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투표용지 제멋대로 줄여놓고…폐기 비용도 모르는 선관위

구자근 국힘 의원, 선관위 답변 자료 분석
폐기 비용 부담 때문에 용지 축소한다 해놓고
“잔여 투표용지 관계 서류 폐기…비용 몰라”
송파 투표용지 부족했는데…서울 전체론 남아

 

노태악 전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지난 5일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연합]

[헤럴드경제=윤채영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6·3 지방선거에서 투표용지 인쇄량 지침을 하향한 이유로 ‘잔여 투표용지 폐기에 따른 비용 절감’ 등을 제시했지만, 정작 정확한 투표용지 폐기 비용은 파악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선관위에 ‘최근 10년간 투표용지 처리 비용 결산 현황’ 자료를 요구한 결과, 선관위 측은 “잔여 투표용지는 다른 선거관계서류와 함께 폐기돼 별도 폐기 비용을 산정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구 의원실은 선관위로부터 “잔여 투표용지는 공직선거법 제186조 및 공직선거관리규칙 제107조에 따라 보존 또는 폐기하고 있으며, 규칙에 따른 다른 선거관계서류 등과 함께 폐기돼 별도 폐기 비용을 산정하기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

앞서 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인쇄 축소 지침을 50% 한도로 결정한 배경에 대해 ▷잔여 투표용지 과다 발생에 따른 예산 낭비 ▷보관 장소 부족 ▷폐기 비용 부담 등 때문이라고 밝혔다. 각 지역 선관위는 이같은 이유를 들어 실제 투표용지 인쇄량을 축소하는 결정을 내렸자.

선관위는 또한 ‘최근 10년간 투표용지 폐기 비용’에 대해서도 “별도 산정을 할 수 없다”고 구 의원실에 전했다. 투표용지 인쇄량 축소의 근거로 폐기 비용을 들었지만, 실제 과거 선거에서 폐기에 얼마의 비용이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료는 보유하고 있지 않은 셈이다.

선관위는 투표소별 투표용지 수급 배분에도 실패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서울에 인쇄된 투표용지는 총 3067만8800매였는데, 이중 921만7612매(약 30%)는 사용되지 않고 남은 것으로 확인됐다.

송파구 일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했던 것과 달리 일부 지역에서는 용지가 넉넉했던 것이다. 송파구 전체로 보면 7장의 투표용지 중 구시군의회의원을 제외하면 모두 4만2000여매 이상 여분이 있었다. 용지 부족으로 투표 중단 사태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잠실 7동 제2투표소나 가락2동 제3투표소와 대비되는 셈이다.

위철환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직무대행은 지난 11일 이와 관련 “송파구 내 146개 투표소별 투표용지 분배에 실패한 것이 뼈아픈 실수였다”며 “다시 한번 국민의 참정권이 훼손된 점에 대해 거듭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구 의원은 “불필요한 폐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선관위가) 인쇄량을 줄였다고 했는데 정작 그 비용이 얼마나 발생하는지조차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며 “투표소별 추세와 특징에 대한 분석 없이 탁상행정으로 인쇄량을 조정하다 보니 어디는 남고 어디는 부족한 촌극이 벌어진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선관위 진상규명위원회에 따르면 투표용지 부족으로 가장 심각한 상황이 발생한 송파구 선관위원회는 투표용지 축소 인쇄 결정에 관한 회의록도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50% 하향을 ‘서면’으로 의결했으며, 무번호 투표용지 2000매를 제외하면 예상 선거인수의 50%(28만2219매)에도 미치지 못한 28만800매만 인쇄했다.

아울러 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 전체 투표용지 축소 인쇄 지침을 결정한 회의록을 진상규명위에 제출하지도 않았다. 진상규명위의 조현욱 위원장은 22일 MBC라디오에서 “투표용지 인쇄 축소를 결정한 위원회 회의록을 보고 싶었지만, 선관위 회의록은 비공개라고 해서 의결된 요지나 의안 상정한 것만 나왔고 그 회의록 자체는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조 위원장도 “(회의록이 없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이었다”면서 “참정권 보호가 가장 중요한 거고 나머지는 행정적인 문제인데 그 행정적인 문제 때문에 이렇게 50% 한도로 인쇄 축소했다는 그 발상 자체가 문제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투표용지 부족인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안이하게 대응했던 담당자나 이런 사람들에 대해 징계 권고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미리 인쇄된 투표용지 부족에, 긴급하게 투여된 무번호 투표용지의 과다 사용도 투표 중단 사태를 가속화한 요인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잔여투표용지 현황을 보면 서울 강동구 경우 1만여장 이상 남기도 했다. 무번호 용지는 오·훼손 시 교체, 투표지 분류기 등록 등을 위해 주로 사용된다.

무번호 용지에 일일이 일련번호를 작성하면서 시간이 더 지체됐고, 이에 무번호 용지량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진상규명위 측은 “투표용지에 일일이 일련번호(시인쇄분 7자리, 구인쇄분 최대 6자리)를 기재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이 소요돼 투표용지 부족 및 투표중단 사태가 가속화됐다”고 말했다.

진상규명위는 아울러 중앙선관위에서 각 시·도위원회, 구·시·군위원회 간 권한 범위를 명확히 할 것을 제안했다. 이들은 “중앙위원회는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는 등 각 위원회의 권한과 책임이 불명확하고, 이는 결국 보고 지연 및 사후 대응 미비로 나타났다”며 “각 위원회의 권한과 책임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합리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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