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된 국가산업…반도체 팹 멈추면 30조 손실, 글로벌 지위도 흔들 [삼성전자 파업 리스크 가시화]

삼성 노조, 반도체 공장 볼모로 회사와 대치
사업장 점거…라인 멈추면 복구까지 수개월
소부장 협력사·국가경제 타격…손실 불가피
HBM 경쟁 속 엔비디아·AMD 신뢰도 하락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반도체 생산시설을 ‘볼모’로 회사 측과 성과급 제도화를 둘러싸고 대치하는 가운데 실제 파업을 감행할 경우 단순 생산차질을 넘어 글로벌 고객사들과의 공급 계약까지 틀어져 대외 신인도에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줄 것이란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반도체 설비 특성상 한 번 가동을 중단하면 복구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만큼 삼성전자로서는 약 30조원 수준의 경영상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38%를 반도체 산업(2026년 3월 기준)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이 멈추면 소부장 협력사를 포함한 반도체 생태계 전반과 국가 경제도 막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삼성 “사업장 불법 점거 막아달라”…막대한 피해 우려=다음달 21일 총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는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용노동부로터 과반 노조 지위를 인정받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조합원 수가 전체 근로자의 과반을 넘기면서 삼성전자 창사 이래 첫 단일 과반 노조가 공식 탄생한 것이다. 근로자대표 지위와 권한도 갖게 돼 단체교섭권과 근로조건 결정권 등을 단독으로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성과급 지급 기준과 명문화를 놓고 노사가 뚜렷한 접점을 찾지 못하는 가운데 노조는 이달 23일 평택 사업장에서 첫 집회를 앞두고 있다. 다음달 21일부터 6월 7일까지 사업장을 점거하는 총 파업도 예고한 상태다.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첫 파업이자 삼성전자로선 지난 2024년 7월 이후 2년 만에 파업을 겪게 된다.

삼성전자는 파업을 앞두고 전날(16일) 수원지방법원에 노조의 파업을 금지해달라며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현행 노조법은 ▷안전보호시설 정상 운영 방해(제42조 2항) ▷장비손상 및 원료·제품 변질 방지작업 중단(제38조 2항) ▷생산라인 등 사업장 주요시설 점거(제42조 1항) ▷협박을 통한 쟁의참여 강요(제38조 1항) 등을 금지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는 노조가 실제 파업을 감행할 경우 화학물질 유출·화재 등 대형 안전사고와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도체 사업 특성상 생산시설은 유독성·가연성 가스와 강산·강염기 화학물질을 대량 취급한다. 배기·방제시설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 사업장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사회 전체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

▶공장 멈추면 웨이퍼 전량 폐기, 설비복구도 하세월=또한, 반도체의 핵심 재료인 웨이퍼의 변질·부패 방지 작업이 중단되면 장당 수천만원인 웨이퍼를 전량 폐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웨이퍼 시장은 2030년까지 20% 이상 공급 부족이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폐기된 물량만큼 단기간 내에 웨이퍼를 다시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최대 1대당 5000억원에 이르는 반도체 설비 역시 전원을 한 번 껐다가 재가동하려면 백업 절차가 복잡해 수개월의 기간이 걸려 막대한 피해가 불가피하다.

지난 2007년 기흥 사업장은 4시간 정전으로 약 400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바 있다. 2018년 평택 사업장 역시 정전 시간이 30분이 채 되지 않았지만 500억원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 지부 위원장은 지난달 5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 사업장 점거를 확장할 계획”이라며 “18일간 파업하면 백업 및 복구까지 한 달 이상 보고 있다. 손실로는 30조원 가까이 될 것”이라는 글을 올린 바 있다.

업계는 반도체 세정 설비의 내부 공정용 마스크가 강산·강염기에 노출돼 손상되면 신규 제작에만 한 달 이상 걸릴 것으로 추산한다. 약액·가스 토출구가 굳으면 내부 배관을 전면 교체해야 해 사실상 설비를 새로 설치하는 수준의 대규모 작업을 수반하는 셈이다.

삼성전자에 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평판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HBM4 우선공급계약을 체결한 AMD는 공급망 회복탄력성을 ESG 평가항목에 포함하고 있다.

엔비디아도 분기·반기별로 공급사를 평가해 결과에 따라 물량 배분을 결정한다. 삼성전자 반도체의 생산 차질이 현실화하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점유하고 있는 현 지위도 추락이 불가피하다. 김현일·이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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