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아들 시신 훼손사건, 여중생 딸 시신 방치 사건, ‘7살 원영이’ 사건…. 끔찍한 아동학대 범죄가 줄줄이 밝혀지는 요즈음,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런데 바로 이웃집 아이에게는 얼만큼의 관심이 있는지. 경찰 수사결과 “이웃도 전혀 몰랐다”는 말이 약 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정부는 지난 2014년부터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자 아동학대처벌법을 시행하고 있다. 법에는 ‘신고 의무자’에 대한 조항도 있다. 아동복지시설 종사자, 아동복지 전담 공무원, 초중고 교사나 교직원 등이 해당된다. 이들이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상황을 알고도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알아서 드러나기 어려운 집안 문제에는 외부의 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따듯한 치유의 시선, ‘너는 착한 아이’= 영화에는 서로 다른 세 아이가 등장한다. 놀이터에서만 상냥한 엄마(오노 마치코)는 집 현관문을 닫는 순간 돌변해 아이를 마구 때린다. 아이는 엄마가 무섭지만 엄마에 대한 애착도 강하다. 친절한 이웃집 아줌마(이케와키 치즈루)가 “이모랑 같이 살래?”라며 묻는 장난말에 “싫어요”라고 크게 소리친다.
학교가 끝나고도 좀처럼 운동장을 떠나지 않는 소년은 방치 상태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정해진 저녁 메뉴를 알아서 챙겨 먹는다. 구타를 당한다는 의심도 들지만 담임 선생님(코라 켄고)은 쉽게 다가갈 수 없다. 주변에서도 조심할 것을 당부한다.
한 자폐아는 매일 등교길에 마주치는 할머니와 ‘안녕하세요’ ‘안녕히계세요’ 두 번의 인사를 한꺼번에 나눈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외로운 두 사람은 친구가 된다.
영화는 2013년 발표된 나카와키 하쓰에의 소설 ‘너는 착한 아이야’를 바탕으로 구성됐다. 다섯 개의 단편 중 ‘웃음 가면, 좋은 엄마 가면’, ‘산타가 오지 않는 집’,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세 편을 영화로 엮었다. 소설은 제28회 츠보타 죠지 문학상을 수상하고 발간된 2013년 일본 서점 대상 최종 후보작에 선정되기도 했다.
재일교포인 오미보 감독은 바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 문제에 대해 따듯한 시선을 보낸다. 영화는 ‘남의 삶’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하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남의 삶에 참견할 용기가 있겠느냐고.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에서 집 문을 두드리는 초등학교 교사의 모습이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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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너는 착한 아이’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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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아무도 모른다’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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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도가니’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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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아메리칸 크라임’ 스틸컷] |
▶충격적인 아동방치 실화 ‘아무도 모른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네 남매는 전기도 수도도 끊어진 집에서 노숙자처럼 살아간다. 일본에서 실제 일어났던 ‘스기노 아이 유기 사건’을 모티브로 한 2004년 영화 ‘아무도 모른다’(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츠)다.
서로 다른 아빠를 가졌지만, 그래도 엄마만 같이 있으면 화목했던 네 남매였다. 맏이인 아키라(야기라 유야)를 제외하고 출생신고도 되지 않은 아이들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기’, ‘떠들지 않기’ 등의 규칙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엄마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밥, 청소, 빨래를 스스로 해나가던 기특하던 모습도 잠시, 점점 ‘거지꼴’이 되어간다. 이들을 보고도 이웃집 아줌마는 “집에 놀러온 친척들이다”라는 말을 그대로 믿어 버린다. 이따금씩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을 아키라에게 챙겨 주는 편의점 직원이나 유일한 친구 사키(칸 하나에)를 빼고는 이들의 사정을 ‘아무도 모른다’.
영화는 이 거짓말 같은 실화를 냉정하게 담아냈다. 카메라는 다큐멘터리처럼 무심하게 관찰자 시점으로 네 남매를 비춘다.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던 비극은 이상하게도 극대화된다.
▶ 한국에선 ‘도가니’, 미국에선 ‘아메리칸 크라임’= 2000년대 광주의 한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수년간 벌어졌던 성폭력과 아동학대 사건을 다룬 한국영화는 ‘도가니’(2011, 감독 황동혁)다. 영화는 소설가 공지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부모가 없거나 있더라도 한쪽만 있는 아이들, 그 보호자마저 장애가 있어 제대로 아이들을 보호해 줄 수 없는 ‘완벽한 약자’인 아이들에게 가해진 폭력은 어마어마했다. 학교에 새로 부임한 교사 인호(공유)가 낌새를 알아차리고 인권단체에서 일하는 유진(정유미)괴 함께 진실을 드러내려 안간힘을 쓴다.
‘아메리칸 크라임’(2007, 감독 토미 오하버)은 1960년대 ‘배니체프스키 vs 인디애나’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다. 남편이 죽고 혼자 6명의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거트루드(캐서린 키너)는 이웃집 딸 실비아(엘렌 페이지)와 그의 동생도 맡아주기로 한다. 처음에는 자매를 잘 대해주던 거트루드는 점점 실비아의 부모가 보내는 돈이 늦어지자 아이들을 난폭하게 대하기 시작한다.
실비아는 실수로 거트루드의 큰딸 폴라(아리 그레이너)의 임신 사실을 말한다. 이에 온 집안이 실비아를 향한 거트루드의 학대에 동참하게 되고, 실비아는 결국 죽음에 이른다. 거트루드의 학대만큼 충격적인 모습은 아이들의 침묵이다. 두려움에 떠는 주변인들은 상황을 모른 체하거나, 적극적으로 가담하면서 스스로 가해자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