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길·논두렁·포구가 DMZ까지 연결
비현실적 초장거리 코스, 200여명 완주
강진 남파랑길83코스, 다산·혜장 우정길
달마산 도솔암은 절벽 구름바다 위 뜬듯
남파랑길 끝 서해랑길 대문, 해남 땅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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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명당, 도솔암. [한국관광공사 제공] |
한반도를 일주하는 총연장 4500㎞의 ‘코리아둘레길’은 국토의 실핏줄 하나하나를 더듬어 가는 여정이다.
끊어진 해안 오솔길과 논두렁, 포구 둑길을 거쳐 북쪽의 비무장지대(DMZ) 접경지역까지 하나의 선으로 연결한 이 길은 국토가 축적해 온 오랜 역사와 인문학적 가치를 담고 있다. 그 아득한 여정 중에서도 강진과 해남을 관통하는 남파랑길과 새로운 길이 시작되는 서해랑길 구간은 ‘끝과 시작’이 맞물리는 상징적인 구간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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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초당. |
물리적 제약도 가두지 못한 사유의 깊이
코리아둘레길은 쉽게 도전하기엔 엄두가 나지 않는 초장거리 코스다. 완주에는 긴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이 뒤따르지만, 그럼에도 전 구간을 걸은 이가 현재까지 200명을 넘어설 만큼 찾는 발걸음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코리아둘레길의 가치는 완주에 있는 것은 아니다. 원하는 구간을 골라 땅과 대화하듯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 된다.
그중 약 17.5㎞에 이르는 남파랑길 83코스에는 한 지식인의 고립과 사유가 켜켜이 쌓인 공간이 있다. 이 코스의 뼈대를 이루는 것은 야생 차나무가 많은 만덕산(408m)이다. 현지 문화관광해설사에 따르면, 이곳은 한 인물의 생애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만덕산 위에서 보면 강진만이 다 보입니다. 400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인데 예로부터 야생 차나무가 지천으로 자라나 ‘차나무가 많은 산’이라는 뜻의 다산(茶山)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죠. 이것이 강진 유배 때 만덕산 자락에서 기거한 정약용 선생의 호로 이어졌고요.”
유배 4년째인 1805년 봄, 다산 정약용은 바깥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워졌을 때 처음으로 백련사를 찾았고, 당시 주지였던 혜장선사를 만났다. 서로가 심오한 학문의 경지에 감복했고, 유학자와 승려라는 신분의 벽을 넘어선 지적 교류가 시작됐다. 조정에서 버림받고 사방이 막힌 곳에 내쳐져 절망이 가득했던 유배객에게, 혜장은 학문적 동반자이자 삶의 물적·정신적 지지대가 되었다.
1808년 다산이 백련사 인근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왕래는 더욱 잦아졌다. 오늘날 두 공간을 잇는 약 800m 산길은 ‘다산과 혜장의 우정길’로 불린다. 혜장이 기약도 없이 찾아오곤 해서 다산이 밤이 깊도록 문을 열어두고 지냈다는 일화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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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 영정. |
단청도 없는 소박한 다산초당에서 머문 11년 동안 정약용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를 비롯한 약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저서를 썼다. 다산초당을 둘러보면 유배지라는 설명이 무색할 만큼 여유와 멋이 흘러넘친다. 유배라는 물리적 제약이 사유의 깊이까지 가둘 수 없음을 이 공간은 조용히 증명한다.
강진을 떠나 해남으로 접어들면 달마산 미황사에서 출발해 땅끝탑까지 이어지는 남파랑길 90코스가 시작된다. 우회로를 통해 도솔암도 만날 수 있는 구간이다. 도솔암은 일출과 서해의 일몰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명당으로 꼽힌다.
도솔암은 정유재란 당시 퇴각하던 왜군에 의해 소실된 후, 400여년간 주춧돌만 남아 있었으나 2002년에 복원됐다. 오대산 월정사 출신 법조 스님이 사흘 연속 같은 꿈을 꾼 뒤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 터를 찾아냈고, 32일 만에 건물을 짓고 단청까지 마무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차량 진입이 불가능하고 헬기 지원마저 할 수 없는 험지였으나, 산 아래 목재소에서 자재를 미리 깎고 단청까지 칠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사전 제작 방식’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암자는 한 칸 남짓으로 매우 작지만, 기암괴석이 석조 성벽처럼 둘러싸고 있어 풍경이 제법 멋지다. 거센 바닷바람을 맞으며 암자 앞마당에 서면 남해가 거칠 것 없이 펼쳐진다. 달마산 능선에 해무나 구름이 밀려오는 날이면 도솔암은 구름바다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마치 선경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은 규모 안에 고요와 수행을 향한 정진의 서사를 함께 담아낸 도량의 품격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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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끝탑 앞 이곳이 땅끝이면서 시작점임을 알리는 문구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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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본 땅끝탑. |
한반도 끝 알리는 탑…코리아둘레길의 이정표
남파랑길 90코스에 포함된 해남 땅끝마을은 국토 순례의 상징적인 성지로 통한다. 한반도 내륙에서 이 이상 남쪽으로 걸을 수 있는 땅은 없다. 시선을 달리하면 이곳이 국토의 시작점이 되는 만큼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최남단 기점까지는 모노레일을 타거나 걸어서 접근할 수 있다. 보행 약자를 위한 무장애 데크길을 따라가다 보면 스카이워크가 나타난다. 구조물은 바다를 향해 곧게 뻗어 있으며, 투명 강화유리 바닥 아래로는 푸른 물결이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해지는 아찔한 고도감과 시각적 개방감이 긴장감과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한다.
스카이워크를 지나 좀 더 들어가면 드디어 높이 9m의 삼각뿔 모양의 땅끝탑을 만나게 된다. 한반도의 끝에 도달했음을 직관적으로 알려주는 상징물이다. 코리아둘레길의 맥락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곳에선 탑을 중앙에 두고 바다를 정면으로 응시했을 때, 좌측으로 굽이치는 굴곡진 해안선은 남파랑길이 지나온 남해의 영역이고, 우측으로 길게 뻗은 수평선은 서해랑길이 시작되는 서해의 영역이다. 덕분에 이곳은 일출은 물론, 일몰 모두 감상하기 좋은 명소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는 경계가 없지만, 코리아둘레길은 바로 이곳에서 다시 북상을 시작한다. 지리적 분기점이 지닌 상징성과 새로운 시작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의미가 땅끝에서 더욱 또렷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모든 마무리가 결국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길은 삶의 궤적과 꼭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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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학도공원과 난영공원. |
“공공기관 건물 맞나요”…수평선 이은 호텔
땅끝탑을 기점으로 북상해 서해랑길 14코스를 따라 걷다 보면 호텔과 해변 캠핑장, 골프장을 갖춘 종합휴양단지 ‘오시아노 관광단지’에 이른다. 이곳의 ‘해남126 오시아노호텔’은 장거리 도보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숙소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국토교통부 ‘대한민국 공공건축 대상’ 우수상을 받을 만큼 디자인 완성도가 높아 일류 브랜드 호텔을 떠올리게 하지만, 한국관광공사가 운영하는 공공 건축물이다.
한국관광공사 광주전남지사 관계자는 “공공기관 건물이 맞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오히려 큰 칭찬으로 생각한다”며 “시설의 수준 대비 합리적인 가격으로 투숙률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호텔은 120개 전 객실이 서해를 향한 오션뷰로 설계돼 탁 트인 풍경을 제공한다. 인피니티 풀은 대표적인 포토 스폿으로 입소문이 났다. 물이 넘쳐흐르는 오버플로우 방식으로 설계돼 수면과 서해의 수평선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만든 것이 특징이다. 호텔 앞 바다에는 목포와 제주를 오가는 여객선과 자동차 수출선이 지난다. 저녁 무렵 인피니티 풀에서 배들의 불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하루의 피로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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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 강진 다산초당으로 가는 길. |
서해랑길 18코스, 목포 근현대사를 발로 읽다
오시아노를 나와 서해랑길을 이어 걸으면 목포에 닿는다. 서해랑길 18코스는 평화광장·갓바위·삼학도공원·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목포진 역사공원·근대역사문화거리 등을 아우르는 총 18.3㎞ 구간이다. 항구 특유의 짭조름한 공기와 붉은 벽돌의 근대 거리, 고요한 산길이 교차하며 한 편의 압축된 한국 근현대사 답사로 이어진다.
일본영사관으로 지어진 목포근대역사관 1관을 비롯해 근대역사문화거리의 골목을 빠져나오면, 길은 다시 바다 쪽으로 방향을 튼다. 육지와 이어진 섬을 따라 걷다 보면 세 마리 학이 내려앉아 섬이 되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학도공원이 나타난다.
공원을 가로지르면 한국인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와 평화 철학을 조명한 기념관이 자리한다. 인근 난영공원에서는 ‘목포의 눈물’을 부른 가수 이난영을 기리는 나무들이 조용한 그늘을 드리우며 도보객의 걸음을 잠시 쉬게 한다.
길을 걷다 코리아둘레길 배지를 단 도보 여행객을 여럿 마주쳤다. 이중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께 이토록 긴 둘레길을 걷는 목적을 물으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한다. “다 못 돌아. 그래도 갈 수 있는 만큼 가보고 싶지.”
덤덤한 그 대답은 어쩌면 코리아둘레길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말인지도 모른다. 완주라는 거창한 마침표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발길을 옮기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온전한 목적이었다. 시선이 먼 목표점이 아닌 발밑과 주변을 향할 때, 비로소 길 위의 풍경과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땅과 나누는 느린 걸음은 길 위에 축적된 무수한 이야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방법이 된다. 그것은 우리 국토가 지나온 시간과 그 속에서 명멸해 간 인간들의 서사를 접하는 거대한 배움터와도 같다.
강진·해남=김명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