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안 잡나 못 잡나? “정부의 선택”[세종백블]

수급보다 판단…농민·소비자 사이에서 커진 정책의 무게


서울시내 한 쌀가게에서 업주가 쌀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며칠 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식량정책을 담당하는 공무원을 만났다. 요즘 가장 고민되는 현안을 묻자 망설임 없이 “쌀값”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쌀값은 농식품부에 늘 부담이다. 너무 떨어지면 농민이 힘들고, 너무 오르면 소비자가 버거워진다. 그는 최근 쌀값 급등의 원인으로 “기후위기로 인한 생산 감소”를 들었다. 손쓸 수 없는 변수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새해 들어서도 쌀값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1월 15일 기준 산지 쌀값은 80㎏ 정곡 기준 22만9028원으로, 이달 5일보다 0.3% 올랐다. 이달 5일 가격 역시 지난해 12월 25일보다 0.3% 상승했다. 수확기 이후에는 약보합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농식품부의 기존 전망과는 다른 흐름이다.

가격은 원칙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결정한다. 하지만 최근 쌀값 움직임을 단순한 수급 불안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쌀이 모자라서라기보다, 정책적으로 시장에 풀리지 않은 물량이 많다는 해석이다. 지난해 초과 생산량은 10만톤 안팎으로 추산되지만, 공공비축미 40만톤과 시장격리 물량 10만톤 등 50만톤 안팎의 쌀이 정부 창고에 쌓여 있다. “쌀값이 안 잡힌다기보다, 내려오지 않도록 관리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쌀값이 오를 때마다 “비축미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반복된다. 밥상 물가부터 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비축미 방출은 그렇게 단순한 선택이 아니다. 단기적으로 가격을 낮출 수는 있지만, 그 자체가 정부의 쌀 수급 정책 기조를 흔드는 신호가 될 수 있어서다. 농가 소득 보전과 향후 수급 조정 전반에 미칠 영향을 감안하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카드다.

한강대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쌀생산자협회가 연 전국농민대회 참가자들이 쌀값 보장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


문제는 현재의 가격 흐름이 농민 쪽으로 무게추가 지나치게 기울어졌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표에서도 이런 흐름은 분명히 드러난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5년 농가판매 및 구입가격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판매가격지수는 119.1(2020년=100)로 전년 대비 2.5% 상승했다.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다. 곡물 판매가격지수 상승률은 11.3%였고, 이 가운데 미곡은 14.1% 올라 전체 지수 상승을 주도했다. 쌀값 고공행진이 농가 판매가격 전반을 끌어올린 셈이다.

반면 소비자 체감 물가는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7.7%로, 2021년 이후 가장 높았다. 지난해 10월에는 소매가격이 20㎏당 6만5000원을 넘기며 외식비와 명절 음식 부담으로 이어졌다. 농가 지표만 놓고 보면 정책은 ‘성과’를 냈지만, 그 비용은 소비자가 떠안았다.

전문가들은 쌀값을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선택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쌀값은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서 결정돼야 하는데, 지금은 정부가 소비자보다 농민 쪽을 선택한 결과로 보인다”며 “결국 어떤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의 문제”라고 말했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도 “농업 보호와 소비자 물가 안정 사이의 균형을 다시 점검할 시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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