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전 자주 맥주를 마시냐는 질문에 대한 우문현답이었다. 3호선 버터플라이의 무대가 배경음악이 됐고 대기실 안 탁자 위에는 맥주가 놓여있었다. 날은 더웠다.
지난 21일 서울 상암동 난지 한강공원에서 열린 ‘그린플러그드 2016’ 무대에 오르기 전 크라잉넛을 만났다. 크라잉넛은 ‘봄의 록페’ 그린플러그드에 지난 2010년 1회 때부터 꾸준히 러브 콜을 받아온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록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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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헤럴드 DB] |
“록페스티벌에 설 수 있다는 건 일단 라이브가 돼야하잖아요.” 보컬 박윤식이 너스레를 떨었다. “라이브 위주니까 정말로 밴드 본연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가 페스티벌이죠.” 베이스 한경록이 거들었다.
그들에게 ‘록앤롤(Rock & Roll)’과 페스티벌은 같은 의미였다. “록앤롤은 말도 안되는 게 있어요. 상식에서 벗어나는 것. 페스티벌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날엔 풀어질 수 있고 일상에서 못하는 걸 해도 다 웃고 이해하잖아요.”
32도 날씨에 가죽 재킷을 입은 김인수가 보온병에 든 따뜻한 차를 마셨다. “이열치열. 원래 이런 날 가죽잠바 입고 공연하는 거예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자에게 한경록이 대신 설명을 덧붙였다.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때쯤에야 록앤롤, 혹은 크라잉넛 만의 ‘말도 안 되는 것’에 대해 조금은 이해해볼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크라잉넛은 1995년 동갑내기 친구들이 모여 결성, 99년 2살 많은 형 김인수가 합류하면서 지금의 완전체가 됐다.
“저희는 초중고 동창이에요. 유치원 동창인 친구들도 있고 인수 형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들어왔는데 어떻게 안 싸울 수가 있어요. 그래도 음악이라는 게 제일 재미있으니까, 친구니까 다툼이 오래 가진 않는 것 같아요.”(베이스 한경록)
“밴드 한지는 21년이 됐는데 친구로 시작한지는 한 30년이 넘었잖아요.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안 흔들린다고, 싸워도 금방 다시 뭉쳐지고 그런 게 있더라고요.”(보컬 박윤식)
이상면과 이상혁은 심지어 쌍둥이다.
“두 사람은 쌍둥이여서 헤어지기가 힘들어요. 혈연, 학연, 지연, 군연(군대) 뭐 다 있어요. 군대도 같이 다녀왔어요.”(보컬 박윤식)
무수한 연으로 묶였다지만 중요한 기로에서도 그들은 같은 길을 택했다. 김인수와 한경록을 제외한 나머지 세 멤버는 대학을 중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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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그린플러그드 2016’ 제공] |
“대학에 들어갈 때 대학에 안 가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학교를 들어가고 보니 내가 이 학교에서 배우는 걸로 인생을 살 것인지 내가 좋아하는 걸로 살 것인지 그 기로에서 갈라선 거죠. 음악으로 온 거죠.”(드럼 이상혁)
“학업보다는 음악이 더 재미있었으니까.”(보컬 박윤식)
“그 때 나이가 대책이 없었어요. 스물 두 살이니까. 대학교 4학년 때 ‘말달리자;가 떠서 공연이 많아졌어요. 학교를 거의 갈 수 없었어요. 맨날 술 먹는데 다음날 어떻게 가겠어요.(웃음)”(드럼 이상혁)
크라잉넛은 록밴드면서도 ‘인디’ 족보에서는 조상님 격이다. 데스메탈 밴드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뭐라고 규정지어주는 건 상관없는 것 같아요.”(베이스 한경록)
“인디라는 말은 중소기업이란 말이랑 비슷해서 붙여진 것 같아요.”(드럼 이상혁)
그들은 자신들을 ‘중소기업’ 밴드라고 불렀다. 크라잉넛은 기획사 자체이자 작사, 작곡, 프로듀싱, 홍보까지 모든 걸 스스로 하고 있다. 다섯 멤버도 크라잉넛도 나이를 먹어가지만 이 원칙만은 그대로다.
“예전보다 조금 알려지고 소위 말해 떴다고 해서 우리 시스템이 달라진 건 없거든요. 큰 자본을 가지고 움직이는 회사가 아니니까 모험을 할 수가 있어요. 어차피 망해도 조금 망하니까.”(베이스 한경록)
“투자한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어서 더 특이한 걸 생각할 수 있죠”(드럼 이상혁)
“좀 더 크면 코스닥에 상장하고 싶어요.(웃음)”(보컬 박윤식)
가장 최근 낸 앨 범은 2015년 20주년 기념 싱글 앨범 ‘안녕’이다. 2013년 정규 7집 이후 정규 앨범의 공백이 꽤 길었다. “지금 계속 곡 작업 중이에요. 저희가 일단 올해 안에 나온다고 이야기를 하고 마지노선을 정해 놔야 그나마 열심히 하더라고요.”(베이스 한경록) “정규가 될지 프로젝트 앨범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21년 내리 록을 했지만 아직 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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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그린플러그드 2016’ 제공] |
너도 나도 싱글 앨범을 내는 시대지만 “이제는 정규 앨범으로 내야 할 때”라고한다. “정규는 사진 앨범 같은 느낌이다. 디지털 싱글은 컴퓨터에 저장된 사진 같은데, 앨범은 양장 본 졸업 앨범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런 게 집에 오래 남는다.”(드럼 이상혁) 멤버들 모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맞아”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20년을 넘게 함께 했으니 척하면 척인 가 보다.
탁자 위 맥주를 거의 비워갈 때쯤 ‘공연과 술’에 대해 물었다. “공연 전에 어느 정도까지만 술을 마시면 공연이 잘 되는데, 선을 넘으면 공연이 망해요.(드럼 이상혁) 실제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공연이 망한 적 있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한도 끝도 없이 많죠“라고 답했다. ”한번은 공연 대기 시간이 너무 길어서 심심하고 지루해서 술을 먹다가 판이 커졌어요. 다 만취해서 공연을 못했어요.“(드럼 이상혁) 이에 한경록은 ”어렸을 적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이제는 많이 마셔도 어느 정도는 즐길 수 있는 적정선이나 이런걸 나른 깨우쳤다“고 한다. 그래도 100% 확률로 조절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아직 성공 확률이 8할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술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데도 똑같이 마셔요“라고 말하는 크라잉넛, 이들 다섯 명 멤버는 모두 40을 넘겼다. 20대, 30대, 그리고 40대의 락은 무엇인지 물었다.
“20대는 ‘객기’였죠.(웃음)”(드럼 이상혁)
“40대는 ‘자유’예요. 요즘 제가 생각하기에 해방구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놀이문화가 없어요. 문화가 별게 아니고 노는 건데 취미 생활이 없어요. 일도 너무 많고 야근도 많고 뭘 많이 해야 되고 책임도 져야 하잖아요. 근데 보통 락 스피릿 하면 ‘몰라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이런 게 있거든요. 그런 느낌이 무책임하다기 보다는 대한민국이란 커다란 공장에서 그 톱니바퀴 안에서 ‘나 일 안 해’, ‘내가 뭔가를 나만의 세계로 만들래’ 이런 울림이 있는 것 같아요.“(베이스 한경록)
“‘분출’이예요. 제가 단언컨대 락페 다니는 사람들 중에 연쇄살인범이나 토막살인범 이런 사람은 없을걸요? 다 분출하니까요. 분출하는 창구가 되는 것 같아요.“(보컬 박윤식)
”’연쇄 사랑꾼’은 있지 않을까요?(웃음)“(드럼 이상혁)
“20대, 30대는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아직 저희 어려요.”(보컬 박윤식)
마지막 질문은 ‘본인에게 록이란’이었다. 유난히 말이 없었던 이상면도 이 질문에는 입을 열었다. ”그냥 음악이요. 해방감이랑 구속을 동시에 느껴요. 해방과 동시에 그게 환경에 영향을 끼치고 주위 사람들이랑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것들이라 그런 것들이 자유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구속이죠. 이런 락페스티벌은 구속일수도 있죠.“(기타 이상면)
나머지 멤버들은 입을 모아 ”생각해 본적 없다“고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 만큼 당연한 게 돼버린 셈이었다.
“20년 넘게 밥을 먹으면서 한번이라도 왜 밥을 먹는지 자문해 본 적이 있으세요? 맛이 없으면 가끔 내가 이걸 왜 먹고 있지 욕하기도 하겠지만.”(키보드 김인수)
“저도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제가 락이니까. 왜 사냐고 묻는 거랑 똑같은 거예요 진짜.”(드럼 이상혁)
“졸라 멋있다?(웃음)”(베이스 한경록)
마지막 질문이었다.
“락, 계속 하실거죠?”(기자)
“기자님은 몇살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아요?”(키보드 김인수)
“저…80이요.”(기자)
“진짜요? 저는 그런거 생각이 본 적이 없어서. 언제까지 살 수 있을 거란 거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키보드 김인수)
“…”(기자)
“저희들한테 락도 그런 거예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크라잉넛이 무대 위에 올랐다. “오늘은 모든 걱정을 집에 다 놓고 아무 걱정 없이 놀아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