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범실(도경수 분)의 촬영분을 다 봤어요. 감독님하고 먼저 다 보기로 하고 출연했어요. 형준으로서 이 모든 과거를 다 알아야 하고 모든 감정을 정리해야 했죠. 저로서는 매 씬 출연한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습니다. 그래서 연기하기가 어려웠어요. 물리적인 시간보다 더 많은 걸 알아야 하니까. 사실 잘한다고 해도 티가 안 날 수도 있었고요. 경수의 연기는 제가 연기한다고 생각하면서 봤어요.”
그는 도경수의 연기가 ‘연기답지 않은 연기’라며 자신의 스타일과 비슷했다고 전했다. 그래서인지 박용우와 도경수는 단 한 번도 영화에서 교류하지 않음에도 동일인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형준으로 시작해 범실로, 그리고 범실에서 형준으로 시간을 건너뛰는 과정에도 일관된 감정을 전한 건 전적으로 박용우의 놀라운 감정연기 때문이었다.
“대화를 나눠보니 감독님이랑 그 장면에 대한 의견이 잘 맞았어요. 그래서 그냥 제 추억을 느끼면서 감정을 쏟기로 했죠. 원 없이 했습니다. 대충 5분 넘게 했을걸요. 상영본에선 다소 편집됐지만 그 부분만큼은 제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워요. 물론 제 마음에 100프로 마음에 들진 않아요. 하지만 감독님은 전체를 봐야하니까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희망한 만큼 진심이 비춰져서 좋았어요.”

그때 그가 떠올린 추억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박용우 본인 말고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연기를 봤을 때 박용우가 가진 수많은 경험이 연기에 힘을 실어줬으리라 추측할 순 있었다. 영화의 배경이었던 1991년 당시 한참 방황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는 그가 ‘순정’에 가진 의미는 추측할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이다. 추억의 노래로 과거와 마주하게 되는 형준처럼 박용우에게 어떤 추억의 노래가 있는지 물었다.
“굉장히 많아요. 그때는 노래 가사나 그 곡이 좋다는 거보다 경험에 그 노래가 추억으로 새겨진 것 같습니다. 마치 이별할 때 들은 노래가 실제로는 유쾌한 곡이라도 저한테는 이별의 곡인 것처럼요. 그래서 사춘기를 기억하는 노래들이 많죠. 그때는 TV보다 라디오가 더 가까웠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 같은 프로그램이 있었고, 신인 코미디언으로 이경규 선배가 나오던 시절이죠. 그때 들은 곡들이 기억에 남아요. 이문세 선배의 ‘소녀’나 봄여름가을겨울, 김광석 씨음악 같은 음악들입니다.”

그의 연기는 항상 작품 속에 녹아들어 그에 알맞게 변형돼 왔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독하게 그려졌던 박용우의 인물들은 영화 속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번에 연기한 형준 역시 추억을 떠올리며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튀지 않게, 그러나 확실히 느껴지게 표현했다.
“저는 인물들이 성장하는 영화를 좋아해요. 어떤 환자가 마음의 병을 일종의 계기로 치유를 받아서 어떤 식으로든 성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악역을 할 수도 있고, 반대로 평범한 캐릭터도 필요하죠. 하지만 그게 연기에 있어 변명거리가 돼서는 안돼요. 세상에 평범한 캐릭터는 없습니다. 다만 그 역할을 할 뿐이죠. 평범한 인물이라고 해도 연기가 평범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인물의 굴곡이 없어서 작품의 메시지가 전해지는 거라면 다르겠지만요.”
이제 박용우는 데뷔한지 20년이 넘은 배우지만 여전히 도전적인 작품들을 선택하며 자신의 연기폭을 착실히 넓혀나갔다. 그런 그에게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대중들에게 서고 싶은지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요즘엔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 ‘배우로서 너는 무슨 책임감이 있어?’하고 배우의 책임감이란 것을 생각하게 됐어요. 요즘 든 생각이지만 아마도 꽤 예전부터 그런 마음이 있었고 그래서 요즘 출연작들을 결정지은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책임감은 공적인 것보다 제 심정적인 책임감인거 같아요. 고민해 볼만한 보람이 있는 겁니다. 분명한건 배우로서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이슈팀 이슈팀기자 /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