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 높아질수록 출산율 떨어진다?…선진국 인구 줄어든 ‘인구학적 비밀’[후암동 논문 연구소]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장윤우 기자]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그런데 이 숫자가 단순히 경제적 부담이나 주거 문제만의 결과가 아닐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출산율이 낮은 나라일수록 성평등 의식이 높고, 성평등 의식이 높은 여성일수록 아이를 적게 낳는다는 것이다. 뒤집어 읽으면, 성평등 의식이 낮은 사회일수록 출산율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공개된 미국 국립과학원 저널 국제학술지 PNAS 넥서스(PNAS Nexus) 제5권 제5호에 따르면, 링난대·빈 대학·오슬로대 공동 연구팀이 1995년부터 2022년까지 78개국 성인 약 37만 명의 응답을 분석한 결과 성평등 의식이 낮은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자녀를 더 많이, 더 일찍 낳았다.

각 국가별로 성 역할 관념이 얼마나 변했는지 시각화한 지도로, 색이 어두울수록 지난 27년간 성평등 인식이 더 크게 널리 퍼진 국가를 의미한다. [미국 국립과학원 저널 국제학술지 PNAS 넥서스(PNAS Nexus) 제5권 제5호]

지난 27년간 조사 대상 국가 대부분에서 성평등 지지율이 올랐지만 세계 전체의 성평등 지수 평균값은 100점 만점에 52.7점에서 55.2점으로 2.5점 오르는 데 그쳤다. 성평등 의식이 낮은 나라들의 인구가 더 빠르게 늘면서 세계 평균을 눌렀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 구조를 ‘가치관의 대물림(인구통계학적 가치관 재생산)’이라고 표현했다. 사회 가치관이 변하는 속도를 조절하는 진짜 열쇠는 어떤 이념이 아니라 ‘출산율’이라는 주장이다.

보수적일수록 1.5년 일찍, 더 많이 낳는다
연구팀은 여성의 취업할 권리, 남녀의 대학 교육 기회, 여성 정치 지도자에 대한 인식 등 세 가지 항목을 바탕으로 ‘성평등 지수’를 매겼다. 조사 대상은 전 세계 인구의 86%를 차지하는 78개국이었다.

개인 수준에서 분석했을 때 결과는 명확했다. 교육 수준, 소득, 사는 지역, 종교 유무 같은 조건들을 똑같이 맞춰놓고 비교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성평등 의식이 낮은 여성들은 평균적으로 더 많은 아이를 가졌다. 국가 간 평균치로 비교하면 의식이 보수적인 집단의 자녀 수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최대 0.62명까지 더 많았다.

성 역할 관념이 비교적 보수적인 여성(주황색 선)과 성평등주의 여성(파란색 선)의 연령대별 출산율 곡선이다. 보수적인 관념을 가진 여성일수록 더 이른 나이에 아이를 낳고, 평생 낳는 총 자녀 수(상단 박스: 합계출산율)도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국립과학원 저널 국제학술지 PNAS 넥서스(PNAS Nexus) 제5권 제5호]

아이를 낳는 시기도 달랐다. 성평등 의식이 낮은 여성들은 그렇지 않은 여성들보다 평균 1.52년 일찍 첫 아이를 낳았다. 엄마가 아이를 빨리 낳으면 그 자녀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시기도 빨라지기 때문에, 세대교체가 빨라진다. 연구팀은 이 차이가 출산율이 높은 북유럽과 낮은 남유럽의 격차를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국가 단위로 봐도 흐름은 똑같았다. 1995년 당시 성평등 의식이 낮았던 나라일수록 이후 인구가 가파르게 늘었다. 실제로 전 세계 인구 중 북미와 유럽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20.6%에서 2022년 16.9%로 줄어든 반면, 아프리카의 비중은 12.7%에서 18.0%로 껑충 뛰었다.

연구팀은 인구 변화가 없었다면 2022년 세계 성평등 지수는 실제 수치(55.2점)보다 높은 57.0점까지 올랐을 것으로 분석했다. 인구 구조의 변화가 인류 전체의 성평등 가치관 확산 속도를 72%가량 늦춘 셈이다.

‘세계 최저 출산율’ 한국의 성평등 점수는?

2025년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Global Gender Gap Report 2025)에 따르면 한국은 148개국 중 101위다. [세계경제포럼(WEF)]

이 연구를 한국에 대입하면 다소 복잡한 수수께끼가 생긴다. 한국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나라다. 연구의 논리대로라면 성평등 의식이 높은 사회여야 한다. 그러나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년 성별격차지수에서 한국은 148개국 중 101위였다. 특히 경제 참여와 기회 부문은 낮았다.

연구팀은 이 불일치를 어느 정도 설명했다.

성평등 의식과 출산율의 관계는 단순히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성평등 의식이 ‘어설픈 수준’일 때는 출산율이 바닥을 치지만, 아예 ‘최고 수준’으로 높아지면 출산율이 다시 반등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일과 가정을 편하게 병행할 수 있는 제도를 갖춘 북유럽이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성평등 의식이 높아서가 아니라, 성평등 의식은 높아지는데 제도는 따라가지 못하는 과도기적 긴장의 산물일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성평등 의식과 출산율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교육 수준과 종교성, 경제 발전 정도, 이민과 사망률 같은 다양한 인구·사회학적 요인이 함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논문

DOI : 10.1093/pnasnexus/pgag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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