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시아엔 ‘스페이스X급 IPO’가 없을까[디브리핑]

기술·인재·시장 갖췄지만 장기 자본 부족
미국식 고평가 받기 어려운 자본시장 구조
중국·한국은 지배구조, 인도는 내수중심 한계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모건스탠리 본사 건물 외벽에 스페이스X의 기업공개(IPO)를 알리는 홍보물이 게시돼 있다. [로이터]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아시아가 반도체와 전기차, 로봇, 첨단 제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도 미국 스페이스X와 같은 초대형 기업공개(IPO)를 좀처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기술력이나 시장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상장 전까지 장기간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며 몸집을 키울 수 있는 자본시장 구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CNBC는 30일(현지시간) 아시아에는 기업가와 엔지니어, 거대한 내수 시장이 부족하지 않지만 미국에서처럼 초대형 상장 기업을 배출하는 데는 여전히 뒤처져 있다고 보도했다.

레니 제피린 제피린그룹 창업자는 “아시아는 초대형 IPO를 뒷받침할 기술 역량과 규모, 인재 기반을 갖췄지만 자본시장은 구조적·행태적 요인으로 여전히 제약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인도, 한국 등에서도 대형 IPO가 없는 건 아니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는 상하이 증시 상장을 통해 최소 295억위안(약 43억달러)을 조달할 계획이다. 인도 통신·디지털 기업 지오플랫폼은 IPO에서 약 1200억달러의 기업가치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초대형 기술 기업과 비교하면 격차가 크다. CNBC는 스페이스X가 1조7700억달러의 기업가치로 데뷔했고, 거래 초기 2조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아시아의 가장 큰 차이로 ‘상장 전 장기자본’을 꼽는다. 미국에서는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가 기업이 상장하기 전 10년 이상 고위험·고성장 사업에 자금을 공급하며 기업가치를 키운다. 반면 아시아에서는 투자 회수 기간이 짧고, 기관투자자들이 장기간 손실을 감수하며 성장성에 베팅하는 데 상대적으로 소극적이라는 평가다.

존 필즈 베인앤컴퍼니 파트너는 “미국에서 이런 현상을 이끄는 가장 큰 요인은 막대한 민간 자본이 사모펀드 등을 통해 유입돼 기업들이 매우 높은 기업가치로 시장에 진입할 때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산업 기반 자체는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로봇, 첨단 제조 분야에서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금융 생태계다.

딩원제 중국자산운용 글로벌 자본 투자 전략가는 “중국은 초대형 기업을 만들 수 있는 산업 역량과 시장 규모, 인재 풀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중국 벤처캐피털 업계의 투자 기간이 미국보다 짧고, 국경 간 자본 유입도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보험사와 연기금 등 장기 투자자의 참여 확대, 홍콩을 통한 자본 유입 채널 강화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홍콩은 대규모 공모를 처리할 인프라는 갖췄지만, 벤처 기반 기술 기업을 지속적으로 키워낼 생태계가 약하다는 평가다. 과거 홍콩의 대형 IPO는 기술 스타트업보다 은행 등 금융기업 중심이었다.

[연합]

한국은 세계적인 반도체와 배터리 기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시장 구조와 지배구조가 기업가치 확대를 제약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 나머지 시장의 성장성이 상대적으로 제한되고, 자동차·조선 등 주력 산업은 전통적으로 낮은 기업가치 배수를 적용받는 업종이라는 것이다.

폴카 미슈라 자벨린웰스 애널리스트는 “재벌은 한국의 산업 성장에 핵심적 역할을 했지만, 오늘날에는 새롭게 부상하는 독립 상장 기업을 육성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집중된 소유구조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장기 기관투자자 참여 부족이 초대형 IPO를 막아왔다고 분석했다.

인도는 IPO 수요 자체는 강하다. 개인투자자와 뮤추얼펀드, 연기금의 참여가 활발하고, 국내 저축이 주식시장으로 이동하면서 상장 시장의 체력도 커졌다. 지오플랫폼 IPO는 인도 자본시장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인도 기술 기업들은 여전히 내수 중심 성격이 강하고, 조기 수익성 압박도 크다. VK 비자야쿠마르 지오짓파이낸셜서비스 최고투자전략가는 “인도는 많은 IPO를 성공시킬 여건을 갖췄지만, 미국 대형 기업처럼 초대형 IPO를 추진하기에는 아직 시기가 무르익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 스타트업은 미국처럼 풍부한 사모자금을 받기 어렵고, 조기에 수익을 내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며 “성장보다 수익성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시아가 미국식 초대형 IPO 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의 기술력보다 자본시장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 투자 성향의 연기금과 보험사 참여, 벤처캐피털의 투자 기간 확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성장 기업에 대한 애널리스트 커버리지 확대가 맞물려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변화 조짐도 있다. 인도의 국내 저축은 계속 주식시장으로 유입되고 있고, 중국은 기술 금융 투자를 다시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지배구조 개혁을 추진 중이며, 홍콩은 여전히 국제 자본이 중국과 아시아로 들어가는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CNBC는 “아시아는 미국식 초대형 IPO를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요소들을 점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며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자본시장이 기업의 장기 성장을 얼마나 인내심 있게 뒷받침할 수 있느냐”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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