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바둑에서 사용하던 이 용어는 바둑 돌이 크게 세력을 형성하면 포위 당해서 죽을 것 같아도 결국 살아나서 쉽게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말 그대로의 의미 보다는 시사적 의미로 쓰인다. 부실, 도덕적 해이로 파산 위기에 처한 대기업을 살리려고 정부에서 막대한 공적 자금을 투입하는 경우에 인용된다.
하지만 간혹 이런 대마도 고꾸라지는 일이 있다. 그리고 이런 대마가 쓰러졌을 때는 그 만큼의 여파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수년전만 해도 한국형 최고의 재테크 상품은 부동산이었고 ‘불패 카드’였다. 그런데 현재 한국에서는 불패카드라던 부동산이 반 토막이 났다. 분당. 일산 등은 물론 심지어는 강남 한복판의 노른자위 아파트도 이런 반토막 폭풍 앞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말로만 듣기만 하다 실제로 보니 부동산 몰락에 따른 여파는 그 상상을 초월한다. 개인적 판단으로는 미국 보다 한국에서의 부동산 시장 붕괴가 사회적으로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이다.
‘주택 보유= 아메리칸 드림(미국)’, ‘주택보유= 사회적 성공(한국)’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미국은 참 개인적이고 사적이며 또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사회다 보니 집이 없어도 재산이 적어도 상위층이 아니어도 그냥 그렇게 살면 그만이기도 하다.
반면 한국의 경우 집을 보유한다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집이 없으면 곧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이 찍힌다. 이곳에 나와보니 심지어는 동네 놀이터에서도 같은 평수 아이들 끼리만 모여 놀고 다른 평수 주민들간에는 큰 왕래가 없었다. 곧 주택 보유 여부가 좀더 확대해서는 보유 주택의 크기가 사회적 클래스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같은 단지안에 살면 어떻게든 유사 부류에 끼겠지만 다른 동네 다른 단지는 어울릴 수 없는 기타 계급이 된다.
한국에 와서 중고교 때 친구들을 여럿 만나게 됐다. 이 중 일부는 그나마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탓에 부모님들의 지원이 많아서 일찌 감치 집을 마련했다. 이런 친구들은 주택이 재태크의 개념보다는 자동차 처럼 기본 소유 물품화 되어 있고 집값에 덜 민감하다. 집값이 떨어져도 당분간은 그냥 살면 그만이고, 주택 융자금 지불에도 큰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거나 들어가 살아도 된다. 주택이 자산의 전부가 아닌 탓에 자산 건정성도 좋다.
하지만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친구들은 주택을 통한 재테크가 없다면 소위 경제적 안정이란 꿈꿀 수도 없는 처지인 개미 인생이다. 따라서 어렵게 모은 전세금에 높은 이자율의 융자를 더해 어떻게든 집을 마련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택 가격이 반토막이 났으니 이는 곧 경제적 실패라는 최후 최후통첩을 받아든 것과 같이 돼버렸다. 바로 말로만 듣던 하우스 푸어가 된 것이다. 미국의 깡통주택이나 숏세일, 경매, 차압 등과 말만 다르지 비슷한 처분을 기다리는 이들의 심정이야 말 안해도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금융회사에 근무하는 한 친구는 “아파트는 임대소득이 정기예금 금리에도 못 미치지만 가격만 오르면 주식 처럼 한번에 보상받는 상품이다. 즉 리스크가 높은 자산(Asset)이다”며 “그런데 집값이 떨어지면 자산에 대한 손실 회피(Loss
Aversion) 로 인해 거래가 없어진다”고 한숨지었다. 거래가 없어진다는 것은 곧 이들 개미 인생에게는 굶어 죽는 것과
같다.
미국의 경우 주택을 뺏긴 대다수는 쓰린 속을 부여잡고 아파트나 주택을 임대해 가면 된다. 그러나 한국은 주택을 경매 등으로 뺏기면 이 좁은 땅 덩어리에서 정말 갈 곳이 없다. 거리에 나 앉는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한국 정부도 이제는 하우스 푸어의 대량 이탈을 방지할 방책을 마련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반값 주택, 임대 주택 확충, 금리 인하 등의 포퓰리즘적 대안은 답이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