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상상력의 촉망받는 화가
‘여행’ 다녀온 뒤 갑작스런 균열
신이 시켰다?…살인 행하고 도주
병원 갇힌 채 판타지 세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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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일부 확대), 1856년경 [Henry Hering,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후암동 미술관은 무한한 디지털 공간에 걸맞은 초장편 문화예술 스토리텔링 연재물의 ‘원조 맛집’입니다.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매 주말 새로운 예술 이야기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기사는 역사적 사실 기반에 일부 상상력을 더한 스토리텔링으로 쓰였습니다.
※<잠자는 티타니아>의 경우 전체 그림을 담지 못했습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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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요정 나무꾼의 결정적 일격(일부 확대), 1855년경, 캔버스에 유채, 54×39.4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tate-images.co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요정은 작고, 귀엽고, 신비로운 존재로 통한다.
판타지 속 요정은 대개 한두 뼘의 올망졸망한 크기로 등장한다. 때로는 야생 꽃향기를 풍긴다. 뾰족구두를 신은 발끝에선 종종 금가루도 묻어나온다. 달밤과 노래, 세계수를 섬기며, 뜨거운 햇빛과 철, 잿가루는 몸을 떨 만큼 싫어한다. 요정은 생김새도 흥미롭다. 눈은 맑고 투명하다. 귀는 크거나 뾰족하다. 등 뒤로는 나비 또는 나방의 날개도 볼 수 있다. 이들은 성격 또한 제각각이다. 대체로 장난기가 많다. 호기심도 넘친다. 이러니 종종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친다. 다만 여리고 정이 많기에, 어떻게 뒷수습을 하려고는 한다. 상당수는 자연의 크고 작은 비밀을 알고 있으며, 때로는 뜻밖의 아름다운 마법도 부린다.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부터 아서왕 전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글과 J. R. R. 톨킨의 문장. 인류는 긴 세월 요정이란 개념에 애정을 보였다. 심지어 20세기에 이른 후에도 요정의 진위를 놓고 진지한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묘한 존재지만, 할 수만 있다면 먼저 손 내밀고 싶은 종족. 요정은 그렇게 꿈결 같은, 또 환상적인 분위기를 품은 생명체로 거듭 깊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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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요정 나무꾼의 결정적 일격, 1855년경, 캔버스에 유채, 54×39.4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tate-images.co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지금 이곳은 숲속의 비밀 공간.
기껏해야 밤송이 두어 개보다 조금 더 큰 요정들이 모였다. 갈색 작업복을 입은 남자 요정이 도낏자루를 쥐었다. 그저 깜찍하다. 그런 그가 쪼개려고 하는 건 더 앙증맞다. 나무도, 바위도 아닌 개암나무 열매다. 요정 여왕의 새 마차에 어울리는 바퀴를 손수 선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나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웬만큼의 근력이 없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작업일까. 주변의 모든 요정이 이번 ‘쪼개기 쇼’에 집중하는 이유일 듯하다. 한편에선 (고작해야 인간의 엄지손톱만 한)악기를 앞세운 축하 공연도 펼쳐지고 있다. 물감은 두껍다. 꽃은 방석처럼 피었다. 풀은 양단처럼 묵직하다. 작지만 크고, 좁지만 진한 세상이다. 마냥 아기자기하게도 보이나, 이들에게는 진지한 삶의 현장이다. 리처드 대드의 대표작, <요정 나무꾼의 결정적 일격>이다.
이것은 웬만큼 요정 세계에 홀려있지 않고선 그릴 수 없는 그림이다.
그런 만큼 대드는 동화적(童話的) 분위기를 사랑하는, 여린 감성의 몽상가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코 그렇게 볼 수는 없었다. 왜? 대드. 그는 살인자였기에. 그러니까 이 그림은, 살인자가 병원에 갇힌 채 그린 작품이다. 누구를, 어떻게, 그리고… 대체 무슨 이유로. 갑자기 온갖 물음표가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와 함께 이번 글의 장르도 바뀐다. 은은한 판타지물에서, 현실 속 잔혹한 미스터리물로. 요정은 유인책이었다.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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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젊은 여성의 초상, 1841, 패널에 유채, 27.9x21cm [www.sothebys.com,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어릴 적 대드는 상상력이 좋은 꼬마였다.
그가 좋아한 건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한여름 밤의 꿈》이었다. 이보다 더 사랑한 건 그런 환상 세계의 풍경을 그려보는 일이었다. 재능은 있었다. 선은 깔끔했고, 표현은 기발했다. 남다른 기질도 보였다. 약간 산만했지만, 일단 꽂히기만 하면 몰입력이 엄청났다. 관심을 쏟는 순간 듣지 않고, 먹지 않고, 자지도 않는 모습은 무서울 정도였다. 먼 훗날, 이 성향이 그에게 가장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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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햄릿과 그의 어머니, 1846, 캔버스에 유채, 102.2×87.6cm, 예일 영국 미술 센터 [Google Cultural Institute,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대드는 1817년 영국 켄트주 채텀(Chatham)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약사였다. 지역 박물관을 세울 만큼 고고학과 지질학에도 관심이 깊었다. 대드는 그에게 신화와 역사 이야기를 들으며 공상의 대지로 발 디뎠을 것이다. 어머니는 대드가 일곱 살 때 죽었다. 곧 새어머니를 맞이했지만, 그녀도 얼마 안 가 눈을 감았다. 대드는 열세 살 무렵부터 진지하게 붓을 들었다. 이후 열일곱에 런던에 왔다. 스무 살부터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다졌다.
대드는 성공하는 화가의 길을 걸어가는 듯보였다.
대드는 무리의 중심이었다. 선한 어투와 상냥한 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도 있었다. 그는 윌리엄 파월 프리스, 헨리 오닐 등 동료와 함께 예술 모임 ‘더 클릭’(The Clique)을 꾸리기도 했다. 이는 대중의 유연한 시선을 아카데미 내 뻣뻣한 기준보다 우선하는 클럽이었다. 그런 만큼 부드러운 문학과 풍속을 딱딱한 역사보다 더 눈여겨봤다. 셰익스피어의 극과 함께 그 시절 시와 문장을 화폭에 자연스럽게 녹이려는 실험도 종종 했다. 대드의 꿈과 환상은 이곳에서 만개할 수밖에 없었다. 영국은 때마침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Era)를 맞이하고 있었다. 합리주의가 팔을 뻗고, 과학자와 발명가가 차츰 고개를 들던 시기였다. 정치, 경제, 사회 등에서 대대적인 변혁이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멀리 갈수록 멀리 돌아본다. 이들은 말이 되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한편, 말도 안 되는 환상에 기대거나 도피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성과 논리가 힘을 받을수록 미신과 신비주의의 존재감도 커졌다. 그만큼 신화와 전설, 시와 극본 등 문학을 찾는 분위기 또한 짙어졌다. 아이러니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대드 입장에선 나쁘지 않았다. 세상이 본인 취향과 맞물려 돌아가는 데 은근한 기쁨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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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잠자는 티타니아(일부 확대·여인들이 밤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춤추고 있다), 1840, 캔버스에 유채, 64.8×77.5cm, 루브르 박물관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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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잠자는 티타니아(일부 확대·티타니아가 얼굴을 팔에 댄 채 잠들고 있다), 1840, 캔버스에 유채, 64.8×77.5cm, 루브르 박물관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요정 여왕 티타니아가 하녀들의 손길 속에서 스르르 잠에 빠진다. 아기 시종들은 무지개가 돼 침소 입구를 꾸민다. 이곳에서 들을 수 있는 건 버섯이 움트는 소리와 유성우가 흘리는 메아리, 풀꽃 악기가 들려주는 자장가. 왼편에선 여인 무리가 음에 맞춰 춤을 춘다. 서늘한 새벽 공기는 유연하게 일렁인다. 이런 가운데, 동굴 안에서는 요정 왕 오베론이 숨을 죽이고 있다. …이제야 의식을 잃었는가? 오베론은 지금 이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에게 살금살금 다가간다. 곧 마법 꽃의 즙을 얼굴에 흘릴 것이다. 티타니아는 영문도 모른 채 마력에 이끌리고, 그 결과 이야기는 보다 극적으로 흘러가게 된다. 대드는 1841년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잠자는 티타니아>를 출품했다. 그림 속 요정들의 보석 장신구는 영롱하다. 위로는 박쥐 무리의 거친 질감, 녹음이 깔린 밑으로는 산골짜기 특유의 이끼향을 체감할 수 있다. 대드의 상상은 이처럼 우아하고 경쾌했다. 그저 두 눈으로, 나아가 오감을 열고 봐도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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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잠자는 티타니아(일부 확대), 1840, 캔버스에 유채, 64.8×77.5cm, 루브르 박물관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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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잠자는 티타니아(일부 확대·오베론이 어둠 속에서 숨어있다), 1840, 캔버스에 유채, 64.8×77.5cm, 루브르 박물관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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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잠자는 티타니아(일부 확대), 1840, 캔버스에 유채, 64.8×77.5cm, 루브르 박물관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앞으로 더 위대한 성취를 이룰 것을 예고하는 그림이다.
이미 수백 점의 화폭이 요정의 원무(圓舞)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남다르다.
그런 만큼 이러한 찬사가 이어질 수밖에. 이때 대드의 나이는 아직 스물넷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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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소아시아 밀라사의 카라반사라이, 1845, 패널에 유채, 21.3×30.5cm, 예일 영국 미술 센터 [Google Cultural Institut,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웨일스의 유력 정치인 토머스 필립스가 물었다. 대드는 답했다. “좋습니다.” 둘은 짐을 챙겼다. 낯선 길에 올랐다. 유럽 땅을 거쳐 튀르키예, 시리아, 마지막쯤에는 이집트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세계 각지의 풍경을 보고 문화를 체험하는 일. 일종의 그랜드 투어(Grand Tour)였다. 대드에게는 특별한 역할이 있었다. 기록이었다. 필립스의 시선과 걸음을 화폭 위 생생하게 옮겨주는 작업이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드 입장에서도 이건 기회였다. 돈도 돈이지만, 꿈과 책에서만 보던 낯선 세계를 비로소 마주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임무에 몰입했다. 무섭게 천착했다. 일을 맡긴 필립스조차도 옆을 피할 만큼 빠져들었다. 그리고, 아마도, 이 때문에 앞서 예고한 가장 치명적인 독도 고개를 들고 말았다.
대드는 매 순간 스케치북을 쥐었다.
겉면은 땀과 빗방울로 처참하리만큼 눅눅해졌다. 그는 뙤약볕 아래서 그림을 그렸다. 필립스를 그리고, 산과 강을 그리고, 동물과 유적을 함께 그렸다. 물 한 모금과 그늘에서 쉼을 권유받는 순간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의 답은 늘 “아직”, “잠시”, “조금만 더”와 같이 짧고 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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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이집트 탈출, 1849~1850, 캔버스에 유채, 101×126.4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Tate Images,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 |
이같은 몰입은 천성, 아울러 용솟음치는 호기심과 책임감 탓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대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해졌다. 누구야? 어디야? 왜 그래? 일단 이런 식의 혼잣말이 많아졌다. 알아볼 수 없는 글을 끄적이는 시간이 길어졌다. 신과 험버그 사탕, 단테와 설탕 쥐 인형과 같은 단어를 나열하는 식으로, 맥락을 짚을 수 없었다고 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무언가를 짓누르고, 깔아뭉개고, 부러뜨리는 순간도 잦아졌다. 별다른 이유는 없어보였다. 이 모든 건 그저 일사병으로 인한 일시적 혼미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 여행도 막바지. 대드는 여전히 넋을 놓고 있었다.
그는 이집트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카이로의 모래바람을 씹어 먹으려는 듯 입을 쉼없이 아작거렸다. 그는 기나긴 나일강을 건너는 내내 고개를 빳빳이 들었다. 누런 하늘만 한없이 올려다봤다. 신, 종교, 구원…. 입가 주변으로 이런 식의 말만 소금가루처럼 흩뿌렸다. 그러다, 대드는 머릿속 밧줄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집트 신화의 신 오시리스가 자신에게 계시를 내렸다고 믿었다. 그의 뜻을 따라 악마를 처단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모든 인간은 일순간 악마가 될 수 있다. 그 탈을 쓰는 순간 구원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죽음의 선사뿐이라고 믿고, 확신하고, 받들고 말았다. 이제 선한 어투와 상냥한 태도의 대드는 없었다. 그는 이 상태로 견학을 마쳤다. 곧 영국 런던으로 돌아왔다. 1843년 5월의 어느 날이었다. 나이는 스물여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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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자비, 사울의 목숨을 살려주는 다윗, 1854, 캔버스에 유채, 61×50.8cm, 게티 센터 [Google Art Project,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3개월 뒤, 대드는 아버지를 죽였다.
대드의 아버지는 아들을 본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기묘한’ 여행을 마친 후 눈빛과 걸음걸이, 심지어 숨 쉬는 소리까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들은 밀물과 썰물 같았다. 달걀과 맥주 말고는 무엇도 먹지 않았다. 곧 교황이 자신을 잡으러 온다며 방을 걸어 잠그기도 했다. “연보라색 비단 드레스를 입은 늙은 영국 여성”의 모습을 한 악마가 따라온다며 이불에 숨어 떨기도 했다. 그러다 또 “필립스 씨에게 완성본을 전달해야 한다”며 멀쩡하게 그림을 그렸다. 이제는 이상하지도 않았다. 무서웠다. 아버지는 그의 친구인 알렉산더 서덜랜드 박사에게 연락했다. 그는 정신과 의사(당시에는 그저 ‘미친 의사’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였다. “당장 입원시키세요.” 박사의 결론은 간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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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젊은 남자의 초상, 1853, 캔버스에 유채, 60.6x50cm, 테이트 갤러리, 테이트 브리튼, [tate.org.uk,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부자(父子)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대드가 먼저 “마음의 짐을 덜고 싶다”며 동반 여행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우스이스트잉글랜드에 있는 서리(Surrey)주 코밤으로 몸을 옮겼다. 밀 창고와 방앗간, 유서 깊은 벽돌집이 있는 이곳에서 숨을 돌릴 마음이었다. 둘은 그나마 공기가 선선한 날, 산책 겸 같이 공원을 찾았다. 길을 걸었다. 차츰 고요해졌다. 그 순간, 대드는 흉기를 꺼내 아버지를 죽였다. 사실 대드는 한 번도 밀물과 썰물 따위 상태에 놓인 적이 없었다. 그는 늘 밀물이었다. 머릿속 소용돌이는 항상 솟아오르고, 파도는 언제나 송곳니를 내밀고 있었다. “거짓 핑계로 아버지를 공원에 불렀습니다.” 훗날 그의 증언이었다. “아버지는 변장한 악마였습니다.” 덧붙이는 주장이었다. 그러니까, 대드는 오래전부터 이런 짓을 행할 계획이었을 것이다. 본인이 오시리스의 사자라고 믿고서.
대드는 프랑스로 도망쳤다. 배를 타고, 그다음 마차에 올랐다.
그는 마차의 다른 승객도 공격했다. 이 또한 “밤하늘 별들 틈에서 전조를 봤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경찰이 그를 붙잡았다. 그의 두 눈을 봤다. 초점이 맞지 않았다. 아파보였다. 먼저 간 곳은 파리에서 80㎞가량 떨어진 클레르몽 병원이었다. 이어 1년가량이 흐른 후 영국으로 올 수 있었다. 재판은 하나마나였다. 모든 게 명확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명확한 건 정신의 불안정이었다. 대드는 런던의 베들레헴 병원으로 무기한 수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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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모순(오베론과 티타니아), 1854~1858, 개인소장 [the-athenaeum.org,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속 세계. <잠자는 티타니아> 속 풍경과는 또 다른 장면을 담은 작품이다.
요정 왕 오베론, 그리고 요정 여왕 티타니아가 서로를 노려본다. 당장 한 소년의 장래를 놓고 팽팽히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이다. 왕과 여왕, 요정과 시종, 마구 날뛰는 무리. 그리고, 어우러진 나팔꽃과 독버섯, 솔방울. 이 와중에 분노한 티타니아는 본인도 모르게 작은 요정을 밟고 있다. 화폭을 꽉 채운 디테일은 경이로운 수준이다. 공기는 여전히 신비롭고, 분위기는 변함없이 생생하다. 어디를 대고 자르든 그 자체로 독립 작품이 될 수 있을 만큼, 강박적인 세심함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대드가 병원에서 4년쯤을 매달려 그린 <모순(오베론과 티타니아)>이다.
대드는 치료 일환으로 계속 이젤 앞에 설 수 있었다. 그는 앞으로 평생 옛 기억과 ‘미친’ 상상력에만 의존해 화폭을 꾸며야 했다. 이 때문일까. 그림은 더 기묘해지고, 빽빽해졌다. 그의 광기, 그의 몰입, 이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은 <모순>을 작업한 직후 정점에 올랐다. 때로는 붓 아닌 돋보기를 들고, 실 위로 실을 올리듯 물감을 강박적으로 쌓아 올렸다. 그렇게 그린 게 문제적 걸작이었다. 앞서 글의 첫머리를 연 <요정 나무꾼의 결정적 일격>이었다. ‘쪼개기 쇼’의 요정 무리 말고도, 그저 하찮게 피어난 풀과 꽃 한 줄기마저 제각각 사연을 품고 있는 듯한 그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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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 방랑하는 음악가들, 1878, 캔버스에 유채, 61x51cm, 테이트 브리튼 [Google Arts & Culture,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대드는 베들레헴 병원에서 20여년을 살았다. 이어 버크셔주에 새롭게 세워진 브로드무어 병원에서 또 20여년을 생활했다.
대드는 그림만은 계속 그릴 수 있었다. 다만 초기 몇 년간은 타인에게 뜬금없는 공격성을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찾아와 진심 어린 사과의 말도 건넸다. “내가 아닌 오시리스의 아들이 한 짓이었다”는 식의 말과 함께였다. 1877년, 잡지 《월드(World)》가 대드를 다뤘다. 불안정한 몸과 정신, 그런 상황에서 죽기 살기로 끌어올리는 요정의 감성을 얘기했다. 재능있는 청년에서 살인자로. 무섭고도 혐오스러운 인간으로 보이지만, 붓끝으로 빚어내는 장면만은 반짝반짝 빛나는. 대드는 지독한 현실과 혼미한 환상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평가를 받았다. 확실한 건 이 덕에 더 유명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그의 세계가 병원 담장 밖을 다시 넘어설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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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처드 대드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1856년경 [Henry Hering, Public Domain, commons.wikimedia.org] |
대드는 혼잣말을 하다 죽었다. 때는 1886년 1월이었다. 눈을 감은 곳은 브로드무어 병원이었다. 향년 예순아홉. 사인은 폐질환이었다.
우리는 이 예술가를 향해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문장을 거듭 입안으로 삼키게만 된다. 차라리 말하기에 앞서 듣고 싶다. 딱 한 마디만 전할 수 있다면, 그는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야 말 것인가. 그것은 믿음일까, 후회일까.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는 광기가 서려있는 계시일까. 아버지는 죽고, 아들도 죽고, 강박과 집착 또한 죽었다. 남아 있는 건 오직 그림. 그의 그림은 들기에 무겁다.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Tromans, Nicholas., Richard Dadd : the Artist and the Asylum, London : The Tate Gallery
Allderidge, Patricia., Richard Dadd, New York and London : St. Martin‘s Press/Academy Editions
Oxford Dictionary of National Biography, Richard Dadd, Oxford University Press
표준국어대사전
윌리엄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민음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