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지출 ‘27조+α’ 감축…관행적 사업에 ‘메스’

재량 15%·의무 10% 동시감축 제시
복지 확대 기조속 39조원 조정 부담
의무지출 한시·중복 사업 정리 대상
AX본격화·지방주도 성장 집중 투자
지출 구조조정 위해선 법령개정 필요



정부가 2027년도 예산안 편성에서 모든 재정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역대 최대 수준의 지출구조조정에 나선다. 특히 재량지출 15%, 의무지출 10% 감축이라는 구체적인 목표치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를 감안할 때 내년 지출구조조정 규모는 역대 최대였던 올해(27조원) 수준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정부가 올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에 이어 내년에도 복지·민생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공식화한 만큼, 재정당국이 이 같은 대규모 지출 감축을 실제로 달성할 수 있을지를 둘러싼 실효성 논란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정부가 30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확정한 ‘2027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지침(안)’에 따르면 재정당국은 모든 재정사업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 재량지출 15%, 의무지출 10%를 감축할 계획이다. 예산안 편성지침은 내년도 재정운용 기조와 투자 중점, 재정혁신 방향 등을 담은 기준으로, 각 부처의 예산 편성 과정에서 준수해야 하는 가이드라인이다.

조용범 기획예산처 예산실장은 “과거에는 재량지출 위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지만, 이번에는 의무지출과 경상비, 한시·일몰 사업 등 모든 예산 영역을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하겠다”며 “전체 사업 수의 약 10%를 폐지하는 수준의 고강도 개편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의무지출은 공적연금·건강보험, 지방교부세·교부금 등 법률에 따라 지급이 정해진 ‘경직성 지출’이다. 이미 전체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2027년 기준으로는 54.3%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저출생·고령화로 복지지출이 빠르게 늘고 국채이자 부담까지 커지면서 해당 비중은 2028년 55.0%, 2029년 55.8%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기획처는 아동수당 확대, 돌봄체계 강화,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 복지·민생 사업을 지속 확대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다만 편성지침 단계인 만큼 최종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기획처의 ‘2027년 예산안 편성지침’에 따르면 올해 의무지출은 388조원이다. 정부 방침대로 10%로 단순 계산할 때 39조원의 조정이 필요하다.

정부는 이를 위해 관행적으로 연장돼 온 한시 사업을 원칙적으로 종료할 방침이다. 조직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행적으로 이어져 온 사업들이 구조조정의 우선 대상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용범 실장은 “의무지출은 대부분 법령에 근거해 지출되기 때문에 줄이기 쉽지 않은 구조”라면서도 “의무지출이 모두 취약계층 복지와 직결된 것은 아니고, 복지 성격을 띠더라도 조정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의무지출 전체를 일괄적으로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복지 등 필수 지출은 제외하고, 조정 가능한 영역을 중심으로 모수를 설정해 감축을 추진할 것”이라며 복지 축소 우려에 선을 그었다. 실제 지난해에도 의무지출 내에서 약 2조원 수준의 조정이 이뤄진 바 있다.

정부는 이번 구조조정의 핵심이 단순한 긴축이 아닌 재정의 ‘질적 재편’에 있다고 강조했다. 지출 효율화를 통해 확보한 재원을 AI·첨단전략산업, 저출생 대응, 지역균형 발전 등 구조개혁 분야에 집중 투자하겠다는 계획이다.

내년 예산안은 인공지능 전환(AX)과 녹색전환(GX)을 축으로 한 산업 대전환과 ‘5극3특’ 전략을 중심으로 한 지방주도 성장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기술패권 경쟁에 대응해 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 확대 등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AI 제조 실증, 공공 AX, 데이터센터 투자와 반도체 특별회계·국민성장펀드 확대를 통해 첨단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2035 NDC 이행을 위한 분산형 전력망·RE100 거점 등 GX 투자도 본격화한다.

남부권 반도체 벨트와 AI 실증도시, 통합지방정부 4년간 20조원 지원으로 지역 산업·교육·의료 인프라를 확충한다. 아울러 스타트업·소상공인 AX 지원, 청년 맞춤형 일자리·주거 대책, 아동수당 확대와 통합돌봄, 공공임대 공급 등을 통해 양극화 완화와 저출생 대응을 강화하고 국민 안전과 경제안보 기반 구축에도 재정을 집중할 방침이다.

이런 접근에도 재정 운용의 난이도는 여전히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량지출과 비효율 사업 역시 수년간 구조조정을 거치며 ‘마른수건 짜기’ 수준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대규모 재원 마련을 위해서는 연금·복지급여 등 제도 전반에 대한 손질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오지만, 이 경우 법령 개정과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수반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연금·의료 등 복지 수요가 구조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동시에 의무지출 감축 목표까지 제시되면서 정책 간 충돌 가능성도 예상된다.

각 부처는 이번 지침을 바탕으로 5월 말까지 예산요구안을 기획처에 제출해야 한다. 재정당국은 각 부처와 협의·보완을 통해 정부안을 마련해 9월 2일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김용훈·양영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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