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일, ‘트로트 고고’에서 ‘록 음악’으로 바꾼 이유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윤항기, 박인희 등 원로가수의 복귀소식에 이어 가수 윤수일도 복귀한다. 싱어송라이터 윤수일(61)은 오는 4월 데뷔 40주년 콘서트를 개최한다.

윤수일은 가수로서 독특한 행보를 이어왔다. 1976년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록 음악 가수 겸 록 밴드 리더로 데뷔한 그는 1977년 첫 앨범 수록곡 ‘사랑만은 않겠어요’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이 노래 외에도 ‘유랑자’ ‘갈대‘ ‘추억’ 등 이 시절 기획사에서 작곡가 안치행 등이 권해 발표했던 음악들은 거의 트로트나 고고 리듬이었다. 이런 음악들은 당시 한국인 시니어 대중에게 편하게 다가가며 중독성을 수반했다.


하지만 윤수일은 80년대 접어들며 ‘제2의 고향’과 ‘아파트’ 등 록밴드 음악으로 또 한번 크게 성공했다. 이어 발표한 ‘아름다워’ ‘환상의 섬’ ‘황홀한 고백’ 등은 록밴드로서 무르익었음을 보여주는 음악들이었다.

이에 대해 윤수일은 “‘사랑만은 않겠어요’를 불렀던 ‘윤수일과 솜사탕’ 시절 밴드 멤버들 간에 내분이 있었다. 반주를 안하겠다고 했다. 그 분들의 음악성이 따로 있었다”면서 “그래서 나는 그 그룹을 나와서 윤수일밴드를 결성하고 내 음악을 만들어 불렀다”고 말했다.

트로트를 버리고 완전히 록 음악으로 바꾼 윤수일은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확실히 했고 멋있기는 했지만, 위험 부담이 없지는 않았다. 자칫 록 음악이라는 자체가 대중적으로 멀어질 수 있는 요인이 될 수도 있었다.

이에 대해서 윤수일은 “나는 밴드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음악 하는 순간이 즐거워야 한다”면서 “음악은 트로트를 기본으로 하지만, 록의 세계적 바람을 접목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힙합과 알앤비를 해야 하지만, 저는 록이 기본이다“면서 “제 노래 ‘아름다워’를 박정현이 리바이벌해 나보다 감각적으로 곡해석을 더 뛰어나게 했다. 음악적으로 진화되어야 하는 게 나의 지론이다“고 말했다.

그는 유독 도시화의 상징물이기도 한 아파트 등 도시에 대한 노래를 많이 불렀다. 그래서 ‘시티뮤직의 창시자‘로 불리기도 했다. 요즘 젊은이들도 노래방에서 흥겹게 부르는 ‘아파트‘가 군대 휴가 나온 그의 친구가 실연한 러브스토리를 듣고 만든 노래였다는 점도 밝혔다.

“80년대초 잠실벌은 아파트가 드문드문 있었고 거의 갈대밭이었다. 아파트가 돈이 된다고 했다. 그럴 때 아파트 노래를 하나 하자는 생각을 하다, 군대 휴가 나온 친구가 술을 한 잔 사달라고 했다. 그 친구는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었는데, 전화를 안받아 그녀 집인 아파트를 찾아가봤더니 집 전체가 이민을 갔다고 하더라. 친구의 표정을 보니 울고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서 메모를 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노래가 ‘아파트‘다.”

윤수일은 ‘황홀한 고백’ 등 작곡에서는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을 많이 썼다고 했다. 당시 뉴웨이브 사운드의 유행에 맞췄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수일은 도시화와 기계화속에서 외로움과 고독의 정서를 언뜻언뜻 내비쳤다. 이는 당시 다문화라는 단어조차 없는 시절 의지할 곳 없는 그의 정신세계가 반영된 결과일 듯하다.

윤수일은 “암울한 편견 속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기댈 데가 없었다. 외로움을 발산할 데도 없었다. 교내 폭력도 있었다”면서 “부정적 생각을 긍정적 에너지로 바꿔준 게 음악이었다”고 음악에 심취하게 된 과거를 술회했다.

그동안 24장의 앨범을 발표했던 윤수일은 부산에 연예기획사 ‘누리미루 SI 엔터테인먼트‘를 차리고, 후배를 양성하며 한류에도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락앤롤 할배’에도 출연했다.

모든 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올드’해진다. 윤수일도세월속에 대중과 조금 멀어진 게 아쉽다. 하지만 윤수일의 록에 기반한 음악은 현재 어떻게 진화될 수 있을까. 그걸 보고싶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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