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심의 본격화…노동계 “1만2000원” vs 경영계 “현 수준도 부담”

노동계, 최초 요구안으로 16.3% 인상 제시
경영계는 내부 이견…동결론부터 삭감론까지


23일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열린 제8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위원인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왼쪽)와 근로자위원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이 굳은 표정으로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회의부터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본격 논의한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으로 올해(1만320원)보다 16.3% 오른 시급 1만2000원, 월 250만8000원(월 209시간 기준)을 제시했다.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 심의가 본격 시작됐다.

노동계는 시급 1만2000원을 최초 요구안으로 제시하며 저임금 노동자의 생계비 부담 완화를 요구한 반면, 경영계는 현행 최저임금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인상 자제를 촉구했다. 경영계 내부에서는 동결론과 삭감론까지 제기되면서 아직 단일 요구안도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저임금위원회는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제8차 전원회의를 열고 최저임금 수준 결정과 관련한 첫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는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총 27명이 참석했다.

회의장에서는 시작부터 노사 간 신경전이 펼쳐졌다. 노동계는 ‘올려라 올려라 최저임금 1만2000원’, ‘코스피 1만보다 최저임금 1만2000원’, ‘월급 빼고 다 올랐다, 올려라 최저임금’, ‘가구생계비 반영해서 실질임금 보장하라’ 등의 피켓을 내걸고 인상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동계는 이날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으로 시급 1만2000원을 공식 제시했다. 올해 최저임금 1만320원보다 1680원, 16.3% 높은 수준이다. 월 환산액은 주 40시간·월 209시간 기준 250만8000원이다. 반면 경영계는 아직 최초 요구안을 확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용자위원들 사이에서도 삭감 의견까지 제기되면서 내부 조율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전무는 “업종별 구분 적용이 또다시 기계적으로 무산된 것은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며 “이제는 업종별 구분 없이 모든 사업장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단일 최저임금을 정해야 하는 만큼 내년 최저임금 수준은 가장 어려운 업종과 규모의 사업장을 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류 전무는 “최근 10년간 최저임금 인상률은 79.7%로 같은 기간 명목임금 상승률(39.6%)과 소비자물가 상승률(22.9%)을 큰 폭으로 상회했다”며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62.2%로 국제적으로 적정 수준의 상한으로 보는 60%를 이미 넘어섰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난해 최저임금 미만율은 12.4%에 달했고 숙박·음식업과 5인 미만 사업장은 이미 30%를 상회했다”며 “일부 업종과 영세 사업장에는 현행 최저임금조차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또 “소상공인연합회가 올해 5월 전국 소상공인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현재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데 큰 부담을 느낀다는 응답은 87%에 달했고, 내년 최저임금이 인하 또는 동결돼야 한다는 응답은 98.5%로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류 전무는 국제 비교 수치도 제시했다. 그는 “2025년 기준 우리 최저임금 연 환산액은 평가환율 기준 3만997달러로 G7 국가 평균보다 6.4% 높고, 세후 최저임금은 2만7571달러로 G7 평균보다 17.9% 높다”며 “이번 심의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이 이미 높고 현장의 수용성도 한계에 다다른 현실을 충분히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도 “최저임금이 노동생산성 이상으로 인상되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키오스크와 무인화, AI 자동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임시·일용 근로자뿐 아니라 미숙련 취약계층의 고용 기회까지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 본부장은 “인건비 압박으로 중소기업의 투자와 연구개발(R&D)이 어려워지고,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 초단기 쪼개기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며 “소상공인의 영업시간 축소와 서비스 축소로 소비자 편익도 감소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최저임금 상승이 인건비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제품과 서비스 가격에 전가돼 물가가 오르면 다시 인건비 상승 압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며 “2017~2018년 최저임금 30% 인상의 충격을 국민 모두가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고물가와 생계비 위기를 이유로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류기섭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최저임금법에 최우선으로 명시된 노동자 생계비를 반드시 반영하도록 만든 법 취지를 깊이 헤아려야 한다”며 “최근 경제성장률 전망이 반도체 수출 호조에 힘입어 상향 조정되고 있지만 경제성장은 불균형한 회복세”라고 말했다.

류 사무총장은 “대기업의 초과이윤은 위로만 쏠리고 사회적 위험과 비용은 노동시장 하부구조로 빠르게 흘러넘치는 ‘거꾸로 된 낙수효과’가 벌어지고 있다”며 “지금의 위기는 노동시장 양극화가 초래한 생계비 위기 시대”라고 지적했다.

그는 “최저임금 시급 1만2000원 요구는 고유가와 고물가로 이어지는 실질임금 하락, 에너지 물가 압력에 견디기 어려운 저임금·취약계층의 생활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소비 창출을 통한 내수경기 회복 속에서 지역경제와 자영업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이미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부위원장도 “현재 시급 1만320원, 월 환산액 215만6880원은 이것 떼고 저것 떼고 나면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라며 “실수령액 200만원 남짓한 돈으로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와 공공요금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미선 부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이 올라서 물가가 오르는 것이 아니라, 물가가 너무 올라 살 수가 없으니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최저임금이 올라야 한다고 절규하고 있다”며 “노동자의 지갑이 열려야 골목상권이 살고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도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공익위원인 성재민 위원은 “오늘은 최저임금 수준 결정 관련 첫 번째 논의를 하는 자리”라며 “최저임금은 최저임금법이 정하고 있는 근로자 생계비, 유사 근로자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성 위원은 “최근 우리 경제는 반도체 중심의 성장 국면에서도 경제의 불확실성이 여전히 커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일수록 각자의 입장을 충분히 개진하되 객관적인 자료와 사실에 기반한 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밝혔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