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서도 ‘젖소와의 전쟁’? 동맹 추가한 트럼프의 ‘마약과의 전쟁’ 그 끝은[디브리핑]

콜롬비아의 대선 결선 투표일인 지난 21일(현지시간) 야당인 ‘조국의 수호자 운동’ 소속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 후보가 승리를 확정 짓고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AP]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콜롬비아에서 친미(親美) 우파 성향의 아벨라르도 데 라 에스프리에야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서반구에서 ‘마약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을 확보하게 됐다. 올해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등 중남미를 무대로 한 트럼프식 마약과의 전쟁이 콜롬비아까지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정확하지 않은 무작위 군사작전까지 동원하는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부작용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미군 들어간다” vs “주권 침해”…美·콜롬비아 갈등, 대권 바뀌며 단번에 해결


에스프리에야 콜롬비아 대통령 당선인은 초강경 극우 성향 변호사 출신으로, 자국 내 마약 조직과 불법 무장단체 소탕을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미국과의 범죄인 인도 조약에서 협력을 강화하는 한 편, 오지에 초대형 교도소 10개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친미 강경 노선을 예고한 에스프리에야가 당선되면서 서반구 전체를 무대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도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에스프리에야는 자국 내 마약 조직에 강경 대응을 주장하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침공’은 배제하겠지만, 미국과의 정보 공유 확대와 작전 지원은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에스프리에야는 여러 국제법 전문가들이 불법이라 지적했던 미군의 마약 밀수 의심 선박 타격을 찬성했고, 자국 군대 역시 콜롬비아 해안에서 마약을 운반하는 항공기와 선박을 타격할 것이라 공언해왔다.

현 콜롬비아 대통령인 구스타보 페트로는 마약 카르텔에 대한 군사 작전보다 경제난 때문에 마약 조직으로 흘러드는 청년층을 차단하는게 먼저라며 코카인 원료인 코카를 재배하는 농가에 커피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지원하는 방안 등을 제안했다. 콜롬비아 내 마약 카르텔 소탕을 위해 미군을 투입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도 콜롬비아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맞서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그는 코카인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며 타국의 현직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의 코카인 생산국 콜롬비아와 미국의 갈등은 에스프리에야의 당선으로 단번에 협력 관계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NYT)는 에스프리에야의 당선이 “서반구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심적인 우파 동맹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에콰도르, 베네수 이어 콜롬비아…활동 반경 넓히는 美


지난 3월 7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도럴 리조트에서 열린 ‘미주의 방패(Shield of the Americas)’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앞줄 왼쪽에서 셋째) 미국 대통령과 중남미 12개국 정상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AFP]


에스프리에야가 당선되면서 외신들은 미국이 자국 군과 요원을 동원해 벌이는 ‘마약과의 전쟁’의 다음 무대가 콜롬비아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미국은 지난 1월 자국으로의 마약 유통을 주도하고 방조했다는 명목으로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군사를 동원해 축출했다. 미군은 이후 카리브해에서 마약 운반선이라며 민간 선박에 수차례 총격을 가했고, 지난 3월에는 에콰도르와 마약 조직을 단속했다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후 중남미의 우파 지도자들을 소집해 마약 공동 대응 전선인 ‘미주의 방패(Shield of the Americas, 아메리카 반카르텔 연합 – ACCC)’를 창설했고, 정상회의도 열었다. 이 연합은 미국이 중남미 회원국의 요청을 받을 경우, 미군의 정보 자산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군사력을 해당국 영토 내에 투입할 수 있는 법적·군사적 명분을 제공한다. 현재 아르헨티나, 엘살바도르, 페루 등 17개국이 참여중인데, 에스프리에야 당선인도 향후 이 연합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외에도 볼리비아에서는 지난 20년의 좌파 정부 시절 입국할 수 없었던 미국 마약 단속 요원들이 최근 다시 진입하게 됐다. 지난 12일에는 베네수엘라의 임시정부군과 손잡고 드론 및 미사일 공격을 가해 중남미의 마약 조직 ‘트렌 데 아라구아’의 최고 지도자 헥토르 게레로(일명 ‘니뇨 게레로’)를 사살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빠르게 콜롬비아를 마약 통제 파트너국으로 재인증하고, 콜롬비아 군대에 정보 및 작전 지원을 제공해 공동 군사작전으로 마약 카르텔과 일전을 벌일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주미 콜롬비아 대사를 지낸 카롤리나 바르코는 NYT에 “그 분야(마약과의 전쟁)는 공동 작업이 절대적으로 근본적인 부분이 될 영역”이라고 말했다.

성과 조급증에 ‘젖소와의 전쟁’ 재현 우려…군사 작전 효과는 회의론도


미 국방부가 에콰도르 정부와 합동 작전으로 마약 조직의 훈련 거점을 폭격했다며 공개했던 영상. 실상은 미군은 관여하지도 않았고, 에콰도르군이 폭격한 곳은 마약 조직 훈련장이 아닌 젖소를 키우는 목장이었다. [미 국방부 X 계정 갈무리]


마약과의 전쟁에서 다시 강경 노선으로 돌아선 콜롬비아와 미국의 관계를 두고 근시안적 대응과 성과를 과시하려는 조급증이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콜롬비아의 비영리 연구 단체 분쟁대응재단 공동 설립자인 카일 존슨은 미국이 중남미에서 강경한 군사 작전을 동원했음에도 미국으로 밀려드는 코카인 밀매가 줄지 않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대응에 에스프리에야가 힘을 보태는 것은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군사 작전을 동원한 강경책은 마약과의 싸움에는 효과적이지 않지만, 마약과 싸우고 있으며 국민을 보호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데는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에스프리에야의 철권 통치까지 보태진 마약과의 전쟁이 시민의 자유를 침해하고 민간인 사상자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에콰도르의 전례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와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행정부는 지난 3월 6일 양국 군이 합동 작전으로 약 50명의 마약 밀매업자가 훈련하던 훈련장을 초토화했다며 대규모 마약 보급 단지가 폭파되는 영상 등을 공개했다. 그러나 현장을 직접 취재한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양국 군대의 작전 지역은 마약 조직 훈련장이 아닌 암소 50여마리를 키우는 젖소 농장이었고, 미군은 작전에 관여하지도 않았다. 에콰도르 군인들이 다짜고짜 목장에 들이닥쳐 젖소를 사육하는 노동자들을 개머리판으로 구타했고, 목장을 방화했다. 이후 에콰도르 군인들은 헬기를 동반해 불에 탄 건물의 잔해를 다시 폭격했고, 홍보용 영상을 촬영해갔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증과 이를 과시하려는 정치적 계산이 맞물려 무고한 민간인을 폭행하고, 민간 시설을 방화한 사건으로 번진 것이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마약 카르텔’이 아닌 ‘우유 카르텔’을 잡았다”거나 “마약과의 전쟁이 아닌 젖소와의 전쟁이다”, “인류 사상 최초로 젖소를 상대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군” 등의 비아냥이 쏟아졌다.

비아냥과 비판 너머로 군사 작전을 동원한 강경책에 대한 회의론도 여전하다. 마약 카르텔은 정규군처럼 눈에 보이는 기지를 두고 싸우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침투해 있는 부패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때문에 군대를 동원해 눈앞의 하부 조직원을 잡거나 시설을 폭격하는 방식은 부패 사슬을 끊을 수 없다는게 트럼프식 ‘마약과의 전쟁’을 비판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전 콜롬비아 주재 미국대사였던 케빈 휘태커는 “(마약 조직의) 최고 지도부를 제거하더라도 그 아래에는 실제로 꽤 유능한 사람들이 있다”며 “조직은 약화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군 투입 거부 동맹 잃은 멕시코, 불안감 증폭


지난 3월 멕시코의 신문 가판대에 마약왕 네메시오 오세게라 세르반테스(일명 ‘엘 멘초’)의 사살 소식을 알리는 신문들이 진열되어 있다. [AP]


실제 정책의 효과와는 상관없이 ‘마약과의 전쟁’에서 동맹을 얻게 된 트럼프 대통령과 에스프리에야는 향후 협력 관계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트루스소셜에 “그가 이겼다. 크게.”라며 에스프리에야 당선을 환영하기도 했다.

반면 멕시코는 마약 조직 대응 전선에서 동맹을 잃은 셈이어서, 불안감이 증폭되는 모양새다. 미국은 멕시코를 향해서도 군사 개입 압박을 거세게 가해왔다. 멕시코에서는 지난 2월 미군의 정보 지원을 받은 멕시코군이 최대 마약 조직인 할리스코 신세대 카르텔(CJNG)의 수장 ‘엘 멘초’를 사살한 바 있다. 이후 4월에는 멕시코 북부에서 마약을 제조하는 실험실을 파괴하고 복귀하던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마약 조직을 뿌리 뽑으려는 정부와 카르텔 간 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멕시코 영토 내 미 지상군을 투입해 마약 카르텔을 섬멸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쳐왔다. 이에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정보 지원을 받는 식으로 협력할 수는 있지만 “미군이 멕시코에 주둔하는 것은 절대 불가하다”며 맞서왔다. 미군의 군사 개입을 허용하면 주권 침해 논란이 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엘 멘초 사살 등의 전적이 있기는 하지만, 셰인바움 대통령도 마약 조직에 대한 대응은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과 비슷한 노선이다. 군사력을 동원해 타격하는 것보다 마약 조직으로 인력이 흘러들지 못하게 하고, 수요를 차단해 마약 밀매가 ‘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에 대항해온 셰인바움 대통령으로서는 함께 맞서왔던 콜롬비아가 강경 우파로 돌아선 것이 뼈아픈 대목이다. 이제 트럼프의 전방위 압박을 셰인바움 대통령 혼자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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