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터뷰]권율, ‘천상여자’는 그에게 ‘시작’이다

KBS2 일일드라마 ‘천상여자(天上女子)’가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었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에 막을 올려, 초여름이 돼 서야 끝을 맺었다. 약 5개월간의, 그야말로 대장정을 마무리 지은 셈이다.

그 중심엔 배우 권율이 있다. 데뷔 후 첫 주연인데다, 갖은 풍파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순애보’로 자리를 지켰다. 그가 맡은 서지석이란 인물은 남부러울 것 없는 재벌 3세로, 모두의 선망이 대상. 그러나 어린 나이에 엄마 없이 본가에 들어와 친할머니 손에 자랐다. 가슴 아픈 가정사로 인한 방황의 시기도 있었으나, 윤소이(선유 역)를 만나면서도 바른생활 사나이로 거듭났다.


권율은 줄곧 윤소이를 믿고, 또 믿으며 변함없는 사랑을 줬다. 이는 악역 중의 악역, 박정철(태정 역)과 대비돼 시청자들의 지지와 응원을 한 몸에 받는 결과로 이어졌다.

드라마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며, 행복한 결말로 매듭지었다. 이로써 권율 역시 ‘일일극 첫 주연’이라는 막중한 책임감을 내려놓았다. 긴 호흡에 처음 겪는 경험 등 ‘천상여자’는 지난 2007년 드라마 ‘달려라! 고등어’로 데뷔한 권율을 한 걸음 성장하게 했다.

◆ “지석을 잘 보내야 할 것 같아요.”

“처음 ‘지석’이란 캐릭터를 봤을 땐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었어요. 동화에나 나올 법한 순진무구, 순애보적인 사람이니까요. 묵묵히 한 여자를 사랑해주는, 어찌 보면 판타지 같을 정도로 순애보 역할인데,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흔쾌히 출연을 결심했어요. 그런 부분에 끌려 선택한 작품이라 한 번에 매료됐죠”

긴 호흡이었던 만큼 작품 속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일도 중요하다. 권율 역시 ‘떠나보내기’ 작업을 진행 중이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홍콩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어요. 비운다는 생각으로 갔지만, 아직은 뭔가 끝나지 않은 것 같아요. 저의 일상은 익숙해졌는데, ‘천상여자’는 계속 진행 중인 것만 같은 느낌이네요(웃음)”

극을 마무리 지으며 점수를 매겼다. 매번 그랬듯 작품이 끝난 뒤엔 아쉬움이 남기 마련이다.

“어느 작품이나 아쉬움은 늘 남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왜 그때는 못했을까?’ ‘이렇게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등 연기적인 부분부터 ‘좀 더 살뜰하게 가족과 주변인들을 챙겼다면…’이라는 인간적인 아쉬움도 있어요”

“그래서 높은 점수는 줄 수 없을 것 같아요(웃음). 생각과는 달리 시행착오도 겪었고, 정신과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스스로 타협한 부분도 있어요. 누구나 타협할 수 있고 무너질 수도 있지만, 그런 것에 있어서 좀 더 여유롭게, 또 현명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작품이에요”

채워나가야 할 점수가 있기에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된다.

“인간 권율과 배우 권율의 양쪽 모두 깨달았다는 것을 밑바탕에 두고, 다음 작품에는 이번 드라마에서 보여드리지 못한 것, 그리고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려야죠”

이제는 지석을 보내주는 일만 남았다.

“권율이 연기한 지석, 제 기억 속 또 다른 지석은 앞으로 없을 테니까요. ‘ 다음엔 더 멋지게 해줄게’라는 말을 이젠 할 수 없기에 아쉽고 더 애틋하네요. 당분간은 지석을 잘 보내주는 일을 해야 할 것 같아요”


◆ “‘천상여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작품”

“이번 드라마를 찍으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집중’이었어요. 나아가서 연기적인 부분에서는 일일극에 좀 더 필요한 연기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아요. 긴 호흡의 극이라 정서적인 멘탈 관리에도 무척 신경을 썼죠”

권율은 ‘천상여자’ 속 지석과 일상 속 권율을 분리하려고 애썼다. 호흡이 긴 만큼 익숙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이 같은 고민은 배우로서의 성장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처음 드라마 주연을 맡았기 때문에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서 감정적인 관리에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면서, 일일극에서 보여줘야 할 기술적인 연기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됐고요”권율은 작품의 중반부터 일일극의 특성을 파악해 연기에도 변화를 줬다.

다른 매체보다는 더 상징적으로 보여줘야 할 부분을 짚어냈고, 한 번에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는 표정으로 상황을 대신했다.

“나름의 추구하는 연기 철학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무지했던 것 같아요. 전형적인 연기를 하지 말자는 주의였는데, 그러다 보니 일일극에서의 권율이란 배우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내가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이 스쳤어요. ‘천상여자’를 통해 많이 배우고 또 많은 경험을 했죠”

확실히 전달되는 이미지와 감정이 전해지는 부분을 표정으로 알리는 것, 권율은 뜨거운 곳이라고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 못 견딜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기 때문에.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니, 땀이 나면서 시원해지기까지 한 새로운 경험을 얻었다.

연기자로서 또 한 걸음 내딛은 것이다.


◆ “이제는 달려야죠!”

“그동안 말을 잘 쓰다듬는 작업을 해왔다면, 이제는 고삐를 당겨 달리는 시간인 것 같아요”

‘천상여자’는 권율에게 ‘시작점’이다.

5개월 동안 일일극을 이끄는 주연으로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혔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도 얻었다. 무엇보다 ‘아들’ 권율은 배우를 꿈꾼 자신을 항상 지지해주신 부모님의 웃는 얼굴이 감사했다.

“촬영 때문에 여러 곳을 다니지는 못해서 가족들을 통해서 반응을 들었어요. 주위 호응에 배우로서 새로운 기분이 든다기 보다는, 아들로서 부모님께 효도했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지금까지 절대적으로 지지해주셨지만 이번 작품으로 조금은 한시름 놓으셨을 것 같아요”

“전과 후, 예측이 어려운 배우가 되고싶다”는 권율.

‘천상여자’를 시작으로 고삐를 당길 채비를 마쳤다. 오는 7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최민식 분)의 아들 이회 역을 맡아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천상여자’는 제게 실전 교과서 같은 작업이었어요. 6개월이란 시간 동안 연기적인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해보고 감정의 변화를 느끼면서 실전에서 모니터까지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에겐 값진 경험이었어요. 작게는 헤어스타일부터 연기 톤, 발성, 발음, 눈빛, 행동, 마음가짐까지 ‘권율’의 변화를 그때그때 느낄 수 있었던 ‘실전 교과서’ 같은 작품이죠”

단숨에 높은 곳에 오르고자 하는 욕심은 없다. 꾸준히, 조금씩 배우라는 쉽지 않은 길을 향해가고 있다. 짧지 않은 시간, 내공을 쌓고 경험을 다졌고 이제는 달릴 일만 남은 권율의 앞날이 기대된다.

“잘 알아보지 못하는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극 중 의상이나 스타일은 있겠지만, ‘어떻게 저렇게 바뀔 수가 있지?’ ‘전혀 몰랐어’ 같은 반응을 들을 수 있는 배우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김하진 이슈팀기자 /hajin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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