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호남 반도체, ‘전기·물 풍부’ 아닌 실행계획 필요…한빛원전도 변수”

정부, 29일 ‘메가프로젝트‘ 보고회
전문가들 전력·용수·인력 확보 구체적인 방안 내놔야
경상지역 원전과 호남 연결 송전망 구축 필요


전남 영광 한빛원전 1~6호기 전경.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위해서는 한빛원전의 계속 운전여부가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헤럴드경제=배문숙·양영경 기자]정부가 호남에 1000조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내놓을 예정인 가운데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전력과 용수, 인력 확보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반도체 공장은 24시간 중단 없이 가동되는 대표적인 전력 다소비 시설인 만큼 단순히 “재생에너지가 풍부하다”, “용수가 충분하다”는 수준의 설명만으로는 기업 투자를 설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수도권 이남으로 우수 인재가 이동하지 않는 이른바 ‘인재 남방한계선’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생태계 구축도 해결 과제로 꼽힌다.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주재한다. 정부는 호남·충청·영남권을 아우르는 첨단기술 지역 투자로 인공지능(AI) 시대 산업 재편에 대응하고 국가 균형발전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호남에는 향후 10년간 1000조원 이상이 투입되는 대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통상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후에너지환경부, 국토교통부 등이 기업의 투자를 뒷받침할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국민의힘이 그간 의문을 제기한 입지 선정 기준과 용수·전력 공급 방안 등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도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재생에너지만으론 부족…원전·LNG·송전망 함께 갖춰야=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호남의 풍부한 재생에너지 만으로는 반도체 공장의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편이지만 태양광은 수급 계획상 실효용량을 15% 정도만 인정 받는다”면서 “10GW를 설치해도 실제 안정적으로 활용 가능한 전력은 1.5GW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태양광은 간헐성이 커 장마철에는 2~3일 동안 발전이 어려울 수도 있다”며 “결국 경주 월성이나 부산 기장, 울산에 있는 원전과 호남을 연결하는 동서 송전망을 구축해야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 내 유일한 대규모 기저전원인 한빛 원전을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가동해야 한다”며 “재생에너지의 급격한 출력 변동을 흡수할 수 있는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과 함께 단기적 전력 공백이나 계통 고장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LNG 열병합 발전소를 추가로 지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실제 호남은 발전설비는 충분하지만 송전망은 취약하다. 지난해 기준 호남의 발전설비 용량은 약 23.3GW로 지역 전력수요(5GW)의 4배를 넘는다. 그러나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대규모 산업단지까지 안정적으로 보내기 위한 345kV(킬로볼트)급 송전망은 부족한 상황이다. 전력거래소는 호남권 345kV 송전선로 13곳 가운데 12곳이 2026~2030년 수용 한계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안정적인 기저전원 확보 문제도 남아 있다. 호남에는 한빛원전이 있지만 향후 계속운전 여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영광 한빛 원전 1~6호기 가운데 1호기는 작년 말 설계수명(40년)이 종료돼 가동을 멈췄고, 2호기도 오는 9월 운전을 중단한다. 3~6호기 역시 2034년부터 순차적으로 설계수명이 끝난다. 호남지역 여론은 한빛 원전 계속 운전에 부정적이다. 현지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은 한빛 원전이 멈춰 전력망에 여유가 생기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전력 인프라를 둘러싼 과제가 적지 않은 만큼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한계를 인정한 뒤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 교수는 “뭐 하나 만만한 건 없지만 그래서 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면서 “우리가 한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한계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물도, 전기도 풍부하다는 식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공정현장 [헤럴드 DB]


▶용수 확보도 넘어야 할 산…구체적 공급 방안 제시해야=반도체 공장(팹) 1기에는 하루 약 20만t의 초순수가 필요하다. 공정 세척과 불순물 제거는 물론 클린룸의 온·습도 유지에도 막대한 물이 사용된다. 클린룸 온도와 습도 조절 등에도 안정적인 물 공급이 필수다.

정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반도체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전력과 용수”라며 “호남지역에 반도체 공장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용수관련 구체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승훈 교수도 “기후에너지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영산강·섬진강 유역은 2030년 물 부족이 예상되는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며 “정부가 하루 100만t 공급이 가능하다고 밝힌 만큼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영산강·섬진강 유역은 한강이나 낙동강에 비해 수량도 문제지만 수질도 안 좋은 상황”이라며 “팹 하나에 물이 20만톤이 필요한데 팹 5개에 해당하는 100만톤 공급이 가능하다고 발표가 됐으니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재와 기업 유인책 함께 마련해야=전문가들은 전력과 용수 못지않게 인재 확보와 기업 투자 유치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성공 여부를 좌우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회준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기업은 투자 수익성이 확보돼야 움직인다”면서 “세제 혜택이라든가 부지 무상 대여와 같은 투자 유인책을 강화해 기업이 지방 투자를 경제적으로 유리하게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도권에만 너무 산업을 집중시키기보다 균형발전 차원에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필요한 것은 맞다”고 덧붙였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공한 산업 클러스터 주변에는 우수 대학과 연구기관이 함께 있다”며 “실리콘밸리에는 스탠퍼드대, 보스턴에는 하버드대와 MIT가 있는 것처럼 연구·교육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정주 여건까지 개선해야 유능한 인재가 지방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서 “여러가지 여건이 클러스터의 조건을 맞출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