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은 90년 대마초 사건으로 5년간 방송 출연을 할 수 없게 되자 라이브 콘서트에 주력했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콘서트였지만, 전국을 도는 이 때의 콘서트를 통해 평생 노래부를 수 있는 ‘힘’을 비축했다.
이승철 가창의 매력은 고음에서 감정을 터뜨리고 내질러야 할 시점에 오히려 힘을 뺀 채 절제하는 것이다. 절규하듯 애절하게 부르는 여느 감정과잉 발라드 가수에 비해 부담없이 오랫동안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대가 보고 싶을 때 미칠듯 보고 싶을때, 그저 한번씩 나 이렇게 남모르게 울면되요, 잊지 말아요 그대요 잊지 말아요~”를 너무 애절하게 부르면 듣는 사람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 이승철도 “뭔가를 강요하는 건 싫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래방에서 여자친구에게 발라드를 불러본 사람이면 감정의 수위를 조금 더 높이고 싶은 유혹도 느낄 것이다. 그런데도 이승철은 ‘오버’하지 않고 차분한 톤으로 노래하며 밋밋함을 극복했다. 힘을 뺀 목소리는 50대에 이른 ‘관조적 창법’과 어울리면서 역설적으로 사골국 같은 감성을 우러낸다. 여자들이 남자가 임재범의 ‘고해’를 못부르게 하는 이치를 생각해보면, 이승철 창법이 살아남은 이유가 수긍될 법도 하다.
이승철은 아프리카의 차드에 학교를 짓고, 김천교도소에 있는 청소년에게 노래를 가르치며, 탈북청년합창단과 함께 독도와 UN본부, 하버드대에 가 통일송을 불렀다. 또 최근 부산 UN기념공원에서 잠든한국전쟁 참전용사인 프랑스 레몽 베나르 할아버지와도 소중한 인연을 이어왔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방송되는 KBS ‘나는 대한민국’에서 40여 명의 대한민국 대표 가수들로 구성된 합창단도 이끌고 있다. 이승철은 이제 선배가수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기꺼이 이런 일들에 동참하고 있다.
이승철은 2009년 10집 ‘뮤토피아’를 내고 공연도 2000회쯤 하면서 매너리즘도 살짝 왔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은 동기부여가 확실히 돼 너무 재미있다면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재미도 있고 의미까지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고 있는 이승철이 참 보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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