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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의사와 상담을 하다가 의사 모니터를 흘낏 봤더니, 세상에나 챗GPT에 검색하고 있더라고.”
최근 지인에게 들은 이야기다. 당황스러운 장면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꼭 비난만 할 일도 아니다. 방대한 의학 데이터와 최신 연구 결과가 축적된 AI를 활용하면 환자에게 더 나은 진단이나 치료법을 제시할 수도 있다. AI가 인간의 전문성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AI는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미 삶 깊숙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 충격이 가장 먼저, 가장 거세게 몰아치는 곳이 취업시장이다.
한때 ‘최고 몸값’을 자랑하던 IT 전공자들의 취업 성과는 급격히 둔화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은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기술기업 해고 현황을 집계하는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에 따르면 올해 1월 한 달 동안 전 세계 27개 기술기업에서 2만4000명 넘는 인력이 일자리를 잃었다.
고소득 전문직도 예외가 아니다. 10대 로펌의 신입 변호사 채용은 2022년 296명에서 지난해 227명으로 23.3% 줄었다. 회계사 합격자 가운데 수습기관을 찾지 못해 대기 중인 인원도 수백 명에 달한다. AI가 판례 검색, 계약서 초안 작성, 재무 검증 같은 업무를 빠르게 흡수하면서 초급 인력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일자리 개념을 완전히 뒤엎은 ‘일자리 대전환(JX·Job Transformation)’이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JX의 본질은 직무의 내용과 구조가 재편되는 것이다. 개발자는 코드를 처음부터 작성하기보다 AI가 생성한 코드를 검증·통합하는 역할로 이동한다. 변호사는 자료 조사보다 전략 판단과 협상에 집중하는 식이다. 인간의 일은 더 높은 판단과 책임의 영역으로 밀려 올라간다.
JX의 가장 잔혹한 지점은 ‘경력의 출발점 삭제’다. AI는 자료 조사, 초안 작성, 기초 분석 같은 입문 단계를 먼저 대체한다. 기업은 경력이 있는, 즉시 성과를 낼 수 있는 인력만 선호한다. 그 결과 노동시장 입구에 선 청년층은 경험을 쌓을 기회 자체를 잃게 됐다. 가장 큰 충격이 청년층에 집중되는 이유다.
과거에는 자료 조사, 보고서 초안 작성, 단순 코딩, 업무 보조 등으로 첫 단추를 끼웠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직무 감각을 익히고 조직에 적응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연습 구간’을 AI가 흡수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효율이지만, 청년에게는 사다리 철거다.
일자리 대전환은 개인이 미처 준비할 새도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거대한 수레’처럼 압도적이다.
정부는 올해 공공기관의 청년인턴을 전년보다 3000명 늘린 2만4000명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도약 장려금 지급 등 다양한 지원책도 시행된다.
다만 단순히 일자리 숫자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JX의 본질에 대응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조적 전환을 전제한 노동시장 설계와 산업·직무 변화 속도를 반영한 교육 정책이다. AI 대전환을 외치면서 노동의 대전환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기술 혁신은 기회가 아니라 또 다른 격차의 증폭기가 될 수 있다.
한희라 정책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