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김고은을 만나던 날, 오후의 햇살이 그의 새하얀 살결 위로 파고 들어 은교와 마주 앉은 착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김고은의 변신은 극적이었다. ‘금기된 관능’을 품어 욕망을 불러왔던 소녀가 사라진 곳엔 어린아이의 순수가 괴물처럼 자리했다.
“참 예쁘다”는 칭찬엔 피식 웃어버리고, “정말 잘 뛴다”고 하니 “학교 다닐 땐 교내 체육대회 단거리 선수였다”며 어깨를 으쓱한다. “심장이 쿵덕쿵덕 거리는”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던 김고은에게 ‘몬스터’는 한 번은 만나고 싶었던 ‘독특한 장르물’이었다. 영화는 관객에게 익숙한 스릴러 문법을 거스르고 전혀 이질적인 세계를 오간다. 김고은이 연기하는 복순의 존재이유는 여기에서 나온다. 새빨간 스웨터, 초등학생용 내복 위에 몸빼바지를 덧입고 철거용역에 식칼을 휘두르는 그는 ‘몬스터의 ’코믹담당‘이었다. “기대와 걱정”은 “코믹과 스릴러가 합쳐졌다” 데에서 나왔지만, 영화를 본 뒤 김고은은 “감독님의 의도에 맞게 잘 나온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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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병찬기자/yoon4698@heraldcorp.com] |
“스릴러를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특히 제가 꽂힌 부분이 있었어요. 보통의 스릴러 영화에서 여성은 늘 나약하게 그려지잖아요. 왜 여자들은 항상 희생양이 돼야하는지 의문이 들었어요. 여자들도 무서워지면 정말 무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몬스터‘의 시나리오가 그런 갈증을 해소해줬어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난거죠.”
김고은이 연기하는 복순은 동화 속의 해맑은 소녀이면서도 잔혹동화에 등장할 법한 광기를 내재한 입체적인 캐릭터다. 할머니가 물려준 노점에서 야채장사만 하며 동생을 돌보던 복순에게 ’삶의 이유‘였던 동생이 죽어버리자, 복순 안의 괴물은 몸집을 키운다. 캐릭터 설정이 9세 지능의 ‘모자란 구석’을 가진 여자였던 터라 ‘코믹’은 빛을 발하지만, 김고은은 사실 복순을 연기하며 ‘지적장애’라는 테두리 안에 복순을 가두지는 않았다. 애초의 설정이 김고은의 제안으로 달라진 부분이다.

“특정 장애에 대해 언급을 해버리면 복순을 연기하며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어요. 대사와 행동들이 시나리오가 가진 것 표현하기에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죠. 복순이는 후천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고, 한평생 시골에서 살며 야채를 파는 것으로 충분한 사람이었어요. 더 성장해야할 이유가 없었던 거에요. 사람마다 조금씩 부족하고 모자란 면이 있잖아요. 그게 복순이가 가진 하나의 성격이라고 생각했어요. 몸은 성장했지만 마음만은 여덟살, 아홉살의 감성을 가진 사람이요. 어떤 부분에서는 부족해 보일 수 있지만, 누구보다 성숙한 책임감을 가졌죠.”
살인마에게 동생을 잃은 복순이 몬스터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누구에게나 지켜야할 대상이 있다”며 “동생을 잃은 복순이 다시 책임지고 싶은 대상을 만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었다”는 것이 ‘삶의 이유’라는 동생을 너무 빨리 지우는 복순을 위한 해명이다. 때문에 영화는 시작은 복수였고, 끝은 살아남고 지키기 위한 본능의 싸움이 된다.

김고은은 중국에서 살던 유년시절, 항상 겁이 많았던 엄마가 부엌칼을 꺼내들고 강도에게 맞서던 모습을 떠올리며 복순을 연기했다고 한다. 그 순간 강도는 위협에 겁을 먹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지켜야한다는 책임감과 진심이 섞인 엄마의 눈을 보고 도망갔던 것 같다”는게 김고은의 생각이었다.
‘몬스터’를 통해 파격을 보여준 김고은의 차기작은 이병헌 전도연 등 톱배우들이 출동하는 무협영화 ‘협녀: 칼의 기억’이다. 중국생활 10년으로 온갖 무협영화를 접해왔던 김고은이 무용으로 다져진 가녀린 몸으로 진짜 액션을 보여준다. “꽤 괜찮은 운동신경과 무술욕심” 덕에 또 한 번 새로운 모습이 나올 전말이다. ‘은교’, ‘몬스터’를 잇는 변신의 연속이다.

“제가 예민한 성격은 아니에요. 은교의 이미지를 벗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이제 갓 데뷔한 신인에게 대표작이 생긴 것 자체가 영광스러운 일이죠. 지금은 ‘은교’를 저의 베스트 연기라고 보시기 때문에 대표작으로 붙여주시는 거라 생각해요.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은교의 이미지가 크지만, 그게 배우생활을 하는 데에 족쇄가 되진 않아요. 어떤 작품을 만났을 때에도 즐길 준비가 되어 있어요. 꼭 잘해야겠다, 해내야겠다는 부담을 가지는 않고 즐길 수 있는 것이 배우로서의 ‘준비된 상태’라고 생각하거든요. 10년, 20년이 지났을 땐 많은 분들이 저의 대표작을 다르게 불러주실 수 있겠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