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피해자와 합의…범행 당시 만 18세 초범”
전문가 “미성년자 대상 성착취 범죄 감형 신중해야” 지적
“사법권 발동 취지 몰각…온전한 피해자 의사 아닐 수도”
“인적 사정 광범위하게 감형요소로 작용…부적절한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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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tGPT를 이용해 생성한 이미지. |
[헤럴드경제=양근혁 기자] 법원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수백 건을 보관하고 이를 돈을 받고 판매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20대 남성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죄책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지만, 이 남성이 범행 당시 만 18세의 초범이었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 등을 이유로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징역 5년을 구형했던 검찰이 항소하지 않으면서 이 사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회적 해악이 크고 또 다른 범행의 유인이 될 수 있는 미성년자 대상 성착취 범죄에 대한 감형이 지나치게 쉽게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스스로 온전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미성년 피해자 및 가족과의 합의 여부가 감형 사유로 작용할 때에는 더욱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7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울산지법 형사12부(부장 박강민)는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위반(영리목적성착취물판매·성착취물소지)과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물소지·허위영상물소지) 등 혐의로 기소된 2006년생 A씨에게 지난달 12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A씨는 2024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텔레그램 등을 통해 입수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257개를 휴대전화와 텔레그램 저장공간에 보관한 혐의(성착취물소지)를 받았다. A씨는 아동·청소년성착취물임을 알고도 이를 소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는 또한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반포된 불법촬영물 399개를 소지한 혐의(카메라 등 이용촬영물소지)와, 연예인 얼굴을 나체 사진에 합성한 딥페이크 허위영상물 123개를 소지한 혐의(허위영상물소지)도 받았다.
범행은 소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A씨는 갖고 있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피해자 중 15세 B양의 사진을 프로필로 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한 뒤 B양의 지인들을 팔로우하고 메시지를 보내 대가를 요구하며 영상 구매를 유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B양의 아버지가 구매자인 것처럼 가장하고서 A씨에게 접근하자 문화상품권 5만원을 받고 영상 23개를 텔레그램으로 전송한 혐의(영리목적성착취물판매)를 받는다.
A씨가 저장해 뒀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257개 중 B양의 영상은 61개였고, 이외에도 다수의 피해자의 영상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성착취물 파일을 폴더로 분류해 저장했는데, 피해자 이름이 적힌 폴더는 3개, ‘XX녀’ 등으로 저장된 폴더는 7개로 총 10개의 폴더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A씨 범행의 중대성은 인정했다.
재판부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및 불법촬영물 소지 행위는 제작 범죄의 유인을 제공하고 다른 성범죄를 유발하거나 시청자의 성적 가치관을 왜곡시키는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해악이 크다”며 “피해자 사진을 프로필로 설정한 SNS 계정을 새로 개설해 피해자 지인들에게까지 성착취물이 노출되도록 하는 적극적인 판매행위에 이르렀고, 비난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했다. 또한 “피해자들이 건전한 성적 가치관을 형성해 나가는 데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법원은 A씨가 범행을 인정한 점, 피해자와 합의해 피해자 측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범행 당시 만 18세의 초범으로 사회적·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였던 점 등을 이유로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지난달 20일 그대로 확정됐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A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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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럴드DB] |
법원은 법에 규정된 형량의 구간인 법정형을 기본틀로 잡고서, 가중·감경을 반영해 정해진 처단형의 범위에서 여러 가지 양형조건을 고려해 실제 형량을 선택한다. 이 사건 판결문에 따르면 A씨에 대한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는 ‘징역 2년 6개월~22년 6개월’이다.
아울러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 상 영리 목적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판매 범죄의 기본 권고 형량은 징역 4~8년이다. 이 사건처럼 여러 범죄가 함께 인정된 경우 권고형 하한은 징역 4년 이상이다. 양형기준은 원칙적으로 구속력은 없지만 법관이 양형기준을 이탈하는 경우 판결문에 양형이유를 적어야 하기 때문에 합리적 사유 없이 양형기준을 위반할 수는 없다.
이 같은 점을 두루 반영하고 여러 양형요소를 고려해 재판부가 결정한 A씨의 형량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었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성착취 범죄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나 초범 여부가 감형 사유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다.
성폭력·성범죄 피해자 대리 경험이 많은 이은의 변호사는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미성년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를 지나치게 감경 사유로 삼는 것은 국가의 사법권 발동 취지를 몰각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미성년자가 자발적으로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온전한 판단에 따른 의사라고 보기 어려울 수 있고, 부모가 합의를 한 경우에는 피해자 본인의 의사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구형한 형량과 선고 형량에 큰 차이가 있는데도 항소를 하지 않은 검찰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달 발간한 ‘성착취 피해아동·청소년의 법적 지위 변화에 따른 법제도 운영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서 법원이 피해자의 처벌불원과 초범 여부 등을 폭넓게 감경 사유로 인정하는 양형 실무를 비판했다.
연구진은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 피해자의 처벌불원 등 인적 사정이 광범위하게 감경요소로 작용하면서 실형보다 집행유예가 다수 선고되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거나 적발되지 않은 여죄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도 초범이라는 이유만으로 기계적으로 감경하는 것은 양형인자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판단”이라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선고된 아동·청소년 대상 성매매 관련 사건 판결 373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 피고인의 93.7%에 해당하는 464명에게는 징역, 29명(5.9%)에게는 벌금, 2명(0.4%)에게는 선고유예가 내려졌다. 이 중 328명(66.3%)의 형 집행은 유예됐다. 평균 형량은 징역이 약 2년, 집행유예는 약 2년 6개월, 벌금이 약 736만원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성별은 여성이 484명(97.8%)으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피해자 평균 연령은 14.6세였다.
성매매 범죄와 관련한 성적침해 유형은 강간·강제추행(106명·21.6%), 성희롱 등 성적 학대 행위(70명·14.1%),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추행(12명·2.4%), 성착취물 제작·배포(44명·8.9%), 카메라 등 이용 촬영(19명·3.8%), 촬영물·편집물 이용 협박·강요(14명·2.8%) 등으로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