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문법’과 ‘학·경력의 문법’?…서울 구청장 경선이 보여준 엄혹한 현실

오랜 기간 지역 다진 시·구의원 출신 강세…화려한 학·경력 앞세운 정치 신인들 고배


서울광장


[헤럴드경제=박종일 선임기자]6·3 지방선거가 33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서울 구청장 선거전도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울시장 후보와 25개 구청장 후보군을 속속 확정하며 막판 대세 잡기에 나서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는 민주당 정원오 후보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경선을 통과하면서 치열한 본선 구도가 형성됐다.

이번 서울 구청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이른바 ‘정치의 문법’이다. 화려한 학력과 행정 경력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벽, 즉 오랜 기간 지역을 다지고 당원과 주민을 만나온 정치인들의 경쟁력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평가다.

지역 기반 타탄한 민주당 시·구의원 출신 구청장 후보 경쟁력 과시

민주당의 경우 상당수 자치구에서 경선을 통해 후보를 선출했다. 이 과정에서 구의원과 시의원을 거쳐 지역 기반을 쌓아온 인물들이 강세를 보였다.

김미경 은평구청장 후보, 박준희 관악구청장 후보, 이승로 성북구청장 후보는 구의원과 시의원을 거쳐 구청장에 오른 대표적인 풀뿌리 정치인들이다. 이번 선거에서 3선 고지를 바라보고 있다.

장인홍 구로구청장 후보는 보궐선거 당선 이후 재선에 도전하고, 유동균 마포구청장 후보도 민선 7기에 이어 다시 구청장직에 도전한다.

우형찬 양천구청장 후보, 문종철 광진구청장 후보, 김동욱 도봉구청장 후보, 최기찬 금천구청장 후보, 박운기 서대문구청장 후보, 서준오 노원구청장 후보, 이동현 중구청장 후보 역시 시.구의원 경험을 바탕으로 구청장 후보 자리에 오른 지역 정치인 출신들이다.

특히 우형찬 후보는 서울시의원 3선과 시의회 부의장을 지낸 인물로 지역 기반이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종철 후보는 광진구의원과 재선 서울시의원을 거친 뒤 긴 공백을 딛고 경선에서 존재감을 입증했다. 김동욱 후보도 3선 서울시의원과 민주당 원내대표 경력을 바탕으로 재도전에 성공했다.

이동현 중구청장 후보는 1991년생으로 이번 서울 구청장 후보 중 최연소 그룹에 속한다. 성동구 출신 서울시의원을 지낸 뒤 박성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활동하며 정치 경험을 쌓았고, 경선을 통해 공천권을 따냈다.

국민의힘 김현기 강남구청장 후보는 4선 서울시의원 출신으로 시의회 의장을 지낸 풀뿌리 지역 정치인 출신이다. 김 후보는 유력 정치인 보좌관을 14년 지낸 뒤 서울시의원으로 강남에서 4선을 하며 지역 기반을 다졌다. 김 후보는 특히 어려운 강남구청장 후보를 경선을 통해 처음 서울시의원 출신이 따낸 이변을 이뤘다.

또 국민의 힘 김경대 용산구청장 후보는 삼성그룹 공채 출신으로 회사에 근무하다, 국회의원 선임비서관을 지내 후 부친이 재선 용산구의원을 지낸 지역에서 3선 구의원을 역임했다. 또 2018년 용산구청장후보로 나선 경험 등 지역 기반이 탄탄한 지역 정치인으로 경쟁력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이력보다 지역과 당 조직 안에서 쌓아온 시간이다. 주민 접촉, 지역위원장과 관계, 당원 관리, 생활 민원 대응 등 선거 현장에서 통하는 ‘정치의 문법’을 익힌 결과라는 분석이다.

행정가 출신 가운데서도 정치인으로 변신해 경쟁력을 입증한 사례가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한 류경기 중랑구청장 후보는 서울시 부시장을 역임한 후 구청장에 도전, 이번 3선 구청장 고지를 앞두고 있다. 또 행정고시 출신으로 서울시 1급으로 마친 서강석 송파구청장 후보도 치열한 경선을 통과해 재선 도전에 나섰다.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서울시와 청와대 등 화려한 경력을 가진 전성수 서초구청장 후보 역시 재선을 향해 지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성동구청장 후보가 된 유보화 후보도 주목된다. 서울시 7급 공무원 출신으로 자치행정과장, 정책기획관 등을 거쳐 3급으로 승진했고, 성동구 부구청장으로 정원오 구청장과 호흡을 맞췄다. 이번 경선에서 다수 경쟁자를 제치며 행정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저력을 보였다는 평가다.

갑자기 출마 지역 기반 약한 경력 좋은 예비 후보들 경선 고배 대조

반면 학·경력은 뛰어나지만 뒤늦게 경선에 뛰어든 인물들은 고배를 마신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역 기반 없이 이력만으로 경선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냉혹한 현실이 드러난 셈이다.

서울 한 자치구 간부는 “경선은 결국 오랫동안 지역을 관리해 온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며 “경력만 믿고 갑자기 뛰어든 사람들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결국 이번 서울 구청장 후보 경선은 한 가지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정치의 세계에서는 ‘공부의 문법’이나 ‘경력의 문법’보다, 지역을 오래 다지고 사람을 얻어온 ‘정치의 문법’이 훨씬 강하다는 점이다.

지방자치 30년 역사에서 이런 추세는 거스릴 수 없을 듯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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