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진짜 사장 다시 가려내라” 중노위 재심 봇물…재계 ‘줄소송’ 장기전 비상

지노위 판정 불복한 재심 릴레이 본격화
10일 기준 중노위 재심 신청 26건 달해
한화오션·CJ대한통운 등 대기업들 청구
15일부터 심문회의 일정 줄줄이 이어져
소송 최종 결론 수년…파업 정국 우려도


1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열린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1만 간부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이른바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이 석 달을 맞은 가운데 원청의 사용자성을 가리는 법적 분쟁이 산업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의 초심 판정에 불복한 노사의 재심 신청이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로 대거 이어지면서, 최종 결론이 법원 행정소송까지 이어지는 장기전으로 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잠시 성과급 분쟁에 가려져 있던 노란봉투법의 파괴력이 올여름 본격화될 것”이라며 “기업의 불확실성과 교섭 관련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지노위 초심 결과에 불복…중노위 재심 26건 접수


12일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실이 중노위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6월 10일 기준 중노위에 접수된 사건은 총 26건(연번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달 들어서만 7건이 새로 접수됐다. 업종별로는 조선·에너지·건설·철강 등 사내하도급 비중이 높은 중후장대 산업계와 택배물류업, 그 외에 공공기관과 지자체까지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전체 26건 중 사용자 재심 신청 사례는 14건에 달했다. 이달 들어서만 극동건설, 현대엔지니어링, CJ대한통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등 원청사들이 지노위의 초심 결과에 불복해 대거 재심을 신청했다. 반대로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전국택배노조 등은 지노위에서 교섭 신청이 기각되자 노동계 차원에서 재심을 청구하며 맞서고 있다.

특히 주요 대기업들의 핵심 분쟁 사건들이 오는 15일부터 줄지어 중노위 심문회의에 오를 예정이다. 중노위는 오는 15일 한화오션이 금속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교섭요구 노조 확정공고 이의신청 재심신청’ 심문회의를 개최한다. 앞서 한화오션은 사내 급식업체 노조를 교섭공고 대상에 포함하라는 지노위 판정에 불복해 재심을 신청한 바 있다. 이어 오는 24일에는 CJ대한통운이 청구한 확정공고 관련 재심 심문회의가 열리는 등 원청 대기업들의 정면충돌이 잇따를 전망이다.

개정 노조법 관련 분쟁 폭증하며 ‘불복 도미노’ 예상


현장에서는 판정 결론이 엇갈리기 시작하면서 노사 양측의 ‘일단 중노위까지 가보자’는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법에 명시된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라는 사용자성 기준이 여전히 모호해, 지노위 단계에서 결론이 나와도 노사 모두 쉽게 승복하지 못하며 불복 도미노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눈치싸움 속에서 지노위 단계까지 포함한 개정 노조법 관련 분쟁은 이미 폭발적인 수치를 기록 중이다. 이달 10일까지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관련 사건은 총 451건에 달한다. 이 중 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으나 원청이 이를 사내에 알리지 않아 발생한 ‘교섭요구공고 시정신청’이 276건(61.2%)으로 가장 많았고, ‘교섭단위 분리’ 신청이 164건(36.4%)으로 뒤를 이었다.

특히 처리 완료된 384건 중 노조 측의 신청이 받아들여진 ‘인정’ 판정은 97건으로, ‘기각’(42건)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즉 지노위 단계에서 원청의 사용자성이 잇따라 인정되다 보니, 대기업 원청사들로서는 방어를 위해 중노위 재심 청구와 향후 줄소송 단계까지 염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종 결론까지 수년 소요 불가피…결국 ‘줄소송’ 장기전으로


더 큰 문제는 중노위 재심 이후에도 갈등이 봉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노사 당사자는 중노위 재심 판정서를 송달받은 날로부터 15일 안에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경영계는 중노위가 하청 노조 손을 들어줄 경우 경영권 침해와 무분별한 교섭으로 인한 마비를 막기 위해 소송 제기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노동계 역시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사용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법원의 판단을 다시 구하겠다는 태세다.

결국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이르는 진흙탕 싸움이 수년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노동위 사건이 행정소송 3심까지 가 가려지는 데 걸리는 평균 처리 일수는 지난해 기준 1137일에 달한다. 한 번 소송전에 돌입하면 ‘진짜 사장’이 누구인지 확정하는 데만 최소 수년이 걸리는 셈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 노조법 사건은 선례가 없고 법리적 쟁점이 복잡해 법원 부하를 고려하면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길게는 5년가량 걸릴 수 있다”며 “원청 입장에서는 나중에 사용자성이 없다는 판결을 받더라도 당장 노조 압박에 밀려 교섭에 응한다면 선례가 굳어지므로, 소송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끝까지 버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현장 파업 정국 치달을 가능성…“노봉법발(發) 태풍 본격화”


법적 공방이 길어지는 동안 현장은 파업 정국으로 치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노동위원회법 제27조에 따라 중노위 재심판정 처분에 행정소송을 제기하더라도 그 효력은 정지되지 않는 점을 들어, 하청 노조가 즉각적인 교섭을 요구할 수 있다. 원청이 확정판결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면 부당노동행위 고발과 동시에 조정 신청 등 절차를 거쳐 파업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단 관측이다.

박 교수는 “특히 노란봉투법에 의해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대폭 감면되거나 면책되는 안전판이 생겼기 때문에 노조로서는 파업 카드를 쉽게 꺼낼 것”이라며 “일부 하청 공정만 멈춰도 원청 전체가 마비되는 ‘적은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린 파업이 속출하며 노사 갈등이 증폭되는 장면이 올여름 대거 목격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노란봉투법 시행 후 3개월이 지나 중노위 결과가 가시화되는 6월 이후부터 노란봉투법발(發) 태풍이 본격 위력을 발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