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와 노동하며 분배경제 실천
종이공방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남녀평등·기회평등 메시지 전달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는 제때 방영시기를 놓친 것이 큰 마이너스로 작용했다.
30부작 ‘사임당’은 사임당이라는 역사속 위인을 그려나가는 서사적 정통사극 스타일과 현대적 세팅에 평행우주론이 첨가된 작품이다. 타임슬립 또는 타임리프가 시간을 점프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구조라면 평행우주론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현실 우주에서 서지윤(이영애)이 또 다른 시공간을 교통사고후 혼수상태에서 비롯된 신비한 끌림에 의해 옅보게 된다.
서지윤과 사임당, 이겸(승승헌)과 한상현(양세종), 서지윤 동네의 거친 아줌마와 사임당 집안에서 일하는 여종 등 인물들이두 시공간에서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타임슬림과 평행우주론의 차이를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도깨비’와 ‘푸른 바다의 전설’ 등을 통해 이미 맛본 타임슬립 방식에 이어 또 타임방식이냐며 식상함을 제기한다.
또한 평행우주론이 두 시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잘 되지 않는 상태에서 진행되다 보니 오히려 산만하고 복잡한 것 아니냐는 반응으로 이어졌다. 괜히 어렵게 풀어나간 꼴이 됐다. 사실 처음부터 심플한 정통사극 스타일로 가는 게 나을 뻔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3회부터 사극 대 현대물 비중을 7대3으로 해 사극 비중을 높이며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점이다. 산만했던 1~2회보다 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운평사에서 민치형 이조참의(최철호)가 위험한 시(詩) 유출에서 비롯되는 사건을 덮기 위해 참극을 벌이고 현재도 최대 지물상으로 권세를 누리고 있다는 건 앞으로의 사건 전개를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중종의 위험한 시 유출은 사임당의 부친인 신명화(최일화) 살해로 이어졌다. 조금 더 스토리가 궤도에 오른다면 드라마속에 있는 이야기들은 음미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제작진은 ‘사임당’이 첫방송되기 직전 “요조숙녀 사임당이 아닌 마음속에 용광로 같은 예술혼을 지닌 워킹맘으로서의 사임당을 표현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말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워킹맘으로서의 여성상을 제시하느냐다.
우선 사임당의 교육방식이 눈에 띈다. 극중 사임당에게는 4명의 자녀가 있다. 율곡은 작은 아들이다. 사임당은 책만 읽고 공부를 잘하는 율곡을 절대 편애하지 않는다.
반면 휘음당 최씨(오윤아)와 민치형 부부의 아들 키우는 방식은 이와는 다르다. 민치형은 아들에게 “열심은 기본이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고 교육한다. 민치형이 오이가 몸에 좋다고 하니 장남이 아버지 앞에서는 먹기싫은 데도 먹다가 결국 탈이 나고 만다.
이 양쪽 집안의 대조적인 자식 교육방식은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이들의 적성과는 관계없이 과잉교육에 출세 위주의 대학 과(科) 선택을 원하는 현대식 엄마가 적지 않다. 여기에 금수저VS 은수저라는 출신 문제로 교육문제를 풀어가기에는 사극이 제격이다.
또 하나는 분배경제다. 교육문제의 적대자(안타고니스트)는 민치형-휘음당이었지만, 분배경제의 안타고니스트는 중종(최종환)이다. 이 이야기는 아직 본격 전개되지는 않았지만, 중종은 자신도 연산군처럼 쫓겨날 것을 두려워하는 생존형 국왕이다. 삼 정승과 민치형 같은 권세가를 자신을 공격할 잠재세력으로 보고 항상 불안해한다.
중종은 권력지형도를 읽어내는 데는 능숙하지만, 치국평천하, 분배경제에는 관심이 없다. 사임당은 종이 공방을 운영하며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면서도 불쌍한 백성을 끌어안는다. 유민과 함께 노동도 한다. 중종은 그런 사임당을 밀어주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시기 질투 견제하는 왕이다.
세번째로 ‘사임당’이 전하는 메시지는 남녀평등, 기회의 평등이다. 종이공방 등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될 메시지이다. 여기에는 사임당의 키다리 아저씨로서의 이겸(송승헌)이 큰 역할을 한다.
자유영혼 이겸은 첫사랑인 사임당과 결혼을 하지 못하자 파락호 같은 삶을 지낸다. 의관을 제대로 갖춰입지 않고 술로 날을 보내도 송승헌의 잘생긴 외모는 바래지 않았다.

이겸은 조선시대 문화예술살롱인 비익당(比翼堂)의 주인이다. 비익당은 능력은 있으나 못 피운 예술혼을 피어나게 해주는 곳이다.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열망과 재주가 있다면 반상 노비, 남녀 차별을 두지 않으니 가난한 예인들이 몰려온다. 이 점에서 이겸은 민치형과 대립한다. 민치형은 예악은 양반 사대부에만 있다고 하는 반면 이겸은 예악은 여염집을 포함한 모든 곳에 다 있다고 말한다.
예술교육에는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예술을 좋아하고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교육받을 기회가 주어져야한다는 점에서 이 또한 현대적 의미를 갖는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