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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시와라 유곽의 기녀들 [출처 : 야후재팬 화상] |
하급 기녀, 아사가오의 죽음
츠타야 쥬자부로와 오누이처럼 지내던 아사가오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황급하게 달려가 보니 이미 그녀가 입고 있던 옷은 어느 도둑이 벗겨서 훔쳐 가버리고 시신은 알몸 상태로 남아 있었다. 병에 걸려 몸져누워 있는 아사가오에게 음식과 약을 갖다주고 이야기책을 읽어주었던 게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죽은 아사가오는 에도(현재의 도쿄)의 유곽 요시와라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위치해 찾아오는 손님조차 드문 하급 기방에 속한 기녀였다. 수입이 없어 밥을 굶는 날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생활은 궁핍했고 그 말로는 비참했다.
아사가오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쥬자부로는 손님들이 요시와라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전달받지 못한 결과, 알려진 곳만 찾게 되어 그곳만 성황을 이루면서 기방, 기녀 간에 빈부격차가 심해졌다고 봤다. 그는 “손님들에게 기방과 기녀들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서 누구나 공평하게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겠다”라며 요시와라 기녀를 소개하는 안내서 제작을 구상하게 된다. 쥬자부로는 이곳을 방문한 남성들을 기녀에게 물어다 주는 일을 하면서 부업으로는 기녀들을 상대로 책 대여업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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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가와 우타마로의
미인화 ‘에도 3대 미녀’. [출처 : 필자 제공] |
환락의 땅, 기녀에게 생지옥
요시와라 유곽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1603~1867년)가 성립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617년, 막부로부터 공인을 받아 에도 니혼바시 닌교초에 세워진 유곽이었다. 그런데 1657년에 에도 시가지 70%를 불태운 대형 화재가 발생하여 요시와라 유곽 일대도 모두 불탔다. 막부는 이를 계기로 요시와라를 시가지에서 멀리 떨어진 벽촌 아사쿠사(현 도쿄 다이토구 센조쿠)로 이전시켰다. 총면적 2만 760평 규모로 기방 200여 곳, 기녀 수는 약 2000명에 이르렀다. 부지 주변에는 인공 개천을 파고 대문 한 곳으로만 출입할 수 있게 하여 기녀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감시했다.
새로운 땅으로 이전한 요시와라는 신분이 높은 무사와 부유한 상인들이 앞다투어 찾아와 불야성을 이루면서 일부 대형 기방들은 호황을 누렸다. 요시와라 유곽의 최고위급 기녀 ‘오이란(花魁)’의 하룻밤 화대는 10량(현재 500만~700만원 상당)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돈은 기녀 수중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옷값, 방값, 장신구값 등 갖은 명목으로 뜯겨 기방 주인의 주머니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곳을 찾는 남성들에게 요시와라는 환락의 땅이었겠지만 기녀들에게는 생지옥이었다.
‘한 번에 천 개를 보다’(一目千見)
쥬자부로는 당대의 실력파 화가 기타오 시게마사를 고용하여 그의 첫 출판물인 히토메센본(一目千本)을 간행하기로 결심한다. 이것은 기녀 개개인을 소개한 기녀 홍보물이었다. 이 책 한 권에 요시와라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기녀의 예명, 화대 등 요시와라에 가서 놀고자 하는 사람에게 궁금한 정보가 가득 담겨 있는 요시와라 가이드북이었다. 요시와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였기에 누구보다도 요시와라의 구석구석까지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대박이 나서 요시와라에는 사람이 넘쳐날 정도로 모여들었다. 쥬자부로는 침체한 요시와라가 활기를 되찾자 죽은 아사가오를 떠올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요시와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내가 요시와라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게 가장 크게 은혜를 갚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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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에도시대의 르네상스를 꽃피운 츠타야 쥬자부로. [출처 : 야후재팬 화상] |
에도문화의 발원지가 된 요시와라 유곽
쥬자부로는 기녀 140명을 다채롭고 화려한 색상을 구사한 니시키에(錦)에 수록하여 출간했는데 이것은 대중에게 크게 어필되었다. 니시키에 제작비용은 옷 가게가 부담했다. 옷 가게는 자신이 제작한 옷을 기녀들에게 입혀 모델로 삼은 것이다. 그는 기타가와 우타마로, 도슈자이 샤라쿠, 가쓰시카 호쿠사이 등 당대 기라성 같은 화가들을 거느리며 이 작업을 진두지휘하여 큰 성공을 궈뒀다. 기녀를 모델로 삼아 호화로운 옷차림을 선보인 우타마로의 미인화 ‘간세이 3대 미녀’는 시중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는 프로듀서가 되고 요시와라 기녀들은 패션모델이 되어 에도 패션을 이끌어갔다. 기녀가 입은 옷과 장신구, 헤어스타일, 립스틱 화장술을 에도의 여인들이 모방했고, 기녀들은 최첨단 패션 리더가 되었다. 이 밖에 극작가 고이카와 하루마치, 오타 난포를 저자로 기용해 다양한 대중 서적을 출간하면서 출판계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가 관여하여 출간한 책과 그림은 470여 점에 이른다. 미술사 연구자인 가노 히로유키는 그를 가리켜 “에도를 대표하는 출판업자이자 에도 문화계를 석권한 인물이었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요시와라 유곽은 에도 문화의 발원지였고 그곳의 소년 츠타야 쥬자부로는 에도시대 르네상스를 꽃피운 주인공이 되었다.
유곽은 일반 사회에서 일탈한 향락의 소굴이다. 유곽 출신 쥬자부로는 향락의 에너지를 대중문화로 승화시킨 장본인이다. 과거 ‘딴따라’로 손가락질받던 대중문화예술인들이 우리 사회의 우상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 세상은 어느 정도의 일탈을 허용해야 작동되는 곳인가 보다. 이것이 진흙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연꽃의 존재 이유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