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델’의 강력한 후원자 故 김정근 고문, 그가 남긴 ‘포스트 렉라자’의 꿈

韓 바이오 벤처 개척자 김정근 창업주 별세
렉라자 FDA·아델 수출 등 신약 개발 족적
ACART·DAC 무기로 글로벌 항암 리더 도약


렉라자 원천기술을 개발한 김정근 오스코텍 고문이 별세했다. 향년 65세. [오스코텍 제공]


한국 바이오 산업 발전에 한 획을 그은 고(故) 김정근 고문의 명복을 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 SNS, ‘어느 바이오 창업자의 죽음’ 中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대한민국 바이오 벤처의 기틀을 닦은 선구자, 김정근 오스코텍 고문(창업자)이 향년 65세로 별세했다. 평소 지병 없이 건강했던 고인은 미국 출장 중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업계에 큰 충격과 슬픔을 안겼다. 고인을 향해 바이오 업계는 한국 신약 개발 역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거목이라며 깊은 애도를 표하고 있다.

김 회장은 1998년 안정적인 대학교수직을 뒤로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바이오 기업’을 목표로 오스코텍을 설립한 ‘연구자형 경영자’였다. 강원도 춘천 출신으로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던 그는, 화려한 대외 활동보다는 늘 실험실에서 연구원들과 머리를 맞대던 ‘뼛속까지 연구자’로 기억된다.

그의 이러한 집념은 국내 항암제 사상 최초로 미국 FDA 승인을 받은 비소세포폐암 치료제 ‘렉라자(레이저티닙)’의 원천 기술 개발로 꽃을 피웠다.

특히 최근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로 기술 이전된 알츠하이머 치료제 ‘아델-Y01’의 성과는 김 회장의 결단력 있는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2020년 공동 연구 파트너였던 대형 제약사가 사업성 등을 이유로 손을 떼려 했을 때, 김 회장은 윤태영 대표의 보고를 듣고 망설임 없이 “그럼 우리가 가져오죠!”라며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당시 적자 상태였던 작은 바이오텍이 항체 신약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것은 고인의 연구에 대한 확신과 혜안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렉라자의 성공으로 한국 바이오도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선구자”라며, 고인이 닦아놓은 신약 개발의 길이 후배 벤처들에게 큰 이정표가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럼 우리가 가져오죠!” 그때 그 말의 톤과 억양까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이 조그마한 적자 바이오텍이 대규모의 투자를 하고, 생전 안 해본 항체신약을 공동 개발한다?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지만 뭐에 홀린 듯 일이 진행되었다.

윤태영 오스코텍 대표 SNS, ‘ADEL-Y01 야사’ 中

창업주의 화려한 업적 이면에는 취약한 지배구조라는 뼈아픈 그림자도 있었다. 바이오 벤처 특성상 대규모 연구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김 고문과 특수관계인의 합산 지분율은 약 12% 수준까지 희석됐고, 이는 외부 압력에 노출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회사는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정관에 ‘초다수결의제(80%룰)’를 도입하는 등 방어막을 쳤으나, 자회사 제노스코의 중복 상장 문제를 둘러싸고 2대 주주 및 소액주주 연대와 극한 갈등을 빚었다. 결국 지분 대결에서 밀린 김 고문은 지난해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 연임에 실패하며 평생을 일군 회사의 이사회에서 사실상 축출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SNS에 “기업들의 법을 이용한 다양한 회피는 사법 개혁 등과 함께 단호히 대처하되, 한국 특유의 쏠림현상으로 인한 집단적 린치, 교조적 지배구조 잣대로 인한 문제들은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나쁜 지배구조는 지속적으로 바로 잡아 나가되, 혁신적 기업가 정신은 구조적으로 지지하고 보호해주는, 보다 열린 유연한 자본시장과 자본주의으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스코텍 CI. [오스코텍 제공]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공백에도 오스코텍은 고인이 생전 정립한 전문 경영인 체제와 비전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운영을 이어갈 방침이다. 회사는 윤태영 R&D 대표이사를 필두로 한국 판교와 미국 보스턴의 자회사 제노스코를 잇는 ‘듀얼 허브(Dual-Hub)’ 모델을 본격 가동한다. 한국은 비용 효율적인 임상과 전사적 전략 수립을, 보스턴은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사업 개발(BD)을 전담하여 실행력과 조직 민첩성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오스코텍의 제2도약을 이끌 핵심 동력은 ‘항내성 항암제(ACART)’와 ‘항체-분해약물 접합체(DAC)’다. 암세포의 내성 발생 자체를 차단하는 4세대 항암제인 OCT-598은 현재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며, 연간 950억 달러 규모의 글로벌 내성 항암제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또한, 제노스코의 독자적인 ‘3중 안전장치(Triple-lock)’ 기술이 적용된 차세대 DAC 플랫폼은 기존 ADC의 부작용 한계를 극복하며 신규 파이프라인 확장을 주도할 전망이다.

나아가 오스코텍은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보상 체계를 주주 가치와 직접 연동하는 등 투명 경영에도 박차를 가한다. 렉라자의 상용화 수익을 R&D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재무 구조’를 완성해 창업주가 꿈꿨던 신약 강국의 비전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과학을 의학으로(Translating Science into Medicine)’라는 고인의 평생 철학은 이제 오스코텍의 DNA로 남아, 글로벌 무대를 향한 더 큰 도약의 동력이 되고 있다.

오스코텍은 “현 경영진 및 이사회 체제하에서 사업 운영과 연구개발 등 주요 업무를 계획대로 안정적으로 수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B2 17호실에 마련됐으며, 13일 오후 2시부터 조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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