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 “나쁜 놈이 익숙한가요? 웃길 줄도 아는데…”

내물건 안돌려주니 괴롭히는 역할
악역마다 나름의 이유 · 사연 있어
남들 손가락질해도 소중한 내새끼들

칸 초청작 선정 아직도 꿈만 같아
영화인생 10년…끝까지 가렵니다

“사람 죽이고도 지낼 만 해요?” 수화기 너머 목소리에 고건수(이선균 분)의 등골이 서늘해진다. 건수의 약점을 잡은 의문의 남자 박창민(조진웅 분)은 전화로 그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중저음 목소리만 들려주던 창민이 드디어 건수 앞에 나타날 때, 그 긴장감은 주위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든다.

영화 시작 30여 분이 훌쩍 지나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조진웅은 등장만으로도 압도적이다. 놀라운 것은 그 장면이 클로즈업 샷(얼굴을 크게 잡은 화면)이 아닌, 풀 샷(전신 화면)이라는 점이다. 단지 풍채와 몸짓, 걸음걸이 만으로도 이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배우가 또 있을까.

28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진웅은 영화 속 악역 외모와는 거리가 있었다. 185㎝, 80㎏대 체구는 위풍당당했지만, 하얀 피부에 옅게 쌍꺼풀 진 눈은 장난기 넘쳐 보이기도 하고 순박해 보이기도 했다. 그 눈이 몇몇 영화에서 독사처럼 변하던 걸 떠올리면 역시 ‘배우는 배우다’.

▶“영화 본 아내가 120분이 12분 같다고…”=‘끝까지 간다’는 얼마 전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영화를 만든 김성훈 감독조차 상상해보지 않은 일이라고 하니, 조진웅을 비롯한 배우들에게도 꿈 같은 일이었다.

“칸이라니… 솔직히 ‘개봉만 돼라’ 했었다. 그러다 시사회 가서 영화를 처음 봤는데 깜짝 놀랐다. 감독이 정말 잘 했구나 싶더라. 아내도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120분이 아니라 12분 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즐거워하면서도 공을 이선균에게 돌렸다. “저보다야 선균이 형이 고생 많았다. 매 장면마다 뛰어다니고 괴롭힘 당하고… 동생(조진웅)이라고 하나 있는 건 만날 술 먹자고 그러지.”(웃음)

이선균, 조진웅의 ‘투톱’ 영화지만 출연 비중만 본다면 조진웅이 아쉬울 수 있다. 영화 3분의 1 지점부터 등장하는 데다가, 긴장감 있는 전개를 위해 덜어낸 본인 분량도 상당하다. 그래도 서운한 기색은 없다. “감독님 작품인데 본인이 망하게 편집했겠나. 다만 촬영 때 형사들 애드리브 보면서 나도 웃기고 싶었는데, (박창민이) 코믹 코드가 없는 캐릭터인 게 아쉬웠다.”

“촬영 전에 액션‘ 합’을 맞췄는데 그대로 했더니 재미가 없더라. 정말 무식하게 물어뜯고 꼬집고 하면서 싸웠다. 아파 보이는 장면은 실제로 정말 아팠다고 생각하면 된다”‘ 끝까지 간다’는 조진웅과 이선균의 날 것 그대로의 난투극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조진웅이 구축한 ‘나쁜 놈’ 월드=사실 조진웅은 대중에게 악역으로 익숙한 배우다.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비열한 2인자 ‘판호’를 연기하면서 본격적으로 그의 악역 인생이 열렸다. 심지어 이번 ‘끝까지 간다’에선 비리 경찰 이선균을 능가하는 ‘나쁜 놈’을 연기한다.

비슷한 분위기의 역할을 계속 맡다보면 ‘자기복제’의 늪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 영화 A 캐릭터에서 저 영화 B 캐릭터가 겹쳐 보이는 식이다.

신기하게도 조진웅의 몸을 빌려 태어난 악역들은, 저마다 팔딱팔딱 뛰는 기억으로 살아있다. 얼핏 비슷해 보이는 탐욕스러운 캐릭터도 경박하고 위트있는 인물(‘분노의 윤리학’)로, 때로는 냉혹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인물(‘끝까지 간다’)로 매번 다르게 그려낸다.

조진웅이 봤을 때 악역들도 나름의 이유와 사연이 있다. 부도덕한 캐릭터라도 이해 지점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그는 “박창민은 악역이라기보다 그냥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자기 물건을 달라는데 고건수가 안 주니까 괴롭히는 것”이라면서 “사람은 누구나 완벽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건데, 건수가 끼어들어 일을 그르쳤으니 상황이 그렇게 된 거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남들이 손가락질 하는 악역도 그에겐 다 소중한 “내 새끼들”이다.


▶“영화, 겨우 10년 했는데 뭘 알겠나”=그럼에도 조진웅은 ‘악역이 어울리는 배우’에 스스로를 가두고 싶지 않다. 주어진 역할 가운데 악역이 대중들의 인상에 더 깊이 남은 것 뿐,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에 욕심이 난다. 그는 “악역 이미지가 친숙하지만 나름 휴머니티 있는 캐릭터를 좋아한다”면서 “그래도 나를 보면 무섭게 느껴진다는 건 악역을 그만큼 잘했다는 거니까 좋은 거 아닌가”라고 웃어 보였다.

조진웅이 영화 데뷔한 지도 어느덧 10년 째다. ‘신 스틸러’(주연 이상으로 주목받는 조역)로 주목받은 건 최근이지만, 스무살 때부터 연극 무대에 섰으니 연기 경력은 내년이면 20년 째다.

“‘올댓재즈’라는 뮤지컬 다큐멘터리 보면 16,17살 아이들이 재즈발레한 지 12년 됐다고 한다. 걔들이 20대 중후반이 되면 20년 내공을 갖게 되는 거 아닌가. 난 이제 10년 밖에 안 됐는데 뭘 알겠나.”

이런 겸손함과 뚝심이라면 조진웅의 연기 인생도 의심 없이 ‘끝까지 간다’.

이혜미 기자/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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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죽거리 잔혹사’=조진웅의 영화 데뷔작이다. 역할은 ‘야생마 패거리2’. 대사도 없는 단역이었다. 영화를 보면 ‘선도부’ 이종혁 뒤에서 병풍처럼 서 있는 인물이 조진웅이다. 하지만 연극무대에서만 연기해왔던 그에겐 모든 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당시 출연료는 45만 원이었다.

▶‘다이어트’=“다이어트라면 징글징글하다. 처음 한 달은 배고파서 자다가도 욕이 나온다” 조진웅은 캐릭터에 따라 체중이 고무줄처럼 오가는 배우로 유명하다.‘ 우리 형’(2004) 때는 야식으로 짜파게티 12봉지를 끓여 먹기도 하며 128㎏까지 찌웠다. 이후에도 여러 작품을 통해 30~40㎏을 늘리고 줄이길 반복했다. 최근 몇년 간은 80~90㎏ 대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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