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 스무살 정승환 ‘목소리’의 힘…정통 발라드 ‘별’이 떴다

첫음반 수록 ‘이 바보야’·‘그 겨울’
음원차트 상위권 질주 바람몰이
신승훈·김동률·성시경·박효신…
로열 패밀리급 계보 잇는 ‘샛별’

발라드 가수는 많지만 수십년간 지속적으로 부를 수 있는 가수는 그리 많지 않다. 공연을 할 때마다 수많은 관객이 들어오는 발라드 가수는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래서인지 이문세, 이승철, 신승훈, 김동률, 성시경, 박효신 등에게는 발라드의 창시자, 황제, 황태자, 왕자 등 로열 패밀리급 칭호를 붙여준다.

한동안 로열 패밀리급 발라드 가수가 나오지 않았다. 갈수록 목소리의 힘만으로 대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 정통 발라더의 탄생이 어렵다. 요즘 정통 발라드를 제대로 불러내지 못하면 진부하거나 촌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정승환(20)은 정통 발라드계에 오랜만에 나타난 괴물 신인이다. 그에게는 발라드 세손 정도의 로열 패밀리급 칭호를 붙여줄만한 보컬리스트다.


첫 음반 ‘목소리’의 ‘이 바보야’로 6일 넘게 음원차트 1위를 달리고 있고, 더블타이틀곡 ‘그 겨울’도 차트 상위권에서 올라있다. 준우승을 기록했던 ‘K팝스타4’때 불렀던 ‘사랑에 빠지고 싶다’와 드라마 ‘또! 오해영’의 OST ‘너였다면’도 다시 히트하고 있다. 정승환은 어찌 보면 평범한 가창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약간의 감정과잉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결코 감정과잉으로 들리지 않는다. 발라드를 부를때 MSG를 치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의 감정을 사용할 줄 아는 그는 감정의 미세한 조절과 호흡법만으로 진짜 감성을 만들어낸다. ‘그 바보야’를 자주 들어도 쉽게 질리지 않는 이유다.

정승환이 발라드 괴물로 부각된 것은 ‘K팝스타’ 심사위원인 박진영이 예견한 바 있다. 핵심은 이렇다.

“음악장르중 발라드가 가장 부르기 어렵다. 다르게 부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승환은 다르게 부른다. 발라드는 뻔하게 잘 부르는 것보다 새롭게(진실함만으로) 못부르는 게 낫다.”

정승환을 프로듀싱한 유희열 안테나 수장의 다소 긴 얘기를 한번 들어보자.

“업계 선수들끼리 하는 얘기중 발라드는 곡보다 더 중요한 게 누가 부르냐라는 게 있다. 이소라, 신승훈, 김동률, 박효신,김연우, 성시경이 부르면 대체불가다. 그래서 많은 사랑을 받는다. 열창을 하고, 가창력이 풍부하다는 사람은 많은데, 왜 이런 사람들만 기억에 남을까? 여기서 가사 전달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가사가 가수에게 와서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냐의 싸움이라서 연기가 중요하다. 승환은 연기에 최적화돼 있다. 승환보다 노래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노래가 먼저 들리는 게 아니라 사람이 보인다. 절대 울지 않고, 강요하지 않는다.

박효신이나 김연우 등 발라드 장인들과 작업을 많이 해봤는데, 가창 음역대가 넓지 않는 발라드 가수들이 벌스(A파트)를 어려워한다. 하지만 승환은 벌스 파트에서도 툭 하고 얘기하듯이 한다. 배우 박해일이 연상된다. 이런 가사를 주면 이렇게 하고, 저런 가사를 주면 저렇게 한다. 목소리가 참 잘생겼다.”

이소라와 김동률, 박효신은 자신의 목소리라는 필터를 통해 노래가 나감으로써 대중들의 기호가 됐다. 정승환은 아직 특징적인 그 무엇을 집어내기는 어렵지만, 유희열이 말한 것처럼 연기 폭이 넓은 발라드 가수라는 점은 분명하다. 어떤 가사도 다 소화해내는 만능연기 가수라는 것이다. 정승환은 감정 과잉 없이 가사 내용으로 흘러가는 그 만큼만 감성을 사용하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이 넓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 바보야’는 헤어진 여인을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면서 슬퍼하는 감성을 담았다. 안테나의 선배인 박새별이 작곡하고, 유희열이 구어체로 가사를 썼다. 유희열은 정승환에게 소주 4명을 마시게 해 건대 4거리에서 올로케로 뮤직비디오까지 찍었다.

정승환과 유희열의 만남은 참 다행이다. 수많은 발라드 지망생들이 “잘 부르네, 그런데 당신처럼 부르는 사람 많아”라는 벽에 걸려 좌절했다. 화려한 디지털 사운드에 목소리만으로 표현되는 발라드(아날로그)가 돋보이기는 어렵다.

유희열은 정통 발라드를 부르는 정승환에게 가능성을 보고, 그것으로 자신의 길을 가게 해주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안테나의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정승환을 돋보이게 만들었다. 유희열은 정승환의 매력을 오롯히 프로듀싱함으로써 익숙함의 경지를 넘어서게 했다. 정승환의 감수성은 안테나의 토양에서 앞으로도 더욱 무럭무럭 자라날 것이다.

“안테나는 풍족한 곳은 아니지만 먼저 음악을 시작한 자랑스러운 선배들이 있다. 가요계가 호흡이 짧아졌지만 성적에 연연해하지 않고 음악으로 평생 자기 길을 걸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음악과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유희열)

정승환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내고 싶었던 정승환은 모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를 듣고 따라부르는 걸 보면서 가수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맛보고 있다. 정승환은 “성적에 관계없이 항상 저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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