같은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 같다. 노래하는 방법도 아쉽다. 개성적이고 독창적이어야 한다. 그런 분위기가 잡혀가면 뛰어난 친구들, 소위 물건들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개성 있는 젊은 뮤지션들을 지원하는 뮤지스땅스에 더욱 매달린다. 하지만 걱정이 많다. 6억원으로 책정된 올해 예산이 반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6억원이 책정된 지난해 운영비 중 3억원만 쓰고 3억원을 돌려줬더니 올해 예산이 3억원만 책정됐다는 것.

최백호는 “3억원으로는 10명의 인건비와 전기료 정도만 충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일에 열성이다. K팝 열풍을 지속시키려면 다양한 음악의 토양을 만들고 있는 최백호 같은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wp@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최백호가 걸어온 길

▶1950년 경상남도 동래군 출생

▶부산 가야초등학교 졸업

▶부산 동래중학교 졸업

▶부산 가야고등학교 졸업

▶1976년 부산 음악살롱에서 데뷔

▶1977년 1집 앨범 <내 마음 갈 곳을 잃어> 발표

▶1978년 <그쟈/ 입양전야> 발표

▶1979년 <영일만 친구/ 소녀야> 발표

▶1983년 <바람/ 고독> 발표

▶1995년 <낭만에 대하여/ 남자> 발표

▶2012년 <다시 길 위에서> 발표

▶1983년 MBC 10대 가수상, KBS 가요대상 남자가수상

▶1984년 제3회 가톨릭 가요대상

▶1996년 대한민국영상음반대상 본상, KBS 가요대상 작사상

▶2009년 MBC 수목드라마 <트리플> 출연

▶2011년~현재 (사)한국음악발전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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